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성소수자의 노동할 권리를 위해

노조를 통해 지지 그룹을 만들자

레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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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1월 8일, 여의도공원에서는 5만명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전국노동자대회날이었다.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기 전에 사람들의 귓가에 생소한 이야기들이 흘러들었다. “결의문의 검은 부분은 남성이, 붉은 부분은 여성이 읽어주십시오. 그리고 파란 부분은 자신이 남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어주십시오. 성소수자도 배려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소수자와 노동. 이 두 단어는 언뜻 보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인다. 성소수자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양성애자를 아우르는 말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이 우리 사회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가까운 곳에, 특히 자신의 직장 안에 성소수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는 모두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의 스펙트럼만큼 성소수자 노동자가 존재하고 있다.

직장내 차별과 부담

노동현장 안에서 개인의 성 정체성의 다양성은 표면화되지 않고 있다. 이미 노동현장은 이성애만을 옳은 것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화하는 ‘이성애중심주의’에 따라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은 직장 내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그것이 드러났을 때 발생할 차별에 대한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감추기 위한 스트레스가 직장 생활 속에 늘 존재한다. 2009년 10월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로 꾸려진 성소수자 노동권팀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면접조사 결과 직장 내 커밍아웃과 아웃팅에 대한 부담들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아래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직장 내 노동환경 속에서 성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에 대해 말해준 것들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유한 동료직원이 전혀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굳이 피해당하고 싶지 않다.’
‘끊임없이 결혼과 연애에 대해 추궁하고 핸드폰을 엿보는 등 사생활까지 침범하는 직장분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성 정체성을 은폐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늘 긴장하게 된다.’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직장 분위기 속에서 적응하기 힘들다.’
“아예 그냥 기본적으로 나는 이거를 숨길 수밖에 없고 그렇게 평생 살아가야 되고 직업은 특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게 너무 강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아무리 친해도 회사의 동료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가장 직접적인 것은 말하는 순간 나에게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이 때문에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에 자신의 성 정체성에 부합하는 유연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성소수자 노동권이란 무엇인가? 성소수자 만의 노동권이 존재하는가? 이러한 기본적인 의문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 사회 내에서는 아직 성소수자 노동권에 대한 세밀하고 정결한 논의와 이슈화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성소수자의 노동권과 차별 현실에 대해서 생각하였을 때, 성 정체성으로 인한 극단적인 사례, 예를 들어 성 정체성으로 인하여 부당한 해고나 권고사직, 이직 등의 압력을 받는 것들로만 생각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도 사측에서 성 정체성이 아닌 다른 애매모호한 이유를 들어 압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표면화 되어 있지는 못하고 있으며, 구제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개인이 억압의 현실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위 사진:성소수자의 노동권을 알리는 포스터


성소수자가 직장 내에서 받는 차별은 독자적이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다른 차별들과 혼재되어 있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으므로 비혼으로서 차별받는 것이 성소수자에게는 일반적이다. 비혼으로서 승진의 제한, 급여와 후생복지 등의 혜택에서 배제되는 상실감이 상상보다 크다. 이것은 다른 말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직업 속에서 일정이상의 성장과 지위를 포기하거나, 똑같은 수준의 노동을 하고 있어도 현저히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회사에서 크려면, 임원을 달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는데, 전 어차피 부장까지만 달 생각이기 때문에, 정년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물론 시켜주면 감사하지만, 만약에 결혼 여부 때문에 승진에 장벽이 된다면 저는 그런 부분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여성 성소수자의 경우에는 더욱 복잡다단한 양상을 띠고 있다.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 안에서 안정적인 고용형태를 보장받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되는 구조 안에 살고 있는데, 거기에 사실혼 관계라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비혼 일수밖에 없으며 성소수자로서 불안감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것은 노후와 건강이다. 안정적 급여, 복지제도, 가족제도 등에서 배제되어 있으므로 노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시점에 자신의 생존이 위협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자

사회적인 의식정도도 미약한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성소수자의 권리나 인권을 담보할 수 있는 법조항이나 조례, 제도가 전무하다. 공식적으로 성소수자에게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보호막이 없다. 하물며 ‘성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차별금지법조차 배척받지 않았는가? 따라서 외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성소수자 특별채용’의 적극적 조치가 바로 지금 고용 대란 현실의 한국에 있다고 하더라도 성소수자들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2007년, 2008년에 걸친 차별금지법 사태에서 볼 수 있었듯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소수자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이 인정받을수록 우리 사회의 견고한 억압 기제가 무너지고 흐트러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존재는 가족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에 따른 고정적인 성역할, 보수적 기독교세력의 근거지 등 사회 전반적인 것들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우리는 노동조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노동현장 안에서 성소수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지지 세력이 필요하다. 노동현장에서 성소수자 노동자가 차별받는 현실이 다른 노동자가 받는 차별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이들의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 준다면 연대의 힘으로 구체적인 차별에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소수자 중에서 현재 노동조합의 활동을 접해본 사람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컸다. 면접조사 결과 노동조합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거나 자신과의 연관관계가 없는 사람은 기대와 관심이 전혀 없는 반면, 노조의 활동이 많고 능동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그에 대한 기대가 존재함을 볼 수 있었다. 한 예로 자신이 성 정체성으로 인하여 억압을 받을 때 의지할 세력으로 사회적 기관이나 법적제도보다 노동조합을 꼽는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노조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성소수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노동문화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면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성소수자를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키우고 지지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기본적인 차별금지법과 같은 입법이 필요한 한편, 노동 분야 나름대로 성소수자의 노동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사측에 제시하는 단체협약안에 성소수자를 위한 차별금지조항을 삽입하여 기본적인 노동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생각하건데, 이것은 만만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단체협약안으로 제시되는 순간 우리는 ‘성소수자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지 못하게 된다.’라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했던 보수적기독교세력과 성소수자를 인정할 수 없다는 호모포비아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에 상정되어도 얼마만큼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바위에 계란을 치는 것과 돌로 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설 수 있는 땅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을 토대로 더 큰 발전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일생에 노동이 차지하는 의미를 규모나 관념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하지 않고서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 사회에서 노동권은 생존권과 다름없으며 자신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통로이자 구체적 방법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고 누구나가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 논의에 첫 단추를 끼우는 시도를 하자.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말하는 세상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성적지향: 감성적, 성적으로 이끌림. 이성애자/동성애자/양성애자 성적 지향이 있다.
** 성정체성: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으로 자신을 지각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레이가 님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상근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89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3일 13: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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