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1] 춤추는 경찰폭력, 가속페달을 멈춰라

신자유주의시대 경찰폭력의 작동 구조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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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80년대의 투쟁을 통해 군사정권을 극복하고, 형식적이나마 민주적 진전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이후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져온 소위 문민정부들 하에서도 경찰의 폭력은 끊이질 않았다. 2001년 인천 부평의 대우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2002년 롯데호텔 파업에 대한 폭력 진압, 2004년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에 대한 경찰폭력, 2005년 농민집회 당시 경찰에 의한 두 명의 농민 살해사건, 최근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과 경북지역 건설 노동자 파업에 대한 탄압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파업과 집회/시위 현장에서 문민 정권들은 과거 군사정권과 다를 바 없이 폭력적으로 경찰력을 사용해 왔다.


잠들지 않은 경찰폭력

물론 경찰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과 비교해 전혀 달라진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람들을 납치/감금하고 고문을 하는 등 무소불위의 불법적 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하게 되었으며, 공권력의 행사에 있어 최소한의 합법적 모양새는 갖추려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 진전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의 현장이나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은 끊이질 않고 있으며,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위 사진:경찰 폭력은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이다. <사진 출처: 노동자 미디어 광장>


2005년 쌀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 집회에서 경찰은 처음부터 작정한 듯 공격적인 진압 작전을 펼쳤고, 수백 명의 집회 참가자들에게 부상을 입히며 심지어 치료를 받던 부상자에게까지 방패를 내리찍는 등의 폭력을 휘두른 끝에, 두 명의 농민 참가자 전용철, 홍덕표 씨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 일로 경찰청장까지 사퇴를 했지만, 경찰의 폭력 진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얼마 전 7월 16일에도 포항의 건설노동자 집회에서 한 노동자가 경찰의 방패에 머리를 맞아 심각한 뇌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7월 9일 평택에서는 미군기지에 공생하는 상인들의 테러를 방조하고, 불법 검문으로 사람들의 통행을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경찰에게 항의하는 긴급집회를 가진 행진단에 대해,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새벽임을 이용하여 이미 해산 중이던 이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고 머리채를 잡아 연행하는 등의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경찰의 폭력은 집회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4월 경찰은 순천 하이스코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대테러 작전에나 투입되어야 할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경찰은 노동자를 향해 전기충격으로 사람을 무력화시키는 전자총까지 사용하였다. 경북지역 건설 노동자들이 파업을 조직하자, 노조 지도부에 대해 ‘협박공갈죄’ 등 말도 안되는 혐의를 적용하여 검거하는 등 노조에 대한 탄압을 가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인권경찰, 뒤로는 인권탄압

위의 사례들에서 보듯, 경찰폭력은 주로 강압적인 정부정책에 저항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불안정 노동과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이에 연대하는 인권, 사회단체들을 겨냥하고 있다. 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 농민들의 쌀개방 반대, 평택미군기지의 토지강제수용 반대, 최근의 한미 FTA 저지 등에서, 그리고 울산 건설플랜트, 청주 하이닉스, 기륭전자, 코오롱, KTX 여승무원, 경북 건설 노동자 등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경찰은 늘 공격적인 진압 작전과 함께 폭력을 휘둘러왔다.

위 사진:'인권경찰'의 전시장에서 인권단체들이 연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


그런데 이러한 경찰의 폭력은 과거와는 달리 합법성을 가장하고 있다. 오늘날 이른바 문민정부들은 민중의 삶에 적대적인 정책들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도, 형식적으로나마 획득한 절차적 정당성을 활용하고 있다. 쌀 개방이나 평택미군기지 확장 등은 형식적이나마 국회의 동의를 얻은 것이다.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확대 등 더욱더 불안정해진 노동 역시 97년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법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인 민주성을 앞세우고, 경찰은 정부 정책과 노동 착취에 반발하는 민중들의 저항을 진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으로, 경찰은 인권을 내세우며 자신들을 ‘인권 경찰’로 포장하고 있다. 2005년 10월 4일 경찰은 ‘과거의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아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며 남영동 대공분실을 폐지하고 경찰청 인권센터로 만드는 ‘인권경찰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허구적인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은, 실제론 남영동 대공분실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다른 부서로 통합 이전되었을 뿐이며, 심지어 이 행사가 있고나서 불과 한달 후에 전용철/홍덕표 살인 진압 사건이 발생했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또한 경찰이 인권을 내세우는 것은 단지 자신들의 폭력적 실체를 가리려는 의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에는 생존을 걸고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폭력 시위로 매도하여 탄압을 정당화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대표적인 예가 폴리스 라인이다. 경찰은 집회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한 뒤, 그 선을 넘어오지만 않으면 진압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경찰은 합법적인 집회 시위를 보장한다는 인권 친화적 모양새와 함께, 이를 지키지 않는 시위대를 불법 폭력 시위대로 탄압할 명분까지 얻는 것이다.


