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비친 인권풍경]② 2005년 프랑스 파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표적 단속된 미누 님을 만나다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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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한국 땅에서 이주노동자와 함께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던 미누( 본명 미놀드 목탄) 씨가 어느 날 일하던 방송국 사무실 앞에서 잡혀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잡혀간 것은 표적 단속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주노동자방송국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던 그를 잡아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가 언제 출국될지 모르지만 18년간 한국 땅에서 그가 원하던 세상, 꿈을 듣기 위해 서울에서 화성으로 떠났다. 사실 그는 이전 정부에서 문화공로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인사라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특별체류 요청을 하였지만 기각은 거의 예상되던 현실이었다. 서울에서 화성외국인보호소로 가는 길은 매우 멀었다. 대중교통으로는 3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사실 물리적 거리보다 그와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마음의 벽이 더 힘들었다.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논을 지나 보호소라는 말이 무색한 콘크리트 건물의 면회실은 마치 구치소 같았다. 그래도 강제출국당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그를 보겠다고 온 수십 명의 온기가 있어 그나마 그가 계속 웃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많았던 까닭에 인터뷰는 다음날 전화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출국되어 이 땅에 없지만 그의 이야기를 전하자는 마음으로 그의 말을 옮긴다. 우리를 막아버리는 권력의 벽을 뚫어보자는 심정으로 그의 말을 전한다.

위 사진:"미누에게 자유를!" 미누 씨는 결국 강제출국됐다.


18년이나 한국에서 활동했는데 갑자기 단속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저도 처음에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활동하는 건 다 알고 있었고 숨어서 활동한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활동도, 반정부적인 활동도 아니어서 당당하게 활동했는데 갑자기 잡아와서 놀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주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활동했는데 단속을 한 것은 우리의 활동을,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소중히 해온 것들을 반정부적이라고 보는 게 아닐까 싶어요.

18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를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있는 현실, 이게 정착되면 또 다른 인종이 정치화할 수 있겠구나 라는 우려를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다문화사회는 여러 인종과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인데 이걸 싫어하고 폐기하고 싶은 거지요. 다른 문화 사람들과 섞이는 것에 겁을 먹게 하려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정주화가 우려되니까 뿌리 뽑으려고 하는 거지요.

연행되던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사무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많아요. 큰 길, 골목길 등. 늘 다니는 골목은 사람이 잘 안 다니고 주택가여서 외부인이 금방 드러나는 곳이에요. 그날 출근하러 가는데 사무실 2~3m 앞 쯤 검정 승용차에서 3명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내리더니 저를 보자마자 한국인인지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말할 의무가 없다고 얘기했고 그들이 나를 체포하려 해서 무슨 일로 체포하는지 모르지만 사무실에 연락하게 해달라고 했어요. 저를 보자마자 핸드폰을 빼앗았거든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 사무실 근처에서 자주 본 아저씨가 있었어요. 전에는 그 건물에 있는 다른 사회단체에서 자원활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사무실 건물에서 나를 보지 않았느냐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하면서 얼굴색이 변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전부터 준비를 했나 봐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하게 된 계기와 그 동안의 활동을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부당한 대우를 해요. 못 배운 사람들이라는 식의 편견이 있어요. 그런 걸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로 인해 이주노동자가 받는 상처를 줄이기 위해서도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만히 있으면 해결되지 않으니까. 또한 한국에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가지 못해요. 타국이어서 힘든 것도 있는데 그렇게 대우받으니까 나쁜 이미지가 남죠. 그래서 서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노래도 들려주고 만남도 갖게 하려고 활동하게 되었어요.

18년 동안 활동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어요. 그래서 이 나라가 잘 돼야지 하는 생각을 해요. 50년 후에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한국인들이 살아갈 텐데 이를 주체적으로 움직여서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50년 후를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났던 이주민들의 ‘폭동’같은 큰 충돌이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어요. 이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며 활동했어요.

특히 기억나는 게 있다면?

노래할 때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이주노동자들도 활기차게 활동하니까 좋았어요. 우리 공연을 본 다문화가족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이 있는 가족이었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난 아직도 거리를 갈 때 사람들 눈총과 인식 때문에 부인 손을 잡지 못해요. 제 부인이 이 나라 사람 취급을 못 받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공연을 보니까 우리 편인 거 같아 고맙네요”라며 제 손을 잡았어요.

국제결혼 가족들은 소외된 경험이 많을 거예요. 여성들은 특히 소외를 많이 경험하지요. 많은 분들이 사회로 나왔으면 해요.

이번 사건을 통해 다문화정책의 허상이 드러났다는 말이 많은데요

정부는 다문화사회를 준비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 지원정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문화정책이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이루어지려면 다양한 인종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일부 지원책으로 다문화가 정착될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 다른 인종을 단지 ‘지원받는 자’로 한정한다면 이주민 문화는 정착될 수 없습니다. 일방적인 한국 문화 강요가 어떻게 다문화정책일수 있나요? 다른 문화와 손을 잡을 수 있는 정책이어야 다문화주의라 할 수 있지요.

저는 방송국에서 카메라로 영상을 찍기도 하고 편집도 하고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자연스런 어울림을 특히 강조했어요. 이주민 토크쇼 ‘좋아좋아‘를 하면서 유쾌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언어장벽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언어로 뉴스를 만들었습니다.

위 사진:'보호소'라기보다는 '구치소'같은 느낌의 화성 외국인보호소.


보호소 안은 어떤가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있어요.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강제 단속하면서 많이 하는 얘기가 외국인 범죄 예방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곳에 들어오니까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범죄 때문이 아니라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잡혀 와요.

이주민들이나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

이주민들과 한국인들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좋은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접촉을 많이 시도하는 게 중요하지요. 이주민들도 어깨를 움츠리고 있지만 말고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고 소통하려고 노력했으면 해요. 어렵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이 용기와 희망, 힘을 냈으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98퍼센트라면 이주민들은 2퍼센트밖에 되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면 달라질 거라고 봐요. 국제결혼도 많아졌고 그들의 2세인 아이들도 많아지고 있으니까. 같이 살 수밖에 없는데, 서로 조금만 노력하면 똑같이 살기에 편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77 호 [기사입력] 2009년 11월 04일 16: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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