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의 인권이야기] 나는 어쩌다 비굴해졌나

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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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야기] 새로운 필진 소개

녹우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안태호 (예술과 도시 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옥자(「갈라진시대의기쁜소식」 편집인), 김현 (풀뿌리연구소 이음 연구원) 님이 새로운 인권이야기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3개월동안 [인권이야기]에 글을 보내준 양미, 조경애, 디온, 초코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새 직장에 출근한 지 2주일째. 두 달 내내 밤을 새워도 해치울 수 없는 일을 떠안고 끙끙대고 있다. 3500매가 넘는 불량한 원고를 5월 말까지 책으로 내야 한다. 이제 막 들어간 내게 그 일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꿈자리마저 무겁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도 몰입하지 못하고 마냥 즐거워할 수도 없다. 야근을 하지 않거나 주말에 집에 있을 때는 죄책감이 들고 자책한다. 종일 그 ‘일’이 의식과 무의식을 넘어 빤히 응시하며 따라다니는 통에 정신은 나날이 파리해진다. 유쾌하게 웃어젖히고 떠들 수 있는 어떤 뿌리를 강탈당한 느낌이다.

기어이 그 일을 마쳐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못할 경우 훗날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먹고살아야 할 일터는 늘 절실하고, 그러자면 그곳에서 요구하는 것을 ‘착한’ 태도로 다 해내야 한다,고 언제부턴가 나는 정신 깊숙한 곳에서부터 굽실거리게 되었다. 마흔이 머지않은 터에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지덕지하며 일해야겠다는 생각만 신념처럼 거듭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해고 그 후

잘못된 것에 곧잘 맞서는 시늉이라도 했던 내가 바닥부터 비굴해진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엔 해고가 있다. 거의 5년이 지났는데도 그 일은 내 삶을 해고 전후로 가를 만큼 뒤흔들어놓았다. 해고된 뒤 한동안 취직이 되지 않았다. 사장의 농간과 소문이 어우러진 탓도 있었다. 우울증과 무기력감이 몸과 마음을 좀먹었다. 1년여 만에 겨우 자리를 잡았을 때 난 분명 달라져 있었다. 눈치껏 행동하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양심은 고동쳐 회사의 잘못된 것들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나와 마주할 때면 괴로웠다. 그러나 해고로 한번 움츠러진 마음은 도무지 다시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 직장에서 생긴 일로 이런 마음은 안으로 더 오그라들었다. 한창 책을 마무리할 때였다. 상사와 표지 건으로 메신저를 하면서 옥신각신하게 되었다. 상사는 자기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것이 괘씸했던지 “같이 일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런 말로 사람들을 내보낸다고 들은 적이 있어 나는 그만두란 얘기냐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랬으면 좋겠지만, 해고시킬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만둘지 말지는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자신은 절대 해고는 안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인즉, “부당해고 어쩌고 하면서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새벽에 화장실 가다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좌파신문 대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일도 썩 잘하고 동료들과도 잘 지냈지만 이번엔 ‘교묘한’ 방식으로 두 번째 해고를 맞은 것이다. 상사에겐 자기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겠지만 내 처지에선 1인독재 시스템(누가 회사를 노동자의 것이라 했던가)인 그곳에서 그 ‘1인’의 비위를 거스른 게 가장 큰 원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흔한 해고 사례일 수도 있다. 상사의 눈 밖에 나면 어김없이 해고되게 마련이니까. 그러므로 어느 회사에 적응하는 과정은 사장이나 상사의 성향을 분석하고 그것에 맞추어가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과정에서 비굴이 싹트고 진화한다. 새로운 이곳에서 나는 더 비굴해질까. 글쎄다.

덧붙이는 글
녹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97 호 [기사입력] 2010년 04월 07일 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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