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①] 용산 사건에서 재판부가 놓친 것들

인권의 가치를 외면하면서 스스로 권위를 실추시킨 사법부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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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가 잘 곳이 없다면 그것은 국가가 주택문제에서 소유권의 원칙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배고픈 사람에게 먹지 말라고 명령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가 고프다고 해서 이웃집에 있는 음식을 함부로 먹을 수 없게 만드는 것 역시 실정법이다.
- 캐스. R. 선스타인 <인권의 대전환>에서 재인용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27형사부(재판장 한양석, 아래 재판부)는 용산참사와 관련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거의 받아들여 철거민들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사법부가 진실의 꽃을 피우리라 기대했던 요구가 외면당했고, 사법부가 정의의 보루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희망했던 바람이 배신당했다. 특히 재판부는 세입자들이 겪은 주거권·생존권의 침해에 관해서는 시종일관 외면하고 부차적으로 다루었으며 책임을 회피했다. 판결문을 통해 나타난 재판부의 편향된 시각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사법부가 사회적인 약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재판부, 주거권 침해 외면

첫째, 재판부는 사회권의 ‘사법심사 적합성’을 부정하면서, 이 사건의 구조적 원인이 되었던 재개발 지역에서의 세입자 주거권과 생존권을 외면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도시재정비 과정에서 부당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사회의 책무”라고 인정하면서도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의 권리보호는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정책적 논의와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므로 이 재판에서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고 했다. 한마디로 세입자의 권리보호는 사법부의 소관이 아니라며 정책과 정치의 영역으로 입법부, 행정부에게 공을 넘겼다.

하지만 세입자의 주거권·생존권 보장을 위해 사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기만 한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재판부는 단지 용산철거민 사망 사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임무를 방기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지난 5월 22일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 12부 김천수 부장판사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9조 6항에 관해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다. 이 조항은 도시정비사업 관리 인가가 나면, 건물 소유주와 세입자 등이 토지 및 건축물에 대해 사용하거나 수익을 낼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건물 명도소송*에서 집행결정이 나면, 시행자는 이 조항에 따라 세입자의 영업행위를 제한하고 쫓아내 철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법부가 강제퇴거를 강제하고 있는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나니 이를 가려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한 것이다.

사법부의 재해석 권력을 통해 입법을 촉진할 수도

이렇듯 사법부는 재판 심리과정에서 인권의 가치와 감수성에 합당하지 않는 법과 제도를 선별해낼 수 있는 감식력을 통해 입법 활동을 촉진할 수 있다. 이런 촉진이 가능한 것은 사법부가 갖고 있는 재해석 권력에서 나온다. 사법부는 현행 제도와 법을 인권의 가치와 감수성에 일치시키도록 재해석하면서 입법부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한양석 판사가 재개발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세입자들의 입장에 서고자 노력했다면, 강제퇴거를 강제하는 관행에 ‘그만’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했어야 하고, 재판부가 부과하는 형벌의 강도에 세입자들의 고통을 반영했어야 한다.

대화와 소통을 위한 재판

또한 이 사건이 ‘법대로’ 추진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공무집행이 합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법부는 심판만 하면 자기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왜 세입자들이 망루에 올라갔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사법부는 행정부가 정책과 제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인권의 가치와 감수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점을 꼼꼼히 따져 묻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사회적인 약자인 재개발 지역의 철거세입자들의 입장을 사회적으로 수용하지 못함에 따라 발생한 사회적 갈등에 기인한 측면이 있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입장이 무엇인지 듣지 않았다. 가령, 재판부는 심리를 통해 세입자들이 개발과정에서 공공기관이나 조합으로부터 충분히 정보를 들을 수 있었는지, 개발과정에 세입자들이 참여할 수 있었는지, 세입자 이주대책이 적절했는지, 개발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세심하게 밝힐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사법부는 행정부가 인권보장을 위한 자신의 책무성을 이행하지 않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행정부는 재개발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이나 집행의 정당성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개발과정에서 세입자들의 주거권·생존권은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을 뿐더러, 재판부는 ‘법대로’ 라는 함정에 스스로 빠져 인권의 가치를 외면했다. 재판이라는 공간은 어떤 죄의 성립 여부를 다투는 것을 넘어 개발에 관한 쟁점을 사회적으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공간으로 자리를 매길 수 있음에도 재판부는 역할을 포기함으로서 스스로 법원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신뢰를 저버렸다.

