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길을 묻다(3)] 가부장적 젠더정치에 대항하는 여성주의 성정치

사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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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여성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여성부와 각 부처에서 추진한 업무를 종합한 “여성정책 1년 성과”를 발표하였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1년간 여성정책은 가정·직장·사회에서 남녀가 협력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정립하고자 노력한 한 해”였으며 “특히, 대내외적인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경제 회복과 민생안정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체감하는 실천적 여성정책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는 사회 각계의 평가와 상치하는 그들만의 성과는 가부장적 젠더정치의 정점에 있다.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여성정책?

여성부가 1년 간 추진했다고 발표한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여성정책”을 살펴보면, 주요 골자는 아동과 여성 대상의 범죄 예방과 안전시스템 구축에 관련된 내용이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9개 부처가 참여하는 「아동·여성 보호대책추진점검단」을 설치하여 종합대책을 수립·시행(’08.4월)하고, 「아동여성보호 지역연대」를 전국 시·군·구 단위로 확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정책에는 여성은 아동과 더불어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일반 국민이 체감”할 만큼 여성과 아동이 폭력과 범죄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보호 담론’을 바탕으로 하는 행정당국의 법과 정책은 한계가 있다. 정책입안자들은 왜 여성과 아동이 범죄의 대상이 되고 폭력에 희생되는지 그 근원을 생각해 보았을까? 여성과 아동은 스스로 나약하지 않다.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여성”, “아동”으로 불리는 자들은, 가부장적 권력이 부과하는 약자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즉 가부장적 국가가 여성과 아동을 약자로 만들어놓고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웃지 못 할 발상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란 본질적으로 약자라기보다는 그 사회가 약자를 만들어내는 구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간통죄 존속, 군가산점 부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대량 해고 등의 사안에서 보듯이 법과 정책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여 가정에 머무르도록 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가 성 평등 정책 추진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부터 “성인지 예산제도”를 적극 시행한다고 하는데, 과연 ‘성평등’이나 ‘성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 과정을 거쳤을까? 약자를 보호한다는 기만적 사고에서 벗어나 약자에게서 빼앗은 권리를 되돌려 주는 것이 우선이다.

위 사진:세계여성의날 행사때, 한 여성단체가 가부장적 국가정치를 비판하는 피켓.

여성노동자는 “인력개발”과 “처리”의 대상일 뿐

다음으로 여성부가 제시한 성과는 “출산·육아부담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취업지원을 강화하고자 여성인력개발 추진체계를 대폭 개선”하였다는 것이다. 주요내용은 「여성새로일하기지원센터」를 통한 취업연계, 경제위기하 위기에 처한 여성 지원과 여성 일자리 유지를 위한 고용 상황 모니터링, 여성의 창업과 기업 활동 지원, 여성 친화적 고용환경 조성 등이다. 열거된 정책들은 그럴듯하지만 이 또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출산·육아 부담으로 인한 경력 단절 여성들의 취업을 강화한다면서, 출산·육아는 여전히 여성들의 몫으로 떠넘겨져 오히려 경력단절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경제위기를 초래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개선할 의지는 없으면서 경제적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지원한다는 것은 병주고 약주는 식의 모순적 발상이다. 더 나아가 어렵게 취업한 여성들의 비정규직화로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여성인력개발”이란 말 그대로 신자유주의적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에 적합한, 활용 가능한 인력의 개발을 뜻한다. 개인이 국가의 부를 위한 인적 자원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과 맥을 같이하는 “여성인력개발” 논리는, 여성노동자를 단지 개발되어야 할 “인력”으로 정체화하기 때문에 자발적 노동자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입맛에 맞는 “인력”이 아닐 경우 법과 정책이 여성노동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작년 기륭전자, KTX,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세력화와 피해자화의 이중주

그간 주류 여성운동이 힘써 온 운동의 방향은 두 갈래이다. 여성 권력집단의 정치세력화와 노동자 서민계급 여성의 약자화, 혹은 피해자화가 바로 그 방향이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로 말미암은 형식적 평등 달성은 ‘가진’ 여성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정치세력화가 제도권 진입으로 방향을 틀면서 가부장적 국가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가부장성이 강한 현 정권에서 여성부가 존속하게 된 것도 그러한 여성운동 세력화의 결과라고 본다면, 행정당국인 여성부와 주류 여성운동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여성부가 성과로 내세우는 세 번째 항목은 “폭력피해 여성, 이주여성, 소외계층 여성을 위한 보호·지원 확대”이다. 가부장적 모순이 초래한 불행을 온 몸으로 감내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절실히 필요하고 당연하다. 그러나 앞의 두 항목과 마찬가지로 여성을 피해자화·약자화 하는 담론은 여성이 구조 안에서 열등한 존재로 갇히는 결과를 뒷받침하게 된다. 성적 물리적 폭력이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역할 고정관념과 섹슈얼리티 통제는 여성을 약자화하는 대표적인 장치로서,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을 열등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그렇게 정체화하도록 작동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성역할 고정관념과 섹슈얼리티 통제를 효과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소위 일부일처 ‘정상가정’을 지키기 위해 ‘간통죄’ 와 친권법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여성이 세력화하고 있을 때 오히려 대다수 여성들은 무력화를 경험한다.

성노동운동에서 본 성정치의 가능성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여성을 능동적인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인력으로서 개발되어야 하는 수동적 대상으로, 한편으로는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로 대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적 젠더정치의 치밀하고 체계적인 그물망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근래 벌여왔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여성의 노동권 쟁취를 위한 저항이었다면, 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에게 멍에처럼 씌어진 ‘성’이라는 문제와 ‘노동’의 정의적 문제를 동시에 드러내는 근원적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성노동은 여성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하도록 요구한다. 출산, 양육,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 역사적으로 여성이 수행해온 ‘성’적 노동과 성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들의 ‘성노동’은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 여성들 사이를 구분 짓게 하는 섹슈얼리티의 위계는 무엇을 위해 작동하는가? 성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묵살하는 범죄화 논리는 무엇에 의해 뒷받침 되는가? 이러한 물음은 가부장 체제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인권조차도 실현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여성주의가 진정 가부장제로부터의 인간해방을 꿈꾼다면 여성의 성을 무화하고 은폐하는 성장치들을 고발하고, 성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재개발과 단속의 위협에도 오늘 성노동자들은 자신의 공간을 지키며 생존해 나가는 절절한 성정치를 실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사미숙님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144 호 [기사입력] 2009년 03월 18일 11: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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