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다르게 말하기③] 삶을 들이대다

맥놀이, 연극으로 인권운동하기

조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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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항쟁의 기억이 가까운 한국에서 ‘운동’이라는 단어는 화염병이나 최루탄, 격렬한 몸싸움, 높게 쳐든 깃발, 윙윙 거리는 확성기 소리...등등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그 앞에 비교적 온건한 ‘인권’이라는 단어가 붙어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 80년대를 관통한 부모님들이 ‘운동하러 간다’라는 말을 하면 으레 경직된 얼굴을 해보이시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급진적이고 맹렬한 투쟁으로 기존 권력과 부딪쳐온 진보적 움직임들이 그 뜻은 대체로 올곧고 맑았지만 방법상으로는 다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격정적인 민중 문학이 페미니즘 시각에서는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단일 목적을 위한 전체화는 중심과 주변부를 나누고 소수성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개인을 짓누르는 정치성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유지되던 과거에는 그런 것들이 묵인되고 말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맥놀이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80년대 생들, 학번으로는 00년대 학번들은 학내에 잔존하는 386세대의 운동 방식에 대해 적지 않은 회의감을 느껴왔다. 무엇보다 2000년대에는 ‘전체’로 뭉쳐 때려 부술 적이 존재하지 않았고, ‘자본’이나 ‘반미’ 등의 말은 너무도 크고 막연한 동시에 깊게 내면화되어 있어 긴 자기 성찰의 기간을 요구했다. 게다가 함께 구호를 외치던 그 거리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운동은 일발장타의 충격적인 움직임보다는 은근하면서 끈질긴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게 맥놀이의 생각이었고 이후 ‘문화’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위 사진:맥놀이 연극 <모던이펙트>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맥놀이)

소수자의 문화적 권리 배제와 주체적 발화

문화는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공동체와 상호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규범 설립의 역사를 살펴볼 때 경제권이나 사회권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권 범주에서 중요하지 않은 위치에 놓여 왔던 게 사실이다. 인권 제한의 상황들을 살펴볼 때 소수자의 사회적 의사소통의 제한이 차별과 억압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잦은데, 이는 결국 소수자가 자신의 삶 안에서 자아 인식의 여건이 미비함은 물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장소가 사회적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문화 인권 운동은 문화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 있어 소수자가 배제되어 있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예컨데 동성애자의 경우 이성애 중심 문화에 잠재된 성적 편견으로 인해, 장애인의 경우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관념으로 인해 동등한 문화를 누리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주체적으로 향유되는 문화는 개인과 공동체의 접점이며, 욕구와 저항의 접점이자, 과거 문화와 미래 문화의 접점이 될 수 있다. 문화를 통한 인권운동은 문화적으로 소외된 소수자를 부각시키고 이들을 문화 생산과 향유의 현장으로 불러와 궁극적으로는 주체적 발화를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성소수자에 대한 교묘한 배척

맥놀이가 인권운동 현장에서 연극이나 공연과 같이 ‘뜨뜻미지근한’ 방식을 택한 것은 맥놀이가 집중하고 있는 성소수자 문제가 하나의 담론이나 구호로 해결될 수 없는 파편화된 상황과도 관계 깊다. 성소수자 주체의 개념이 한없이 미시화되는 것과 맞물려 그들을 적대시하는 포비아의 종류 또한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드러내놓은 적대감은 사라져갈 수 있겠으나 교묘한 배척과 배제는 미디어와 언론, 성정치의 흐름과 맞물려 그 양상을 달리해가며 진화하는 중이다. 소수자를 향한 거부의 본질을 외면한 채 점잖은 표현법으로 예의 바르게 돌아앉는 객체들과 마주하면서, 일갈한들 소용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일상에서 소수자문제와 마주치기

결국 맥놀이의 문화운동은 인권운동을 거리의 구호가 아닌 일상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 문화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들이 일상 안으로 어느 틈엔가 불쑥 들어와 있는 소수자 문제와 마주치길 원하는 게 맥놀이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그 특별하지 않음을 통해 소수자가 가지고 있는 소수성이 왜소하거나 어긋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표현함으로써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생산해내고자 하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겹쳐보기. 동등한 삶과 삶의 만남에서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 오로지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

더불어 여러 문화 운동 중 맥놀이가 주력하는 연극이라는 수단의 선택은 맥놀이의 내부 상황과 연관이 있다. 당사자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른 성소수자 관련 단체와 달리 맥놀이는 비성소수자가 주를 이루는 모임이다. 성소수자 문제 한가운데에 서 있는 캐릭터로 살아봄으로써 그들의 상황을 육화하며 간접 경험 이상의 체험을 만들었던 연극 연습 과정들은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기억으로 축적되는 중이다. 연극에 임하는 맥놀이 활동가들의 열정은 그들의 삶과 나와의 관계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앞으로는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옳은가에 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2009년 3월에 공연한 맥놀이 인권연극 는 이러한 맥놀이의 생각들이 실제 무대 위에서 실현된 연극으로 맥놀이 활동가들이 대본을 쓰고 직접 대학로 무대 위에 올라 성소수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연기하고 연출을 한 작품이었다. 연기 경험이 전무한 활동가들이 배우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도 상당했지만 소수자의 삶 안으로 들어가 보는 체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로도 맥놀이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짧은 연극을 제작하여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 꾸준히 연극을 하는 중이며, 연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수자의 삶에 대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객을 넘어 배우가 되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구호보다는 시선을

맥놀이의 문화운동은 하나의 지향점을 표방하는 구호가 아닌, 소수자의 시선을 제시하고 그들 삶의 총체를 이해하고 무대 위에 구현하고자 하는 날것의 인권운동이다. 맥놀이 연극은 그 정제되지 않은 삶을 통해 관객에게 생각의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거기서 차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관객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조은호 님은 인권모임 맥놀이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65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12일 12: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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