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의 인권이야기] 노동의 날개

노동에 대한 나의 자유연상법

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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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한테 10만원 줄 테니 같이 자자고 하더라구.”
“야한 동영상 틀어 놓고 같이 보자고 하데.”
“하반신 마비인 장애인을 목욕서비스 해드리는데 의도적으로 가깝게 끌어안는다거나 가슴이 빵빵하니 보기 좋다는 얘기를 막 하는 거야.”
“그 집 바깥양반이 안방에 이불 펴 놓고 들어오라고 손짓을 막 하는 거야. 고객인 환자분이 계시는 데두.”

짐작하겠지만 환자나 장애인,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시는 방문 돌봄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나는 한 달에 적게는 한두 번, 많게는 네다섯 번 이분들을 만난다. 성희롱예방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위에 언급한 사례는 무수히 많은 사례들 중 일부일 뿐이다. 더 심한 사례도 많다. 아니, 알려진 사례들은 사실 그나마 굴욕과 수치심을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드러낼 용기가 있는 분들이 해 주신 증언들일 뿐이다. 대부분이 여성으로 사회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거나 경력단절을 경험한 후 이 일을 하게 되신 분들이라 차마 말로 할 수 없어 속 앓이만 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들을 곤란하게 하는 상황은 성희롱뿐만이 아니다.

“내가 파출부인줄 알아. 집에 가면 가사도우미 왔다고 밥부터 빨래, 청소까지 다 해 놓고 가라는 거야. 어차피 당신은 정부에서 돈 받아서 하는 일이니까 나 덕분에 먹고 사는 거 아니냐면서.”
“어느 날, 집에 있던 물건이 없어진 게 있었다나봐. 근데 제일 먼저 내가 의심을 받았던 거지.”
“내가 그 집에서 일하니까 자기네 식구인줄 알아. 그러니까 그 집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막 함부로 하는 거 같애.”

이런 가외 노동과 인격적인 모독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힘든 육체노동으로 인해 여기저기 통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위 사진:전국요양보호사협회 회원들이 1일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1년을 맞아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전국요양보호사협회의 사진을 참세상에서 재인용)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 할 이유가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생애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돈을 벌어들인다는 기쁨에, 뭔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보람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그런데, 참 힘들다. 먹고사는 것도, 자립과 자유를 위한 것도, 보람을 느끼기도. 힘든 육체노동에 몸은 여기저기 아프고 결리는데 ‘집에서 하는 일’이라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고객에게 짜증이 난다.

노동자가 되면 주종관계가 만들어지는 사회

우리사회에서는 이상한 증상이 있다. 이 증상은 어디나 공통되는 증상인 것 같은데, 어디서 무엇을 하건 ‘노동자’가 되면 순식간에 그 관계는 주종의 관계가 된다. 노동자는 낮은 존재, 하찮은 존재, 자신의 주장도 없는(혹은 없어야하는) 존재로, ‘고객’이나 ‘사업주’는 그들의 주인으로. 그리고 노동자는 ‘식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함부로 해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파업은 ‘불편’이 되고 ‘폐’가 되는 일이 되어 버린다.

참, 이상한 증상이다. 노동은 우리를 유지하고 보존하는데 필수적인 것인데, 늘 하찮은 것으로 취급된다. 자신의 힘으로 노동하는 일은 하찮다. 특히 육체노동이나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인 것처럼 ‘보이는’ 일은 하찮다. 실제로 하찮은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런 것이다.

노동은 이렇게 날아갈 수도 없는 잘려버린 날개가 된다.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노동의 날개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노동의 날개가 있기는 한 걸까? 어디서 찾을 수 있지? 빨리 찾고 싶다. 쩝!


덧붙이는 글
양미(빨간거북) 님은 서부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81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02일 16: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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