[자유발언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징역살이

대체복무제 백지화 발표를 듣고

김승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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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중에 나가면 꼭 찾아뵐께요.’
‘음…’

2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녀석을 두고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녀석이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먼 훗날에라도 선생님께 피해주는 사람 절대 안되겠습니다.’

무슨 말이었을까. 괜시리 미안해졌다. 내 망설이는 표정에서 녀석은 무엇을 읽었던 것일까. 일어나서 한번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상철이를 처음 본 게 벌써 6개월 전이었다. 공중보건의사로 천안소년교도소 의무과에서 처음 일하던 날, 녀석과 인사를 했었지. 첫 출근날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내게 커피를 가져다 주며 웃어주던 녀석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도대체 저 아이가 20살의 나이에 무슨 죄로 여기에 왔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몇주가 지나 알게된 상철이의 죄목은 병역거부였다.

상철이는 속 깊은 아이였다. 언제였던가. 거의 매주 허리가 아프다며 의무과에 와 가까이 지내던 한 아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이 원하는 약을 주지 않는다며 협박을 하던 날이 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하며 위협을 하던 녀석을 교도관들이 뒤늦게 말리긴 했지만, 그 날 오후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사람을 아낀다는 것, 혹은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게 이 곳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구나. 오전 진료가 끝나고 답답한 마음에 창가에 서 있는데, 상철이가 다가왔다.

‘선생님. 녀석들 16살에 교도소에 들어와서 몇년이 지나도 아직 16살입니다. 사회생활도 하고 사람도 만나야 변하는데, 그 아이들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십시오.’

망치로 뒤통수를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그렇구나. 네 말이 맞겠구나. 그 날 이후로, 재소자를 진료하다 마음이 답답한 일이 생기면 상철이와 의논을 했다. 상철이도 내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선생님. 제가 여기서 나가면 벌써 22살이란 말입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의대 나왔으니까 공부 잘하시지 않습니까. 저도 대학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는게 뻔한 것들 뿐이어서 이야기를 나눌수록 미안하고 왠지 답답했다. 무엇보다 20살이라는 나이, 그 인생에서 새로운 것들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경험하고 배워야할 시기에 교도소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할 바없는 상철이 인생의 가장 큰 장벽이었다. 녀석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특정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종교에서 말하는 교리를 따르는 일이 대한민국의 법과 모순되어 징역을 살고 있는 것이다. 간혹, 상철이가 대한민국이 아닌 나라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사회에서 힘있는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없이도 군대를 면제받고, 또 때로는 아주 ‘현명한’ 부모를 만난 운 좋은 아이들은 원정출산으로 태어나기도 전에 병역을 면제받는데.

오늘 종교적 이유로 하는 대체복무제 논의 자체가 백지화될 것이라는 국방부의 발표를 들었다.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제도의 문제 아닌가. 그 누가봐도 병역을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없도록 대체복무제도를 정교하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소식을 듣고 하루 내내 울적했다. 파란 죄수복을 입은 상철이가 생각이 났다. 오늘 발표에 얼마나 많은 ‘상철’이와 ‘상철’이 부모님들은 가슴을 쳤을까. 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징역살이는 언제까지 계속되야 할까.
덧붙이는 글
김승섭 님은 2005년 천안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했습니다.
인권오름 제 134 호 [기사입력] 2008년 12월 24일 15: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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