세입자의 저항이 업무방해죄로 둔갑

둘째, 재판부는 강제퇴거에 저항하는 세입자들의 기본권 행사를 ‘업무방해죄’로 몰았고 세입자들이 용산4구역에서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철거업체의 철거업무를 보호해야할 업무로 봤다. 재판부는 “조합의 재개발 업무 또는 호람건설의 건물 철거 업무 및 그에 부수되는 건물관리 업무는 충분히 업무방해죄에 있어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업무에 해당한다”고 했다. 또한 “직원들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정만으로는 조합과 합법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건물철거업무를 해온 호람건설의 건물철거와 관련한 .... 건물에 대한 관리업무가 반사회성을 띠게 되어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 업무방해죄는 파업 중인 노동자를 엄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왔고 ‘계급형벌’이라는 법학계의 지적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철거민들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판결한 것은 결국 자신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사람을 형벌로 다스리겠다는 계급적 의지를 보여준다. 업무방해죄는 ‘업무’나 ‘방해’의 개념이 워낙 광범위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권력의 의지에 따라 자의적이고 선별적으로 적용하기 쉽다. 사용자와 노동자 혹은 재개발 조합·시공사와 세입자는 결코 동등한 권력관계에 있지 않다. 노동자와 세입자가 자신의 기본권을 표현하는 방식은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업무를 뚜렷한 목적 하에 의도적으로 방해함으로써 드러날 수밖에 없다. 권력자들은 약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갖고 있지만 약자들은 권력자들의 기본권 침해를 막아낼 수 있는 수단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자들은 약자들의 요구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법학계는 일찍이 업무방해죄의 위헌성을 지적해왔음에도 검찰과 사법부는 노동운동뿐만이 아니라 생존권 투쟁에 업무방해죄를 들이대고 있다. 최근 업무방해죄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낸 사건으로 조중동 광고주 불매 운동과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 투쟁에 연대한 활동가들을 처벌한 사례가 있다.

다시 이 사건으로 돌아와서, 주거권·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철거민들의 저항이 업무방해로 둔갑하면서, 재판부는 철거업체의 폭력을 매우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재판부는 판결문 곳곳에서 저항하는 세입자들을 향해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 방해’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유엔 <개발로 인한 강제퇴거에 과한 기본원칙과 지침>에 따르면, 설사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개발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반대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협의할 기회를 계속 제공받아야 한다. 그러나 재판부의 시각은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방해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단죄를 내렸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이 업무방해로 유죄판결을 받을 것에 관해 인제대 법학과 박지현 교수는 “소비자 보호운동,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 행사는 설령 타인의 업무를 방해할지라도 이를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헌법이 어떤 행위를 기본권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그러한 권리 행사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불이익은 당연히 감수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즉 세입자들이 호람건설이 관리하고 있는 남일당 건물에 들어가 망루를 쌓고 저항한 행위는 비록 철거업무를 방해했더라도 세입자들의 주거권·생존권의 맥락을 놓쳐서는 안된다. 사법부가 개발과정에서 세입자들이 겪고 있는 착취는 얘기하지 않으면서 저항이 불온하다고만 얘기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위 사진:용산 철거민 선고 공판이 있던 법원에서 "철거민은 무죄다"는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던 용산 철거민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씨가 오열하고 있다.<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셋째, 재판부는 기본권 옹호를 위한 인권옹호자들의 사회적인 연대를 모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번 재판의 피고인 김주환, 천주덕, 김창수 씨 등에 대해 “전철연 회원으로서 용산4구역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연대 투쟁을 위하여 이 사건에 가담한 것은 죄질이 불량하므로 중형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용산4구역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을까. 재개발은 용산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재개발에 의해 당장 살던 집을 비워야 하는 사정, 적절한 이주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현재 살거나 영업하는 곳보다 열악한 조건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이 땅 재개발 지역 모든 세입자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아픔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정부의 정책에 의해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철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역의 철거민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용산4구역 철거민들의 현재가 자신들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사실. 시간과 공간만 다를 뿐 용산4구역 재개발의 현실과 다른 지역의 재개발 현실은 사실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같은 사안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연대는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연대할 권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서로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권리이다. 연대할 권리는 동료 인간에 대한 예의이며, 인류에게 도덕적인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 연대할 권리는 어떤 실정법에도 제한됨 없이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고결한 능력을 갖고 있는 세입자들을 향해 죄질 운운 하는 것은 재판부의 저급한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용산철거민 사망 사건의 판결을 보면서, 결국 무엇을 ‘죄’로 물을 것인지는 그 사회 지배 권력의 ‘재산과 이익’에 얼마나 위해한가를 기준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돈이 많거나 먹을 것이 충분한 사람은 절도죄로 가난한 사람보다 감옥에 들어갈 확률이 낮다.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훔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훔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법 적용은 결국 평등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한 사회가 인간 존엄성과 자유, 평등에 기초한 사회가 되려면 그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삶의 기본적 품목들을 제공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그루트붐(Grootboom) 판례를 기억하면서, 개발로 강제퇴거의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용산철거민 사망 사건의 유가족들이 이번 판결로 절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 명도소송: 법원이 세입자의 주거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토지의 소유권 또는 사용·수익권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해서만 판결하는 것. 많은 개발구역에서 명도소송에 따라 사업시행자는 거주자의 동의 없이 ‘판결의 집행’임을 내세우며 세입자들을 쫓아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인권의 대전환>(샌드라 프레드먼 지음, 조효제 옮김)을 참조하였습니다.
인권오름 제 177 호 [기사입력] 2009년 11월 04일 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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