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온의 인권이야기] 가사노동, 때론 좀 과하게 하세요!

빈마을 살이(2)

김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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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어떻게 해결하세요?

빈마을이 너무 좋아보인다고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이런 저런 언론에 보도되면서 방문객과 투숙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한참을 빈마을의 ‘똘레랑스’적인 분위기와 독특한 자금운영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사람들은 어느 순간 묻는다. 이 공동주거의 실험에서 무엇이 가장 문제가 될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투이다.

“‘진상’처리는 어떻게?”
“공동노동 혹은 가사노동 분담은 어떻게?”
정말 어느 공동체에나 발생하는 문제인가 싶도록, 공동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질문을 한다. 그러나 대답은 쉽게 할 수만은 없다.

때론, 너무 과하게 하세요

“남성분들은, 솔직히,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셔야 겨우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빈집의 새로운 투숙객들을 위한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서 나온 말이다. 가사노동/공동노동 분배에 있어 위와 같은 한 남성 장기투숙객의 지적은 솔직하다해야 할 것이다. 끄덕이는 사람,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사람들. 그러나 이런 판단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까. 서로 낯선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면 언제나 가장 토론거리가 되는 것은 이것이다.

일단 가사노동/공동노동에 대한 범위 설정부터 차이가 난다. 그나마 공통적으로 공동노동으로 인식하는 것은 청소 정도이나 실제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노동은 훨씬 많다. 고양이 똥치우기, 화장실 물때 제거하기, 주방에 다 꺼내놓은 큰 그릇들 찬장에 정리해 넣기, 가끔 행주 삶기, 전화 받기, 손님 잘 맞기, 필요한 메모들 해두기 등. 일일이 다 지적할 수 없어서, 그저 ‘깨어 있으라~’라고 한 마디로 말하고 싶을 때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디테일한 내용들은 언제나 여성들의 입에서 요구되고 여성들의 손에서 정리되는데, 이것들을 서로 공유하기까지 몇 달의 시간도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것 같을 때이다. 그러니 당연히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티격태격 말다툼이 벌어지는 일도 잦다. 남성들이 집안일을 해본 일이 없고, 집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감정노동까지 포함해서 가사노동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나 본인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아마 저렇게 이야기한 것이겠지만, 온갖 다짐을 받아두고도 이런 어려움은 일대일 대화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서로 감정 상하기 딱 좋은 상황인 것이다.

위 사진:집마다 칠판이 있고, 공동으로 해야할 일들이 빼곡이 적힌다.

실패한 시도들- 집사/ 칠판/ 대안화폐

그래서 지금껏 각 집별 회의와 전체 마을회의는 불꽃 튀는 현장이었다. 빈집이 한 채 두 채 늘어나고 1년 넘게 확장되는 동안 회의 때마다 이 문제가 토론되었다. 처음에는 집 회의를 할 때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조심스럽게 논의되던 것이 곧바로 해결되지 않자 몇 가지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들은 쉽게 대표자를 뽑아 관리자를 모시는 형태를 선택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다 신경을 쓰고 세탁기 물을 잠근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매번 설거지를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기도 귀찮기도 하니 대표자를 세워 그 사람이 대강의 것들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형태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집사’(이 사람을 ‘반장’이라 하든, ‘매니저’라 하든 이름만 바뀔 뿐이었다.)로 뽑은 사람이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금방 집단적 피로와 자괴감에 빠지게 될 뿐이었다. 이후 칠판에 그날 그날 해야 할 일을 적어두고 그것을 수행한 사람이 자신의 사인을 넣는 식으로, 가사노동의 항목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을 가시화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몇 번 진행되다가 그 역시 중단되었다. 매번 사람들이 기록하는 것을 귀찮아하기도 했거니와 자신이 한 노동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또, 자신이 하지 않은 노동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압박’을 느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런 주장은 ‘자율적 자치’를 기다려보자는 명목 하에 이루어졌지만 결과적으로 다시금 가사노동이 비-가시화되는 것을 조장했을 뿐이었다.

이후 대안화폐 논의가 점화되었다. 말 그대로 공동노동/가사노동에 대해 항목화하고 행위주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가치화하는 작업까지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대안화폐 이름을 ‘빈’으로 하고 1원을 1빈으로 하자.’ 그러나 이 역시 난관에 부딪혔다. 대안화폐를 통해 가사노동을 항목화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항목화되지 않는 가사노동이 있을 수 있으며, 그간의 선물의 흐름이 끊기고 호혜적 관계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화폐 자체가 갖는 위험성, 기존의 화폐체계와의 차별점이 무엇인지도 끊임없이 질문되었다. 각 집의 상황에 따라 가사노동/공동노동을 해결하는 방식이 통일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결국 대안화폐는 몇 회의 세미나, ‘윗집’에서의 짧은 실험 끝에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이로써 여전히 수차례 요구되었던 빈마을 가사노동/공동노동의 재분배 논의는 한동안 침체되고, 그간 가사노동을 가시화하기위해 온갖 시도를 했던 사람들은 계속 지쳐갔다.

위 사진:주번제. 할 일과 날짜, 일한 사람들 적어놓은 것을 주번이 확인하고 있다.

놀이처럼, 게임처럼- 아직 남은 시도들

그렇게 지치고 서로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던 때, 새로운 팀이 만들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식재료를 공동구매해 반찬을 만들어 나눠주는 ‘반찬팀’이 그것이다. 반찬팀이 탄생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쩌면 가장 노동집약도가 높고 신경 쓸 것이 많은 가사노동 중 하나인 반찬 만들기를 정해진 시간에 공동으로 해결하자는 의미가 큰 것으로 보였다. 각 집에서 1명씩, 그리고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반찬을 만들고 그날 저녁 공동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활동의 주 내용이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들을 더해 마치 동아리처럼 다양한 팀을 만들기 시작했다. 운영팀/공부팀/노획팀/농사팀/풍물팀/건강팀/공작빈(영상)/주류팀 등.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를 떠나, 자신의 활동을 통해 마을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이른바 ‘1인 1팀’제를 시행하자고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이중 대부분은 아직도 이렇다 할 활동을 개시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혼자 진행하는 것도 있고, 아직 한 번도 모임을 못 가진 팀도 있고, 활발한 팀도 있다. 아직 어떤 팀 활동도 못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여러 팀에 중복 출연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한 사람의 중복 출연이 앞으로 마을에서 권력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가운데, 어떤 팀 활동도 하지 않는/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위 사진:냉장고문에 붙은 메모들

아직은 진행 중

지면이 부족해, 역시나 오늘도 실험들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했다. 빈집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다시금 대안화폐가 논의되기 시작했고, 팀 활동을 재정비하자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내가 사는 ‘옆집’에서는 가사노동을 크게 6가지(주방정리/화장실청소/마루청소/반찬팀/쓰레기버리기/회계)로 나누어 6명의 장기투숙객들이 한 달에 한 번 로테이션으로 역할을 바꾸어 수행하고 있다. 아직 무엇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게으른 몸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서로 노력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껏 비-가시화된 노동을 누군가 짊어지고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눠 갖고 즐겁게 해나가는 것은 빈마을에서도 역시 가장 절대적인 문제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날마다 지지고 볶는 삶을 산다.

덧말. 빈마을 게스트하우스 홈페이지가 바뀌었어요. http://binzib.net 놀러오세요~



덧붙이는 글
김디온 님은 빈마을 장기투숙객입니다.
인권오름 제 187 호 [기사입력] 2010년 01월 20일 13: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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