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비친 인권풍경] 대학졸업 앞에 놓인 것들 ①

“우리, 살아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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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학졸업시즌입니다. 졸업하면 인생의 또 하나의 문턱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문턱이란 게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존재인 것만 같습니다. 수능을 치면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고 그러다보면 결혼을 하는, 이미 아주 많은 것들이 단계별로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렇게 살지 않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어떻게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다음 단계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하니까요.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습니다. 2월에 함께 졸업할 친구입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웃고 고민도 많이 얘기했습니다. 자유나 좋아하는 일에 대해 참 많이 얘기했던 것 같은데, 졸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려보니 친구와 나나 둘 다 생각이 조심스러워진 걸 느낍니다. 친구는 대학 4학년에서야 무턱대고 힙합을 추겠다고 연습생으로 들어가더니 막상 졸업생이 되자 많이 갈등하는 것 같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철’이란 건 들지 않고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졸업생이라는 딱지 앞에서 친구도 저도 갈팡질팡 합니다.

위 사진:올해 법대를 졸업하는 문하나

(아, 이제 우리도 졸업이다. 마지막 학기 학점은 확인했어?)
아니, 아직 안 떴더라.

(졸업 맞은 기분이 어때?)
시원섭섭해. 일단, 뭔가 의무교육과정을 마친 기분이야. 그래서 더 이상 학교를 더 다녀야 한다는 압박은 없어졌잖아. 완전 내 시간만 남아도는 거잖아. 그래서 좋기도 하고 약간 무섭기도 하고.

(완전 니 시간만 남아돈다고?)
그렇지.

(난 오히려 뭔가 다음 단계를 찾아가야한다는 압박감이 드는데..)
난 그게 기대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 같아.

(주위에 졸업하는 친구들 많아?)
한 네다섯 명. 한 명은 간호사, 나머지는 임용고시 준비, 나머지는 그냥 직장 같은 데 들어갔지.

(바로 취직했네.)
응. 취직하려고 마음먹은 애들은 바로 하긴 하더라.

(너는 왜 바로 취직을 안 했어?)
못 한 거야.

(왜?)
별로 취직에 대해서 준비가 되어 있던 것 같지 않고 취업을 반드시 해야지 라는 생각도 학교 다닐 때는 없었던 것 같고. 준비가 부족했으니까 아무래도 취업이 힘든 건 당연하겠지. 취업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게, 아직 많이 되지 않았어.

(취업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은 왜 들었어?)
내가 춤을 추려고 그랬잖아. 춤으로 돈을 벌려고 했었는데, 그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 뭔가 내 현실이랑 안 맞다는 거지.

(니 현실이 왜?)
나이도 있고……무릎도 아프고……무릎이 아픈데, 빡시게 추면 더 아플 거란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또 겁이 많잖아. 무릎에 대한 압박이 의외로 많이 컸어.

(대학생활은 어땠어? 대학은 꼭 가려고 했던 거?)
내 의지랑은 상관없었지. 다 가니까, 온 거지. 그 외 다른 길은 안 보였지 아예. 다른 길이 있는지도 몰랐고 생각도 안 해봤고. 그냥 많이 나태하기도 했고, 막 바쁘기도 했고, 그래도 대학생활은 나름 괜찮았던 시간 같아. 나에 대해 많이 고민할 수도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됐고. 그게 굳이 대학에서 생각하고 고민했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웃음) 아무튼 대학은 나한테 그런 곳.

취직, 노동, 자아실현

(대학생들보고 막 88만원 세대라고 하잖아. 그런 게 실감이 와? 사실 나는 88만 원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너무 궁핍해져서 그런가.)
실감나지. 왜냐면 이제 슬슬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잖아. 그런데 대기업들은 몰라도 그냥 중소기업에 들어가려면 그 정도 생각해야지.

(이제 취직 준비할거야?)
어. 해서 돈도 벌고 자기 발전도 좀 하고,

(자기 발전?)
그냥 일하면서 마냥 일만 하는 게 아니고 계속 생각도 하고, 이것저것 부딪쳐도 보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

(노동은 자아의 실현이란 말을 믿어?)
생각 안 해봤는데.

(니 발전에 도움이 되는 취업을 할 수 있겠냐는 거지.)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찾고 있는 일들은 좀 어렵기도 어려울 것 같긴 한데 많이 공부를 해야 되는 일을 하고 싶어. 그래서 내가 발전하는 게 보이는.

(그 취업이 쉬울 것 같다고?)
쉬울 것 같진 않고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아.

