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호의 인권이야기] 소수자가 차별을 만났을 때

박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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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도 AIDS/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이?

역지사지 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이해된다는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차별적인 언어와 행동을 할 때에는 그 뒤편으로는 무지 혹은 편견, 오해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역지사지라고,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들이 소수자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차별이 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차별 당사자들의 인권 감수성도 높아 차별하고는 거리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러기에 성소수자들을 비롯한 나는 반차별 감수성도 상당히 높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만의 오해인거 같다.

예를 들면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 속에서 AIDS/HIV 감염인에 대한 태도는 매우 적대적이다. 일부 몇몇은 그렇지 않겠지만- 솔직히 이 말마저도 자신 없다. - 대부분 감염인들은 자신의 질병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일부러 말하라고 권유하는 건 아니다. 때론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친밀함속에서도 AIDS/HIV와 관련해서는 예외가 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성애자들이 성소수자들에게 갖고 있는 무지 혹은 편견, 오해가 남성 동성애자들이 그리고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AIDS/HIV 감염자들에게 갖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이르는 질병, 방탕한 성생활에 대한 대가 등 AIDS/HIV에게 쏟아지는 오해들은 남성 동성애자들과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1980년 말에 한국에 쏟아져 들어온 AIDS/HIV의 잘못된 상식은, 아니 오해들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하다. 더군다나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AIDS/HIV 때문에 많은 질타를 받으면서 나름의 지식을 축적하여 일반 시민들보다는 AIDS/HIV에 대하여서는 나을 것이라는 선입견은 그냥 선입견이었을 뿐이다. 외려 어떠한 상황에서는 일반 시민들도 생각지 못하는 속설들로 감염인들에게 생채기를 남겨주기도 한다. 한 감염인 단체의 행사에 아웃팅을 걱정하여 그 행사의 주체들은 오지 못하고, 행사명에는 AIDS/HIV라는 단어를 감추어야만 했다. 감염인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 대표는 자신의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할까봐, 혹은 자신을 오해할까봐 자신의 활동명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바로 AIDS/HIV와 연결된 나를 포함한 남성동성애자들과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현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성소수자 감염인들은 이중의 억압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고 방치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형편없이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다. ‘설마, 이해해 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로 돌아오면, 더욱 힘들어진다. 또한 같은 편이라 생각되었던 사람들에게서 받는 차별은 다른 이들의 차별보다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면 나만의 억지일까?

위 사진:제1회 레드리본 페스티벌 포스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반차별 감수성

물론 거기에 나는 아니야 라고 발뺌하고 싶지 않다. 나조차도 직업상 많은 행사들을 기획하고 실행을 하지만, 많은 기획 속에서 다른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적은 매우 드물었다. 장애인의 대한 접근권은 물론이고, 어떤 경우에는 성정체성이 같은 성소수자들을 위한 배려마저도 매우 취약했다. 거기에는 AIDS/HIV 감염인을 포함한 소수자들도 포함된다. 물론 일을 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로 점점 나아지는 건 당연하지만, 여전하게도 많은 기획과 실행 속에서 약자들을 위한 배려를 찾기 힘들다.

‘지네들이 못나서..’라고 남 탓을 하기도 하고 장소 탓을 하기도 하며, 한국 사회가 수용하지 못해서라고, 말하기도 하며, 뻔뻔하게 ‘그래서?’ 라고 내 자신을 추스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배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물론 세상 모두를 위한 행사 자체가 어려운건 사실이지만 내 스스로 이런 저런 이유로 생각부터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난 오늘부터 달라질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대답은 글쎄요다. 이런 무지 혹은 편견, 오해로 근거한 차별들을 혼자서 개선하기는 어렵다. 내가 비록 그런 생각을 가졌다쳐도 현실에 안주할 때, 혹은 그런 고민의 깊이마저 하려 하지 않을 때, 누군가는 나에게 가차 없이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상황은 누군가의 고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서서히 개선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박기호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175 호 [기사입력] 2009년 10월 21일 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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