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삘릴리~ 학생인권 마술피리 (13)] 권리를 지킬 권리(끝)

인권을 되찾는 불꽃의 순간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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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다른 학생이 교사로부터 체벌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체벌 교사의 매를 잡았다. 한국사회는 이 문제를 ‘하극상’의 문제로 생각한다. ‘학생이 감히 선생님에게 어떻게 예의 없이 그 따위 짓을 할 수 있나, 그런 학생은 두고 볼 수 없다!’가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똑같은 장면을 인권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면 어떻게 달라질까? 부당한 폭력의 힘을 저지하기 위한 용기있는 불복종, 동료 학생의 인권 침해에 맞선 연대, 그리고 권리를 지키기 위한 권리가 행사된 장면이 된다. 학생인권 마술피리가 부를 마지막 소절은 바로 ‘권리를 지킬 권리’이다.

괘씸죄 처벌에 도덕적 비난까지

위 사건은 실제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제기됐던 사건이었다. 이 학생은 교사의 체벌을 제지하기 위해 매를 붙잡은 뒤 교무실에 끌려가 해당 교사에게 사과를 해야 했고 교장실에까지 불려갔다고 한다. 그 후 그 학생은 학생부장의 표적단속에 걸려 담배 소지가 적발되었고 결국 퇴학까지 당했다. 이른바 괘씸죄에 걸려든 것이다. 지난해에도 서울 K상고 학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비판하는 교사의 의견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린 채 몽둥이 체벌과 폭언 세례를 받아야 했다.

위 사진:서울 K상고 교사가 다른 의견을 제시한 학생을 체벌하는 장면.(사진 출처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그러나 주로 사람들이 끌끌 혀를 차는 대상은 교사의 보복이나 함정을 파놓고 걸려든 학생을 징계하는 학교의 파렴치가 아니다. 교사에게 말대꾸하고 교권이나 학교의 명예를 모욕한 학생의 ‘싸가지 없음’이다. 조용한 학교에 공연히 벌집을 쑤셔 놓았다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한다. 학생들도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용기있게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은 탓인지 '배후가 누구냐?‘는 난데없는 공격을 받기도 일쑤다. 학교에 의한 유무형의 압박에 넘어간 부모로부터 용돈을 끊겠다, 전학을 보내겠다는 협박과 만류에 어쩔 수 없이 이의 제기를 포기해야 하는 일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인권침해에 항의하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보단 인권이고 뭐고 ’죽은 듯이 살다‘ 무사히 졸업이나 하는 게 상책이란 생각이 학생들 사이에선 널리 퍼지게 된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자, 벌 받을지니!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을 바깥에 알림으로써 인권 침해를 중지시키려는 시도 역시 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된다. 2006년 수원 청명고 학생들은 두발규정 강화에 맞서 학내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학교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휴대전화 압수와 탐문조사를 해서 언론에 제보한 학생들을 잡아내는 일이었다.

위 사진:2006년 청명고에 의한 학생 인권침해에 항거하여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모습

교육청 민원 절차나 경찰 신고 절차도 학생에게 불리한 건 매한가지이다. 2002년 용화여고 허성혜 학생은 친구가 교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육청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퇴학을 당했다. 2005년 도교육청 민원게시판에 급식 질이 형편없다면서 개선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던 김제서고 학생도 담임교사의 지시로 ‘글 삭제’를 강요당한 데 이어 퇴학 처분까지 당해야 했다. 교육청이 학생의 신원을 보호하면서 조사와 해결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교사폭력을 경찰에 신고한 경우에도 경찰이 외려 제보 학생의 신원을 학교에 넘기고 학생을 나무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권리회복절차가 이런 식으로 운용되다 보니 학생들은 교육청이나 경찰에 알려봤자 더 큰 불이익만 자초할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억압구조에 균열을 내는 불꽃의 순간

권리를 지킬 권리, 침해된 권리를 회복할 권리를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권 보장을 요구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학생들이 안전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정한 권리구제절차가 다양하게 마련되고 그 절차의 존재와 활용 방안이 적극 알려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권리를 지킬 권리의 다른 이름은 저항권, 곧 인간됨을 선언할 권리이다. 처벌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학생을 침묵과 체념 속에 가두는 일이야말로 가장 잔혹한 인권침해이다. 권리 침해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행동은 인권침해를 되풀이하는 억압구조에 균열을 낼 불꽃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 불꽃을 목격할 때 다른 학생들도 두려움의 장막을 거둬내고 또 다른 불꽃의 순간을 만들 수 있다.

위 사진: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맞서 우리가 직접 바꾸겠다는 청소년들의 선언이 돋보인다. (사진 출처: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모임 Say No!<www.notest.kr>)

일제고사와 관련해 당국의 뜻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무려 열한 명의 교사가 보복 징계를 당한 지금, 과연 학생의 저항권이 보장되는 때가 올 수나 있나 하는 회의가 자꾸만 고개를 쳐든다. 그러나 인권이 꽃피는 학교를 만드는 마술피리의 힘은 마법의 힘을 빌지 않는다. 권리를 보장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곧장 그 권리를 행사하는 용기있는 학생들의 행동으로부터 나온다. 삘릴리 삘릴리~ 더 힘차게 마술피리를 불어제쳐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학생인권 마술피리 마지막 소절: 권리를 지킬 권리

○ 모든 사람은 부당한 법률이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양심과 인권의 보편적 요청에 따라 행동할 권리를 갖는다.

○ 학생은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힘의 행사나 명령에 대해 즉각 또는 사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 의견은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이의를 제기한 사실 자체가 처벌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 학생은 학교 안팎에 마련된 구제절차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권리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당국은 그 절차에 관한 정보를 알리고 이용방법을 교육해야 한다.

○ 학생은 양심의 요청에 따라 두려움 없이 다른 사람의 권리 회복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제보나 증언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배경내님은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42 호 [기사입력] 2009년 03월 04일 15: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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