(딴 친구들은 대학 다닐 때 취업준비를 했잖아. 그런 거에 대한 조급증은 없어? 사실 나는 내가 덜 현명한 건 아닌가도 싶더라고. 대학 때 조금씩 취업준비를 할 수도 있었던 거지. 미리 준비한 친구들보고 나는 그러기 싫다고 말했던 게, 사실 되게 쉬운 말이었던 것 같아.)
어른들 말이 틀린 건 없는데, 어른들이 무슨 말씀을 해주셔도 내가 느끼기 전에 나는 안 움직이는 것 같애. 어른들은 나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분들이 살아봤으니까 그런 말을 해준다는 생각은 들어. 후회까지는 아니고 나란 사람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 거지. 내가 부딪쳐봐야 깨닫고, 머리가 나쁜가.

(근데 더 중요한 건, 취업 준비했다고 해서 졸업하면 바로 취직되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 이게 더 큰 문제야. 주위에는 막 이력서 몇 백 장씩 써도 안 된다고 하잖아.)
근데 나는 그렇게 눈이 높은 게 아니니까. 일단 면접은 보자고 연락은 오는 거야. 면접을 봤을 때 내가 부족한 게 있으니까 떨어지는 거란 생각이 들어. 면접 준비를 많이 해야겠고, 이력서 쓸 때 완전 쌩뚱 맞은 데 쓰는 게 아니고 내가 대학 때 활동한 걸 기반으로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 회사에 적합하다고, 내가 봐도 잘 쓴 이력서는 연락이 오더라고.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면……어쩔 수 없는 거고.

위 사진:지친 발을 이끌고 대학문을 나서다

춤은 어쩔 거야? 먹고 사는 건 어쩔 거야?

(그럼 이제 취직준비를 시작하겠네. 춤은 어떻게 할 거야?)
춤은 내가 그만두지 못 하는 게 아니라 춤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만 못 두는 것 같애. 춤에 대한 내 마음을 모르겠어. 그만두면 후회할 것 같고, 춤을 추면 너무 좋다? 시간도 잘 가고 그 다음에 춤을 추지 않을 때도 춤 생각이 많이 나고. 같이 하는 사람들도 너무 좋고, 사람들이 아주 약간이나마 나에게 기대해주는 것 같고, 나도 내가 조금씩 느는 게 보이고, 결과적으론 춤이 좋다는 얘기야. 근데 좋다는 것 이외에 “내가 춤을 왜 추지?” 라고 질문했을 땐 잘 모르겠어. 좋아서? 이윤 잘 몰겠어. 그래서 내가 춤을 계속 춰야할지를 모르겠어. 연습실에 있는 사람들도 춤 왜 춰? 라고 물으면 좋아서 라고 밖에 못 할 듯.

(좋으니까,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전부 아닐까?)
누가 이런 얘길 했어. 자기는 춤을 그냥 좋아서 추는 사람이 싫대. 그런 사람은 좀 생각이 없어 보인대. 나도 좋아서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춤을 왜 추냐고 했을 때 나는 춤을 평생 출거란 말을 되게 서슴없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대. 죽을 때까지. 근데 내가 지금 과연 그런 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

(오히려 그런 사람이 드물지.)
근데 왠지……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 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내가 이걸 다 가지고 갈만큼 춤이 가치 있는 건지 나중에 후회를 할지 그걸 잘 모르겠어.

(나도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계속 갈팡질팡 하겠지. 근데 사실 춤으로 먹고 살 수 있으면 별 걱정은 없는 거잖아.)
그렇기야 하지. 춤추는 건 돈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근데 내가 무릎이 좀 많이 아파. 별 거 아닌 거라고 생각하고 춤을 췄는데, 계속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계속 아프고 그러니까. 벌써 막 연골이 닳았다, 이런 말 나오니까. 춤추는 사람들 보면 허리 안 좋은 사람도 많아.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추는 것 같다. 수술도 받고. 그런데 나는 수술할 정도로 허리가 아프면 춤을 계속 못 출 것 같애. 겁도 나고. 몸 아프니까 춤 춰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고. 근데 내가 무릎이 아파서 춤을 포기하면, 무릎 안 좋은 걸 극복할 생각을 안 하는 거잖아. 그럼 이게 약한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졸업을 앞두고 마음의 압박은 왜 그리 심했던 거야?)
춤을 내가 계속 춰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둬야 하는 건지, 그게 고민이었어.

(니가 춤추는 거 아빠한테 말 안 했지?)
응. 맞을까봐. 통상적으로 아빠한테 안 받아들여질 것 같애. 4년제 대학도 계속 보내줬고 과도 법대 갔고 그런데 갑자기 그거 다 안 하고 춤을 추겠다고 말했을 때 아빠가, 당연히 화가 나지. 배신감도 느끼고. 이제 와서 말을 하려니까 그동안 속였다는 것도 다 말해야 하고.

(취직은 왜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독립하려고?)
앞으로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 어디 의지하지 않고. 혼자 뭔가 선택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고. 다른 거에 구애받지 않고, 내 길을 계속 가려면 취직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애.

