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봐] 학교의 휴대폰 규제, 법으로 OK?

핸드폰과 함께 빼앗긴 인권

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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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사용 금지 조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몇 가지 권리를 가진다고 해. 흔히들 그것을 ‘인권’이라 부르지. 그런데 국제조약과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보장된 그 권리를 부정하는 조례가 추가로 발의 되었대. 물론 이 이전에도 일부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회적 제재(법 이하 조례 및 규칙)는 있었지만 말이야. ‘정보통신의 자유’라는 권리를 침해하는, 휴대전화(핸드폰)사용 금지 조례라고 하는데, 8글자만으로도 위협감을 풍기는 이 조례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래.

위 사진:청소년 휴대전화 금지 조례에 관한 인터넷 기사


울산지역에서는 등교 시 초, 중학교의 휴대폰 소지가 금지되고, 서울지역에서는 초등학교는 등교 시 휴대폰 소지 금지, 중, 고등학교에서는 휴대폰 사용이 금지된대. 또한 울산지역에서는 휴대전화 외 모든 휴대전자기기(MP3, PMP, 전자사전 등) 소지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해진다고 해.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학교장의 허가가 있는 경우 소지가능하대.)

또한 위와 같은 사항이 지켜질 수 있도록 교사들의 ‘지도’는 강화될 거고, 교문이나 학급에서의 휴대전자기기 및 휴대전화 압수를 위한 소지품검사가 이루어질 거라는 불안한 예감도 들어. 이건 정말 뭔가 아니다 싶어. 아무리 좋은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건 법적으로 보장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인권침해임과 동시에, 모든 학생을 준 범죄자 취급하며 소지품검사를 하는 인권과 인격을 동시에 침해하는 행위잖아? 등교 시부터 휴대전화의 소지를 금지한다는 항목에 많은 학부모들이 안전문제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지만, 인권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권침해를 위한 인권침해법?

왜 청소년의 핸드폰 사용을 제한할까? 그에 대해서는 다들 몇 가지씩 떠오르는 게 있을 거야.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교육’이라는 놈이겠지? 흔히 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인형으로라도 만들려고 하니까 말이야. 그 다음으로는 또 뭐가 있으려나? ‘교사의 권위’라는 것도 있구나. 정말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거라면 교사들 또한 휴대폰을 소지해선 안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뻔뻔하게도 당연한 듯이 들고 다니면서, 전화벨까지 울려가면서 ‘미안하다, 잠시만 기다려라’ 라는 말 한 마디면 모든 게 다 되는 줄 알고, ‘학생’이란 다른 것에 관심 가져서는 안 되고, 오로지 선생과 수업내용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거지. 이른바 도구 통제를 이용한 세뇌라고 해야 하나? 휴대전화 사용 금지라는 통신권을 박탈하는 행위, 그런 도구 통제를 이용한 세뇌행위 둘 다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인권침해겠지만, 인권침해를 위한 인권침해법이라는 점에서 휴대전화 사용 금지 조례는 더욱 더 있어서는 안 될 법이야.

휴대전화 사용 금지는 억지!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건 어째서일까?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고, 일부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이 그렇게 재미있지만은 않은, 그런 시간낭비를 반복하면서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요구조차도 못할 때가 많아. 그런 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동이 바로 휴대전화의 사용이야. 솔직히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게 수업에 방해가 돼야 얼마나 되겠어? 완전 억지라는 생각이 들어. -_-; 나도 수업시간에 휴대전화 벨 울리는 거 들어봤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거 내가 살아오면서 10년쯤 들은 수없이 많은 수업 중에 1%정도라도 되나 몰라? 그런 반면에 내가 수업 들은 30%는 애들 목소리에 방해받았던 것 같아. 그렇게 따지면 ‘수업시간 잡담 금지 조례’도 생길지 모르겠네. 그런데 왜 수업에 더 방해되는 잡담을 먼저 금지하지 않는 걸까?

권리를 요구하기 전에 학생의 의무부터 지키라고?

1318 바이러스의 ["학생 휴대폰 사용 금지 조례" 만드신 교육 관료님 들에게 한 마디]라는 기사에 [daffodil]님께서 다신 덧글 중 일부야.

“인권이란 자신의 의무를 다 했을 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권리가 먼저일까 의무가 먼저일까라는 질문을 접하면, 달걀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일까라는 질문과 혼동하기 쉬워. 어느 쪽이 먼저인지 헷갈린다 이거지. 하지만 이건 닭과 달걀과는 달라. 나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의무가 존재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거든. 정말 좁은 의미로 권리를 생각하자면, 그건 ‘대우’아닐까? 회사이름 대우 말고, 어떠한 존재로 인정해준다는, 취급의 의미를 가지는 대우 말이야. 즉, 권리를 인정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그 권리에 걸맞은 존재로 대우한다는 거지. ‘인권’이라는 건, 상대가 인권을 지켜줄 때 내가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는다는 거지. 그럼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건? ‘인간이하’ 라는 뜻! 그런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의무를 종용한다 이거지.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도 패러독스, 즉 모순이야. 우리가 몇 가지 의무를 ‘당연하게’한다고 해서 어른들도 과연 ‘당연하게’ 우리의 권리를 인정해 줄까? 아니지. ‘당연하게’ 학생이니까 그것도 해야 하고 공부를 하기위해서 권리 같은 건 무시 되도 되는 거지. 즉, 우리는 의무를 행하기 위해서는 그 의무를 행할법한 존재로 ‘대우’받을 필요가 있다는 거지. 즉 존중받을 권리, 인권 말이야.

