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금융채무자 양산하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교육, 돈 낸 만큼 받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 권리

서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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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이 비싸니까, 돈을 꿔줄 테니 취업하면 갚으라? 그럼 취업 안 되면 안 갚아도 돼? 못 갚으면 잡으러 다닐 거야?"
“니들이 무슨 추노의 장혁이야? 왜 불쌍한 대학생을 잡냐고!”
“학자금 상환제도? 제도는 좋아, 아주 쿨해. 그런데 인간적으로 이자가 너무 비싸잖아, 이자가 너무 세다고. 대학이 세계적인 학자를 만드는 데지 세계적 신용불량자를 만드는 곳이야?”

위 내용은 며칠 전 모 방송국 개그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던진 이야기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대학등록금의 현실과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의 문제점을 꼬집는 촌철살인 같은 이야기에 누리꾼들은 열광했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는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집집마다 가장 무서운 것은 호환-마마가 아니라 ‘등록금 고지서’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돌고 있다. 대학생과 서민들은 ‘등록금만 1천만 원 시대’의 공포에 떨고 있다. 현재 한국의 전체 대학생 수는 방송대학, 기능대학까지 포함해 360만 명에 이르며 대학진학률은 85%에 달하고 있다. 대학교육은 실상 보통교육이 되어, 전체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가장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대비 고등교육재정지원 비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등록금은 제일 비싼 편이다. 미국에 이어 2위라고 하나 낮은 장학금이나 여타 교육비를 고려하면 등록금 부담은 사실상 1위이다. 대학 재정의 등록금 의존율은 70%로 무척 높은 상황이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대다수 서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과감하게(?)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대학 총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대학등록금 인상률 제한 법제화를 반대했다. 등록금을 깎아서 반으로 만들지는 못할망정, 등록금을 대학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반값등록금 대국민 사기극’의 절정을 보여줬다. 그러던 중 이명박 정부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를 대표적인 친서민정책인 양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 달리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거나 대학생들을 금융채무자로 양산하기에 딱 알맞은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반값등록금 대국민 사기극 2탄,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학자금 대출을 원하는 모든 대학생에게 대학등록금 실소요액 전액을 대출해주고, 소득이 발생한 시점부터 원리금을 분할하여 상환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명박 정부는 "부모나 학생 모두 학자금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하게 하고, 상환 부담으로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처음 교육과학기술부가 ‘취업 후 상환제도’의 안을 발표할 때는 일정소득 이상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최장 25년간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 제도를 친서민 정책의 하나로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상환 기간이 길고 실질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갚아도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위 사진:1월 29일 오후2시 경북대학교에서 '정부의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의 문제점과 대학등록금 해결 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이미 취지가 훼손되어버렸다.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안병만, 아래 교과부)는 2010년 1학기 이자율을 5.7%로 고시했다. 대다수의 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다른 정책금리들과 비교하거나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는 외국과 비교하더라도 이자율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기존의 학자금 대출 제도에서는 소득10분위의 1~3분위에게 무이자, 4~5분위는 1%, 6~7분위는 3.5%, 8~10분위는 5%로 이자율을 책정해, 훨씬 낮은 이자율로 학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도입하면서 차상위 계층 대학생 장학제도와 소득 7분위 이상 대학생에 대한 이자 지원도 전격적으로 폐지되어, 대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비록 졸업 후에 원리금을 갚는다지만 상환이 시작되기 전까지 매학기 5.7% 또는 그보다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졸업 후 엄청난 빚더미를 떠안게 된다. 게다가 상환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이자의 이자를 받는 복리* 방식까지 적용된다. 정부의 시뮬레이션으로도 3,200만 원을 대출받았을 때, 25년간 9,705만 원을 갚아야 하는 황당한 상황(졸업 후 연봉이 1,900만 원인 경우를 가정했을 때)이 발생하게 된다. 학자금은 공공적 성격의 채무이므로 상환 시작 전뿐만 아니라 후에도 일관되게 ‘단리’를 적용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심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또한 교과부는 군복무 기간에도 이자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학생들의 기준선도 올라갔다. 평균 C학점에서 B학점으로 기준선이 올라가면서, 대상 학생의 15%가 신청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모든 과목에서 B를 맞고, 단 한 과목에서 C+를 맞아도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모든 대학생들이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하겠다는 제도의 취지가 근본적으로 훼손되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 대학은 매우 엄격한 상대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성적 입력 시부터 상대평가가 철저히 강제돼 있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도 C학점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내신과 수능이 6등급 미만인 신입 대학생들은 1학년 1학기에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이 역시 무척이나 부당하다. 대학에 들어오면 어차피 학점 기준을 적용받게 되는데, 굳이 신입생들에게까지 이런 조치를 취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렇듯 정부는 높은 교육비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비현실적인 제도를 설계하면서 대학생들과 서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게다가 졸업 후 4년이 지나도 상환하지 못하면 재산을 조사해 강제 징수한다거나 일반 대출로 전환한다는 것, 재산 조사를 할 때 배우자의 재산까지 조사한다는 방침은, 이 제도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2009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률은 76.4%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체감하겠지만 취업 후에도 다시 실직해 학교로 돌아오기도 하고, 계속해서 이직을 하기도 한다. 이 제도가 수많은 금융채무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

오늘날 대학과 관련된 제도는 한국사회 전체의 모습을 보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최소 비용, 최고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교육 이데올로기가 일반화되어, 지금의 대학은 자본이 이윤을 추구하는 장이 되어버렸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재편의 주된 논리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경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고, 무상장학금이나 무이자 대출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며 개인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취업 후 상환제도도 그런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제도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말로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교육· 주거· 의료 문제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있다.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와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등록금 후불제 실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 확대 명문화 등이 포함된 법률이 통과된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대학당국과 교육 자본이 그렇게도 반대하던 이 제도들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무상교육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라는 인식과 철학이 필요하다. 교육이 기본적 권리라는 가치, 교육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라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놓쳐서는 안 된다.

대학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평생 갚아야 할 등록금 때문에 빚쟁이 사회인들은 자신이나 가족만 챙길 수도 있다. 사회공동체에 위기가 닥쳐도 같은 결론일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교육 받을 권리는 국가에서 책임져야 한다. 예를 들어,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프랑스에서 의사들은 재난 상황에서 제 몫을 하기 위해 자신의 차에 의사라는 것을 표시하고 다닌다. 사회가 제공하나 무상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로 돌려야 할 것이라는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 단리와 복리의 차이
이자 계산에서 단리는 원금에 대해서만 약정된 이자율과 기간을 곱해서 이자를 계산하는 방법이다. 반면 복리는 일정기간 마다 이자를 원금에 합쳐 그 합계금액에 대한 이자를 다시 계산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단리계산은 원금에 대해서만 이자가 붙고 복리계산은 (원금 +이자)에 이자가 붙는 것. 복리계산이 이자가 훨씬 많이 붙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서창호 님은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89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03일 14: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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