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준의 인권이야기] 도대체 누가 사용자?

‘노동자하기 참 어려운’ 건설현장

강성준
print
친구 가운데 하나가 포항 포스코 본사에서 일한다. 학생시절 언제나 좌중을 웃기면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후배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났던 이 친구는 졸업 후 포항에서 직장을 구했다. 간혹 결혼식 하객으로 마주쳐 반갑게 안부를 묻는 친구였다.

이 친구가 지난 14일 친구들이 자주찾는 인터넷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포스코 본사가 건설노조원에 의해 점령됐는데, 직원들이 사무실에 출근도 못하고 본사 옆 강당에 모여 일도 못하고 있다면서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 이 친구는 노조원들이 본사직원들 밥도 못먹게 하고 퇴근도 못하게 한다면서 “나름대로 주장하고 싶은 부분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방법들이 구태의연하게 제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고 썼다.

위 사진:포항 포스코 본사를 봉쇄한 경찰 [출처] 포항지역건설노조


건설노동자들이 포스코를 점거한 까닭

‘구태의연한’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포항지역건설노조는 지난 1일부터 △15% 임금인상 △단체협약 체결 △주5일근무(토요일 유급휴가) △불법 하도급 양산하는 시공참여제 폐지 △토목노동자 8시간 노동 △부당해고자 전원 현장 복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포스코 정규직의 평균 연봉이 20년 근속자 기준으로 6000만원 이상임을 감안할 때 건설노조가 밝힌 월 평균임금 180만원은 36% 수준에 불과하다. 도시노동자 평균임금과 비교해봐도 83%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해 포스코는 6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게다가 7월 1일부터 100인이상 사업장 주40시간제가 실시됨에 따라 사측은 토요일을 무급휴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주40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는 포스코에서 그 플랜트를 신축하고 보수하는 이들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를 예외로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오히려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조건으로 일하는 건설노동자에게 최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안그래도 날씨에 따라 1년에 평균 9개월밖에 일을 못하는 건설노동자들에게 무급휴일은 현재 임금의 하락을 의미할 뿐이다.

이에 더해 건설현장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단체교섭마저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전문건설업체는 하도급 금액과 노동조건의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포스코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지난 2월 설립된 포항건설노조 목공철근분회는 단체교섭마저 거부당하고 있다. 포항건설노조가 5월 29일부터 준법투쟁을 통해 토목현장에서 8시간 노동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자 토목업체들은 수십 년간 내려온 관행을 고집하면서 ‘전원 보따리 싸서 집에 가라’는 공고문을 붙이고 300여명의 토목노동자들을 부당해고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열쇠를 쥔 포스코를 찾아 교섭에 나설 것을 요구했고, 지난 11일 포스코는 면담을 통해 전문건설업체들이 노조와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13일 새벽, 파업이 진행중인 포스코 건설현장으로 파업 대체인력을 태운 통근버스가 투입되는 장면이 조합원들에 의해 발각되었다. 이에 성난 조합원들이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지만 포스코는 묵묵부답으로 맞섰다. 결국 오후2시경 1000여명의 조합원들이 포항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포스코 본사를 봉쇄한 경찰 1만여명은 한때 진입을 시도했고 현재도 강제해산을 경고하면서 경찰력 투입 수순을 밟고 있다. 또 음식물을 전달하려는 가족들마저 가로막았다. 급기야 16일 경찰은 연대집회 대열을 기습침탈해 방패로 조합원 하중근 씨의 후두부를 가격했고, 하 씨는 뇌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다.

사태가 이런데도 18일 천정배 법무부장관, 이용섭 행자부장관,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합동담화문을 통해 “포항지역 건설노조가 사용자인 전문건설협의회를 상대로 파업을 벌이다가 여의치 않자 노사관계에 있어서 직접 당사자가 아닌 포스코의 본사 건물을 점거”했다며 “노사관계를 벗어난 명백한 불법행위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합법보장, 불법필벌’의 원칙도 덧붙였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낳은 구조적 문제

정부는 합법적인 의견개진은 보장한다지만 건설현장에서의 ‘합법파업’은 무력화되기 마련이다. 건설노동자들이 하청 전문건설업체와 단체협상을 체결해 왔지만, 발주처나 원청에 의해 무력화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임금이나 노동조건 문제도 발주처의 ‘처분’에 달려 있어 전문건설업체와 협상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절차를 밟아 합법파업을 진행하더라도 ‘사용자’가 아닌 발주처가 대체인력을 투입하면 파업은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한다.

이른바 ‘시공참여자 제도’는 지난 1996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하자 '부실시공 방지대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다. 불법으로 존재하는 하도급자를 양성화시키고 시공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제도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시공참여자 제도’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야기하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건설현장의 중간관리자에 불과한 일명 ‘오야지’에게 임금과 4대 보험, 심지어 안전장구 지급 책임까지 전가시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임금체불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고, 산재로 생명을 잃어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면 공사비는 최초 도급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결국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이 하청업체에 의해 중간착취당하는 것을 눈뜨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도 불가능하다. 산업안전교육 장소제공이 단체협약에 명시되더라도 원청이 장소제공을 거부하면 그만이고,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원청이 현장 출입증 발급을 거부하면 사실상 해고를 의미한다. 부당한 해고를 방지하기 위해 노조가 조합원 명부를 공개하지 않으면 사측은 ‘우리 현장에는 건설노조 조합원이 없다’면서 교섭을 거부한다. ‘불법필벌’한다는 정부도 사측의 편에 서서 힘을 보태왔다. 검찰은 2003년 이후 하도급 회사 소속인 건설노동자들이 교섭대상이 아닌 원청회사에 교섭을 요구하고, 노조 전임비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했다면서 대전과 천안, 경기서부의 조합원들을 구속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3월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를 통해 “검경의 개입과 건설연맹 간부들에 벌금 및 징역을 부과한 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면서 “정부가 적절한 명령을 발함으로써 건설연맹 간부들에 대한 협박과 탄압을 즉각 중단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 “정부가 유죄 판결 및 징역형을 재검토함으로써, 기소, 구금, 투옥에 따른 고통 및 손실에 대해 건설연맹 간부들에게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일부 언론은 이번 투쟁에 대해 ‘억지와 생떼, 자해공갈식 노동운동’(중앙일보)이라고 칼날을 겨눴다. ‘이런 노조,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동아일보)고 쓰기도 했다. 글머리에서 소개했던 그 친구는 “학생때는 잘 몰랐는데, 직장인이 되보니, 기업하기 참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고 글을 맺었다. 그 친구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학생때는 잘 몰랐는데 노동자하기 참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덧붙이는 글
강성준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3 호 [기사입력] 2006년 07월 19일 14:00:21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