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의 인권이야기] '명문대 성폭력' 사건을 보는 시선들

초코파이
print
명문대?

최근 ‘명문대 성추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런데 사건의 가해자는 남성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명문대생’으로 불린다. 이러한 이름붙이기는 ‘어떻게 명문대생이?’라는 질문을 동반한다. 공부 못하는 대학에서는 그럴 수 있어도, 공부 잘하는 대학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가십거리가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이나 사건을 바라볼때, 국영수를 잘하면 성적 의식을 포함한 도덕적 능력이 높은 사람일 거라는 ‘학벌’, ‘엘리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입관이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서열은 고등학교 시절의 국영수 성적에 좌우되는 면이 크다. 그러나 실제로 사회에서 대학의 서열과 개인의 성적은 도덕적 서열을 포함한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번 성폭력 사건에서도 각 개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를 묻기보다 그 개인이 어떤 성적, 어떤 학벌을 지녔느냐가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의식이 이 사건을 그냥 성폭력 사건이 아닌 ‘명문대생’이 벌인 성폭력 사건이라는 이상한 각도로 관심을 몰아간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 사건이지 가해자가 유명 대학교의 학생인 것은 아니다. ‘명문대마저 그러한 일이 벌어지니 우리 모두 반성하자’며 나서는 것도 우습다.

성추행이란 분류

이번 사건 기사에서도, 그리고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일목요연(?)한 요약본에서도 행위의 정도가 중요한 것인 양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굳이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이라 하지 않고 성추행 사건이라 부르는 이면에는 ‘성폭력은 객관적인 행위(?)의 정도로 피해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 성폭력 사건에 대한 말초적 관심들이 느껴진다.

성폭력은 성을 매개로 해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이며 개인의 자유로운 성적 결정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모든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말한다. 그런데 성폭력을 접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으로 나누어 말하고 그 기준은 가해자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를 했느냐이다. 성폭력 생존자의 언어가 상실된 채, 그들이 느끼는 정신적, 심리적 피해나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그저 개인의 특수한 ‘주관적 감정’인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문제의 본질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져서 권리 침해를 당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 사회 내에서는 아직도 선후배 관계, 교수와 학생 등의 권력 관계를 이용한 성폭력 문화가 있고, 성의식에 대한 진지한 자기 고민이 없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무수한 성폭력 사건이 스스로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거나 평가되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지운다. 성폭력 사건을 추행이냐, 희롱이냐 등으로 나누기보다 그것이 당사자에게 가져왔을 피해에 대해 눈 돌리고, 성폭력을 낳은 우리의 문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심판관이 아니며 될 수도 없다.

그들만의 해법

이 문제가 불거지자 대학은 서둘러 사태 수습에 나섰고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술자리에서 일어난 것에 주목한다. 이것이 ‘그들만의 해법’이다. 가해자를 ‘학교 및 남성의 명예를 더럽힌 찌질남’, ‘음주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저학년’으로 규정하여 해법도 거기서 나온다. 그러나 이 또한 남성중심적, 조직중심의 사고에서 나오는 해법일 뿐 성폭력이 갖는 성폭력 피해자의 자존감 파괴, 상호존중의 관계가 배제된 폭력의 문제는 들어가 있지 않다.

그들은 가해자를 조용히 중징계함으로써 학교의 명예를 살리고, ‘술이 웬수다’며 음주 문화 개선을 외칠 것이다. 결국 위험과 보호의 틀로 성폭력을 바라보며 행위만을 징계할 뿐인 이러한 방식은, 성폭력이 다시 빈번해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에서 어떠한 변화의 계기를 만들지 못한다. 그렇기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정상적인 남학생’들은 오늘도 여학생들 외모 등의 품평회를 할 것이고, 술자리의 안주로 삼을 것이다. 폭력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내면화되고 일상화된 대학 사회 내의 성문화, 성의식에 대한 자기반성 없이 대학의 하루가 오늘도 저물어 간다.

일상생활에서 선배라는 이름으로, 교수라는 지위로 타인의 인격, 타인의 성을 함부로 취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해법은 어쩌면 변명일 뿐이지 않을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주체가 사라진 해법과 사회적 맥락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는 현실을 우리는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명문대’라는 코드에 주목하여 이 사건을 바라보는 한, 우리는 성폭력을 일으킬 가장 큰 숨어있는 요인인 성별 및 권력 관계에서 오는 위계를 깨뜨리는 힘을 기르기 어렵다.
덧붙이는 글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88 호 [기사입력] 2010년 01월 27일 16:02:18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