위 사진:지난 8월 29일 토요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진행한 '청소년들의 휴대전화 금지 조례 반대' 플래시몹의 한 장면

공부가 의무였던가?

그러고 보면 또 다른 모순이 있어. 몇 가지 권리는 의무를 지킨 후 주장하라고 하면서, 어떤 권리는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어른들이 보장해주려 하는 걸까? 교육 받는 건 의무가 아니라 권리인데 말이야. 마치 어른들은, 우리의 권리를 의무처럼 만들어놓고 그건 의무니까 당연히 해야 하고, 나머지는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니까 권리 같은 것은 없다! 라고 하는 것 같아. 헌법에서도 ‘교육을 받는 건’ 권리라고 나와 있어.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그런 권리를 왜 어른들은 ‘교육받는데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의무 로 생각하는 걸까? 아무래도 어른들은 대단히 착각하는 것 같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주는데 감히 딴 짓이라니!’라는. 그런데 그건 의무고, 그걸 받고 말고는 우리 권리야. 그런 어른들의 의무를 빛내기 위해 우리가 권리를 강요받고 다른 권리는 제재 당하는 게 우스워. (권리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한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법률상의 힘.’이라고 해. 즉, 그걸 하고 말고는 우리의 선택이라 이거지.) 이게 남 일이었더라면 진짜 코미디였을 텐데. 내 일이고, 우리 일이다보니 한 번 웃고 끝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권리는 주장에서 나온다

여태까지 우리는 왜 휴대전화 사용 금지 조례가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어른들의 억지가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지 알아봤어. 그런데 그냥 이렇게 알고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어. 쓰이지 않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야.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주장할 수 없는 권리는 포기한 권리가 아닐까? 우리는 남들이 지켜주지 않는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다함께 노력하면, 언젠가 될 거라구!

끄덕끄덕 맞장구

놀랍지는 않았다. 도리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느낌이 적합하다. 조례 제정 추진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학교 안에서 휴대전화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체벌을 하는 것보다 휴대폰을 압수하는 것이 학생들을 더 쩔쩔매게 하는 일이라는 걸 교사들은 경험상 알고 있고 그것을 '길들이기'에 활용해 왔다. ‘교칙에서 조례로’ 억압이 전면화된 것일 뿐, 학교 안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교칙이 학생들이 토론을 거듭해 만들어낸 스스로의 창조물이 아닌 것처럼, 조례 또한 마찬가지다. 법과 규율 앞에 청소년들은 언제나 인간이 아니었다. 인권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권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청소년은 아직 미숙하고, 배울 것이 한참인 학생일 뿐이지 인간이 아니다. 국가인권위도 휴대폰 사용 금지를 인권침해라고 권고했지만, '청소년'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권의 틀에서 빗겨나가는 이상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참으로 씁쓸하다.

학교 안에서 휴대전화를 금지해야 한다는 근거는 대략 이러하다.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는 것, 학생들이 휴대전화에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는 것, 탈선의 도구로 이용된다는 것. 아니, 휴대전화가 이렇게 나쁜 놈이었단 말인가! 원인과 결과가 뒤집혀도 한참 뒤집혔다. 휴대전화가 사라지면, 학교는 예전처럼 조용해질까?

똑같은 내용의 수업을 똑같은 공간에 앉아서 똑같은 자세로 들어야하는 폭력적인 교육 환경, 빠져나올 수 없는 경쟁의 늪에서 친구이기보단 적이 돼버린 동료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해 주지 않는 교사들... "왜?"라는 질문을 진득하게 한 번만 던졌어도 이런 어이없는 해법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는 막다른 골목이다.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존재들의 처절한 몸부림. 이 고통 섞인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하면, 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절대로 교육 공간이 될 수 없다. 그곳은 심장이 없는 기계를 만드는 공장이자, 살아있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에 불과하다.

'이게 남 일이었으면, 진짜 코미디였을 텐데...' 이즈 님에게 이 사건이 웃지 못 할 희극인 것처럼,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학교를 둘러싼 이 진상 풍경은 우리의 현재이며, 곧 다가올 미래다.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사회'는 학교에서 시작되는 법이므로.
덧붙이는 글
이즈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170 호 [기사입력] 2009년 09월 16일 14: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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