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림의 인권이야기] 치열하게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이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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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한 후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추모의 물결은 장례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덕수궁 대한문 앞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차려졌고, 그 분향소들에는 고인의 마지막 고뇌를 함께 느끼려는 수많은 시민들의 방문이 그치지 않았다. 밤이 되면 분향소는 자연스레 촛불을 밝혔다. 영결식이 있던 날 노제가 진행된 시청 광장의 푸른 잔디밭과 검은 아스팔트는 노란색으로 뒤덮였다. 시민들의 촛불은 고인의 길을 비추었고, 노란 풍선은 고인과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나 역시 촛불 하나, 노란 풍선 하나 보탰다.

그가 떠나간 지 열흘이 지났다. 연일 신문 1면과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던 그와 추모분위기는 지나가고 남겨진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 보수언론에서는 자신들이 해명해야 할 많은 책임을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하느라 분주해 보인다. 정당들은 각자 이 국면을 어떻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지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노무현에 대한 평가와 함께 향후 활동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시민들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민주시민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서울의 도봉구에서 지역운동을 하는 전업 활동가인 나에게도 역시.

“ 이명박 시대라고 해서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뀔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회의 진보를 위해 살고 있는 많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려스러운 일들이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만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지요. 저는 제가 사는 동네, 제가 활동하는 터에서 주위 분들과 함께 조그마한 진보를 위해 힘쓰려 합니다. ...그렇게 10년, 20년 후를 준비하며 오늘을 살아야겠습니다.“ (2007.12.20)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선거 결과가 그렇게 되리라 보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화가 나지만 담담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개표 직후 한 온라인 신문에서 독자에게 물었던 “‘이명박 시대’를 맞이하며”에 대해 위와 같이 보냈나보다.

그런 판단의 배경에는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대한민국은 이제 어느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국가잖아’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7,80년대처럼 대통령 한 명이 좌지우지할 만한 국가 시스템은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짧았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민주주의와 역행하는, 민주 사회에서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미FTA 문제는 온 국민을 시위 전문가로 만드는 단초를 제공했다. 연이어 한반도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와 언론 장악 등 굵직한 문제들이 터져 나왔고,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용산 참사 등 시민들의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도 계속됐다.

‘우려스러운’ 일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나에게 국한시켜 질문하고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는 그 마지막 말이 나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또 원인을 나에게서부터 찾아야 작은 실천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우려스러운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가?”, “지역 활동가라고 동네의 일에만 신경쓰지는 않았던가?”, “10년, 20년 후를 준비한다면서 지금 연대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았는가?”

돌아보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을 든 이후 거리로 나간 기억이 많지 않다. 동네로 촛불이 옮겨와 매주 한차례씩 촛불을 밝히는데 참여한 것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뿐이다. 심지어 용산 참사에는 조문조차 가지 못했다. 거리로 나가서 촛불을 들어야만 참여하는 것이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용산 참사의 경우에는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는 자리를 지켰어야 했고, 동네 활동가라면 동네촛불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핑계를 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 동네 허파 구실을 하는 초안산에 골프연습장이 들어오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편법으로 인상한 구의원 의정비를 바로 잡는 운동, 친환경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 등 지역의 이슈에 대응하는 것. 동네 주민들과 인권 교육하고 여러 지역운동 사례들 학습하고 일구어 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노무현은 마지막 가는 길에 나에게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정말’ 치열하게 민주시민으로 살고 있습니까”라고 말이다. 그 답을 내리는 게 아직 쉽지는 않지만 마침 이번 주 목요일은 도봉 촛불 1주년 기념 촛불집회가 쌍문역에서 있으니 꼭 챙겨 가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창림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55 호 [기사입력] 2009년 06월 03일 18: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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