춤 연습실 가잖아. 연습실 애들이 진짜 힘들게 살거든. 걔네들은 일단 집안 사정이 많이 어려워. 거의 다 가장이야. 그러니까 자기 가족들도 책임져야하고 책임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보탬은 돼야 하고 아니면 완전 자립했거나 하는 애들이 많아. 내가 그 틈에 껴 있었잖아. 내가 정말 너무 작아 보이더라고. 거기서는 내가 대학 4년제 다니고 있다고 하면 공부 잘 한다고 해주는데. 그럴수록 뭔가 더 작아지는 느낌 들어. 부모님 돈 계속 받고 있고, 내가 한 건 고등학교 때 걔네보다 좀 더 공부 열심히 한 거잖아. 걔들은 그때 춤을 더 열심히 춘거잖아. 걔들이 더 현명한 걸 수도 있지. 일찍이 좋아하는 걸 찾은 걸 테고. 걔들 보니까 내가 약해보이더라고. 아침부터 알바하고 연습실가서 춤추고 걔들도 만날 반복되는 일상이니까 되게 힘들어한단 말이야. 나보다 훨씬 어리고. 그런데 걔들은 뭔가 더 많이 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어른스럽고, 내가 걔들 나이 땐 생각하지 못 했던 걸,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활을 통해 알아가는 느낌. 나는 이제 그걸 시작하려는 거잖아.

부모님한테 가서 돈 걱정 안 하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어. 이번에 한 열흘 집에 갔다 왔잖아. 정말 돈 걱정 하나도 안 했어. 택시를 타도 괜찮았고, 먹을 때도 언니가 다 알아서 사주고, 옷 같은 것도 몇 백 원 더 쌀까를 하나도 고민 안 하게 되잖아. 그 와중에 공지영 책, 을 봤어. 니가 어떤 삶을 살든 널 응원하겠다. 그 책에 이런 게 있었어. “살아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 나도 살아지고 있는 것인가,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내가 김해에 있으면 왠지 살아질 것 같아서. 음. 근데 그것도 나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웃음)

(어찌 보면 사는 게 별 거 아닌데, 살아가는 건 자기 한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을 믿어서인지 나는 자꾸 어려워지고만 있어.)
우리 너무 어렵게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딱딱 했으면 완전 쉽잖아. 내가 얼마 전에 친척 결혼식을 갔다 왔거든. 그 언니는 공부도 되게 잘 하고 학교도 되게 좋은 데야. 엄마 말 들어보니까 그 집 딸은 정말 엄마아빠가 시키는 대로 척척척 다 했대. 딱 그걸 보는데, 부모님 시키는 대로 하면 저렇게 살 수 있구나 싶었다. 하하. 나도 만약 대학교 때 춤 좀 덜 추고 영어공부 좀 많이 하고 학점 잘 받아놨으면, 나도 대기업을 노려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걔들은 과연 행복할까? 그건 모르는 거지. 근데 되게 행복해보였어.(웃음)

(아니야. 그렇다고 우리가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을까.)
못 했어도 욕심은 내봤겠지, 지금은 욕심도 안 나.

(하긴, 나도 그런 욕심은 안 난다. 넌 왜 시키는 대로 안 살게 됐어.)
내가 하고 싶은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계속 부딪치면서 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별로 후회도 안 해.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취업준비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거 안 했으면 되게 무미건조했을 것 같기도 하고. 재미도 없을 것 같고. 힘든 게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 같고.

(어쩌면 니가 춤이나 이런 걸 해보지 않고 바로 취직준비를 했다면 더 안 좋았을 수도 있겠다.)
후회했겠지, 어쩌면 춤을 훨씬 더 늦게 시작했을 수도 있지.

(왜냐면, 니가 바라는 게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소박한 거잖아. 니 마인드가 원래 그럴 수도 있지만, 그냥 대학 때 할 거만 열심히 하고 살아왔으면 오히려 지금은 청년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최악의 상황에 갔을 것 같기도 하고. 마음도 약하고. 자심감도 다운됐을 수도 있겠다.

“우리, 살아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요즘 내 화두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
응. 자신감을 잃으면 정말 끝나는 것 같애. 그걸 계속 지키기가 힘든 것 같애. 요 근래 취직준비하면서 많이 흔들린 것 같애. 면접은 아직 한 번 밖에 안 봤지만 한 번 보고 떨어졌잖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사람들이 날 크게 보지 않는구나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웃음)

면접 보는 사람이 나한테 해줬던 얘기가,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고. 난 자신감 많았는데(웃음) 나는 내가 자심감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 보기엔 안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뭔가 많이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사회가 되게 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난 ‘사회’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에 속지 말자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지금 억지로라도 고민해야 할 문턱에 서 있는 것 같애. 앞길이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잘 살아보자)
덧붙이는 글
윤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85 호 [기사입력] 2010년 01월 06일 15: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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