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의 인권이야기] 독립의 꿈을 가로막는 것들

주택정책에서 주거권은 없어

민선
print
살만한 집에 살려면...

이번 달 말일로 현재 사는 집 계약이 끝난다. 2년 전 9월 1일 친구와 함께, 이곳 신림동 반지하 집에 둥지를 틀었다. 4개월 동안 얹혀 지낸 빈 지하방, 곰팡이 냄새가 벽마다 눅눅하게 배어있던 ‘암굴’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낑낑대며 모은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해서 내 스스로 집을 구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월세를 포함한 생활비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사 왔던 그 날 밤, 자축 술 한 잔에 뭔가 꽉 찬 기분을 느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덧 2년이 지나가 다시 집을 구하기 위해 한동안 부동산과 직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어떻게든 보증금을 좀 높여서라도 월세 부담을 줄였으면 좋겠고, 창문을 좀 열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고, 빛과 바람이 더 잘 들어왔으면 좋겠고, 자기 집에 너무 애착이 커서 건건히 간섭하는 주인집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2년 동안 지내면서 자연스레 생긴 집에 대한 바람들이다. 그런 바람들이 이루어지기에는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독립,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집을 알아보면서 예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꼭 독립해야지’ 마음은 가득했지만 이를 시도하기에는 막막해서 늘 꿈만 꿨었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좀 더 내 스스로의 삶을 살고 싶어 무작정 부모님의 집에서 나왔다. 일을 하며 모았던 돈 몇 푼에 당장 ‘집 같은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시원을 들어가 볼까 생각했지만 작은방 한 칸에서 지내기 위한 비용을 월마다 부담하게 되면 계속 고시원에서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달랑 트렁크 하나를 끌며 걷다 문득 멈춰서 빽빽이 솟아있는 건물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내 몸 하나 쉬게 할 공간이 없다는 설움, 그것이 집이란 공간을 상실했다는 첫 느낌이다. 그런 내게 지하방이지만, 곰팡이냄새가 가득했지만, 화장실이 밖에 있어 불편했지만 그래도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지하방에서의 생활은 잠자는 것 외에 없었다. 빛을 받지 못하고 눅눅하게 지내다보니 몸에서 곰팡이가 필 것 같았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살만한 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든다. 누구나 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붕과 벽으로 둘러쳐있다고 집이 되지는 않는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살만한 집이기 위해서는 햇빛도 받아야 하고, 물과 전기, 가스같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가 보장되어야 하고, 피곤한 몸을 쾌적하게 누일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있어야 하고... 물리적인 여건 외에도 부담 가능한 적절한 비용이나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 사회경제적인 여건도 충족되어야 한다.

위 사진:대한주택공사 홈페이지에 그려진 도시에는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재산권으로서의 집, 딱 그만큼인 현실

집다운 집에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질 것처럼 무겁다. 아끼고 아껴 독하게 저축을 한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점유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온다. 살만한 집에 살고 싶다는 꿈, 이것이 현실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 “집값 상승이 심상치 않다”, “서민들이 내 집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보도는 한 숨만 더 깊이 쉬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한 숨 짓게 한 상황에 대한 책임은 바로 부동산 투기부양정책만 적극적으로 펼친 정부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집은 재산권을 보장하는 수단이고, 집에 대한 정책은 재산권을 강화하는 정책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강부자’들에게 선물로 준 종합부동산세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각종 개발 규제 완화는 집값 폭등과 그에 따른 전세 값 폭등을 초래했다. 대출을 받든, 월세로 허덕이면서 살든,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주를 하든 그 몫은 고스란히 ‘집을 소유하지 못한 죄’가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2년 뒤 나는...

단지 공급과 수요, 가격 조정만 고려하는 주택정책에서 적극적으로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책, ‘누구나’,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집 때문에 고단한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살만한 집, 집다운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데, 2년 뒤 집은 나에게 또 어떤 부담으로 다가올까.


덧붙이는 글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65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12일 17:38:52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