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의 인권이야기]빈곤을 대하는 두 얼굴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서 나타난 빈곤 인식

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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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말 모방송사에 원탁대화란 이름으로 출연하여 대통령은 기초생활보장예산이 줄었다는 패널의 지적에 ‘기초생활수급자는 줄어들수록 좋다’ ‘일자리를 만들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고 답변하여 보는 이들을 당황케 하였다. 그 이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지상으로 나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하더니 기초생활지원, 긴급 복지지원에 대한 상담업무를 담당하는 129콜센터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청와대에 편지를 보낸 모녀와 통화하는 모습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대통령은 쓰지도 못하는 봉고차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권자에서 탈락한 모녀를 위해 긴급복지지원과 일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배려(?)와 전국적인 홍보 덕분인지 이 모녀는 봉고차를 처분하여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홍보된 129콜센터

기초생활수급자가 줄어든 이유를 모녀는 말해준다
올해 기초생활보장예산은 작년보다 1만 명 줄어든 158만 명으로 편성되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실질 수급대상이 작년 11월에 153만 명이므로 실제로 올해는 이보다 5만 명 늘어난 것이라고 강변한다. 2008년에 편성된 대상이 159만 명인데 153만 명으로 줄어든 이유는 위의 모녀처럼 자동차 등의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기준, 부양의무자 기준 등을 까다롭게 적용하여 탈락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만 이에 대해서 정부는 말하지 않는다.
이미 최저생계비 이하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의 권리가 없는 비수급 빈곤층은 300만 명에 달한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경제침체와 역사상 세 번째로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하고 있는 2009년 한국경제 상황에서 빈곤층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 예산편성을 작년보다 적게 했으니 2008년보다 수급받는 빈곤층의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제로인 셈이다. 몇 백 만에 달하는 빈곤층에 대한 정부 대책은 피부에 와 닿는 게 없다. 대통령의 배려(?)와 언론보도로 모녀가 수급권을 가질 수 있더라도 말이다.

1년짜리 차상위 계층의 의료 보장
오는 4월부터 의료급여 수급권을 가진 차상위 계층 21만 명에 대하여 의료급여를 중단하고 건강보험에 포함시킨다. 1년 동안은 보험료와 본인부담금을 면제한다지만, 이들의 소득이 1년 사이에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결국 일년 후에는 보험료 체납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도 3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한 체납가구는 100만 가구를 훨씬 넘는다. 이들은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고스란히 의료비를 전액 부담하거나, 의료비를 감당 못 하는 경우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잡 쉐어링’?=알바식 일자리
정부가 얘기하는 ‘일자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통령이 원탁대화에서 칭찬한 사례인 주택공사의 ‘잡 쉐어링(Job Sharing)’ 사례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 쏟아져 나온다. 주택공사의 ‘잡 쉐어링’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제도개선이자 주거복지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환자 수발 등 돌봄서비스를 주로 하는 이 일자리는 고용기간이 고작 6개월에 불과하고, 임금도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월 60만원에 불과하다. 극도의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란 얘기이다.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를 나누는 ‘잡 쉐어링’이 아니다. 그런데 현 기초생활수급자격기준 때문에 이걸 선택하게 되면, 수급권자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기초생활수급권자에서 탈락하게 되면 주거급여, 의료급여에서도 탈락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임대아파트 입주자격도 상실하게 될 우려가 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대통령이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줄어들고, 일자리는 늘어나긴 한다.
하지만 일자리가 제공되는 6개월이 지나고 그 이후에는 어쩌란 말인가? 주택공사에서는 이러한 지적이 있자, 보완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보완책은 없다. 수많은 비수급 빈곤층을 만들어내는 부양의무자기준을 없애고, 소득인정액 기준을 대폭 완화하지 않는 이상 보완책은 단지 말에 그칠 뿐이다. 아울러 다른 소득이 있을 경우 이를 생계급여에서 삭감하는 ‘보충급여의 원칙’이 수정되어야만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선택의 여지도 넓어질 것이다. 지금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권리를 가진 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노동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조건부 수급’이라는 명목 하에 아주 낮은 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수급권을 가진 이들에게는 다른 소득활동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위 사진:복지부 예산삭감을 규탄하는 내용의 퍼포먼스 일부(출처: 빈곤사회연대)

빈곤에 대한 정부의 두 얼굴
‘가난’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준다. 하나의 얼굴은 선하고 따뜻한 배려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강요와 부담, 억압의 얼굴이다. 가락동 시장 할머니에겐 목도리도 선물해주고, 모녀를 위해서는 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홍보’도 해주면서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줄이고, 20만 명에 달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에 대한 책임은 나 몰라라 한다.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면서 낮은 임금을 강요한다. 두 얼굴의 정부는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 못 한다’라는 낡은 봉건제적 의식과 ‘권리의 주체가 아닌 시혜와 배려의 대상’으로만 빈민을 보는 시선에서 기인한다. 대통령이 “어려울 때는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렵지,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있는 사람은 평소처럼 돈을 써줬으며 좋겠다. 어려운 사람은 우리가 그렇게 대책을 세우는데, 그래도 어려울 때는 정부 힘으로 다 막을 수 없다. 종교단체나 기업이나 나눔의 문화가 확산돼야 하지 않을까 부탁도 좀 드린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말에서 이 같은 의식과 시선의 정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의식과 시선이 바뀌지 않는 한, 위에서 언급한 두 모녀는 지금도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강동진님은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139 호 [기사입력] 2009년 02월 10일 23: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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