교묘해지는 경찰 폭력 - 사적 폭력의 방조와 묵인

경찰이 용역 깡패들의 폭력과 평화 행진에 가해진 상인들의 테러 등 사적 폭력을 묵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최근 레이크사이드CC 골프장에서는 사측 구사대와 용역이 노동자들에게 초산이 담긴 비닐봉지를 투척하여 한 노동자가 실명위기에 처해있는 실정이다. 평택에서는 미군기지를 위한 토지강제수용에 반대해 평화롭게 행진하던 '평화야 걷자‘ 행진단이, 기지 확장에 찬성하는 상인들에게 각목과 돌멩이 등으로 한밤중에 테러를 당했다. 두 사례 모두 경찰은 현장에 있었으나 폭력 사태를 방관하기만 했을 뿐, 현행범 체포는커녕 이들을 제지하거나 해산 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위 사진:지난 1월 병원측에서 동원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현관에서 세종병원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사진 출처: 보건의료노조 부천세종병원지부>


이렇게 경찰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적 폭력을 용인함으로써, 자신들 스스로는 부담을 덜고 ‘인권경찰’이라는 세련된 이미지를 구기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저항 세력에게는 더욱 악랄한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적 폭력은 경찰이 직접 수행하거나 지시한 것은 아닐지라도, 경찰 폭력이 교묘해지고 세련화되는 경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사회 협약’의 탈을 쓴 기만적 선전

이렇게 허구적인 합법적/인권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활용해온 경찰은, 최근에는 소위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아래 민관공동위원회)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 민관공동위원회는 농민 집회에서 농민 참가자가 사망하는 등 집회/시위에서의 폭력 충돌이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와 몇몇 시민단체 인사들이 이를 일종의 “사회적 협약”을 통해 해결해보겠다며 꾸린 국무총리실 산하의 조직이다.

그러나 애초에 갈등의 근본 원인인 수탈적인 정부 정책은 젖혀놓고, 시위대에게만 폭력 사용의 책임을 묻는 이 위원회의 접근 방식은 그 자체로 기만적이고 폭력적이다. 실제로 이 위원회는 경찰청 내의 태스크 포스 팀이 만든 방안들을 민간위원들이 제대로 검토해보지도 못한 채 승인해서 발표하는 식으로 운영되며, 이곳에서 발표한 대책안을 살펴보면 △강화된 소음기준과 폴리스라인의 엄격한 적용 △특정인에 대한 집회 참가 차단 △형벌의 상향 조정 △민사상 배상 청구 활용 등 철저히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약하고, 정부 정책에 저항하는 이들의 합법적 공간을 줄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경찰의 폭력을 통제하는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식으로 추진되는 정부와 경찰의 “사회적 협약”은 갈등과 충돌의 책임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선전 도구로서, 이를 빌미로 저항하는 이들을 더욱 탄압하려는 정부와 경찰의 수법에 불과하다.


경찰폭력 없는 세상을 위하여

이렇듯 날이 갈수록 세련화되고 교묘해지는 국가와 경찰의 폭력은 제도적으로 견제될 필요가 있다. 우선 경찰이 진압작전을 수행할 때는 반드시 개인 식별 표지를 부착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진압작전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여 공권력 행사에 책임이 뒤따르도록 해야 한다. 한 집회에서 농민이 두 명이나 사망했는데도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분명 잘못된 것으로,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막강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그만큼 엄격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시위진압만을 전담으로 맡는 준군사조직인 경찰기동대가 축소 내지 폐지되어야 하며, 위헌 논란과 함께 그 자체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은 전의경의 시위 진압 동원이 금지되어야 한다. ‘대간첩작전’이라는 전투경찰설치법의 목적이 사실상 불필요해진 상황에서, 과거 민주화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전의경들을 동원하던 일을 아직도 계속하는 것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

또한 날로 심해져가는 구사대와 용역 깡패들의 폭력과, 이를 방조하는 경찰의 직무유기를 견제하기 위해 용역경비업법이나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집회나 파업 현장에는 국가인권위 등의 인권 감시 기구에서 상시적으로 감시단을 파견하여 공권력의 폭력적인 행사를 감시하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결국은 문제해결의 뿌리까지, 곧 정부로 하여금 민중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적대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권오름 제 13 호 [기사입력] 2006년 07월 19일 5: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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