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자의 인권이야기]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생긴 일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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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의사에게 말했다.
“머리가 많이 아파서 왔소.”
의사가 말했다.
“나이 들면 다 그렇지요.”
“눈앞에선 팔랑개비가 돌고.”
“노인 연세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등줄기도 땅겨서 아프고.”
“그 연세에 놀랄 일도 아니지요.”
“음식 먹을 때에도 조심해서 씹지 않으면…….”
“이가 흔들리고 아프겠지요. 노인 연세에 당연한 일입니다.”
“숨을 쉴 때에도…….”
“알아요. 천식입니다. 노인 연세엔 별별 증세가 다 나타나지요.”
노인이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나이, 나이, 나이! 그것 말고는 할 말이 없나? 이래도 나이, 저래도 나이. 그저 나이 때문이라는 말만 하니, 비싼 돈 주고 의과대학에서 그렇게 배웠어? 사람의 모든 병에 신이 내리신 처방이 있다는 사실을 자넨 모르나?”
의사는 아무 말 않고 침묵을 지키자 노인은 더욱 화가 났다. 얼굴이 벌겋게 되어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이 멍텅구리 바보 녀석! 자네야말로 형편없는 저질 의사로군! 겨우 한다는 말이 나이, 나이, 나이 타령일 뿐이니.”
의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마디 더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이렇게 화를 내시는 것도, 그게 그러니까, 노인 연세에는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랍니다.”

출근길, 운 좋게 빈자리에 앉아 맛있는 단잠을 자는데 큰 소리가 들린다. 놀라 깨어보니, 지하철 행상을 하는 (중년 초기로 보이는) 여인과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의 입씨름이 진행되고 있다. 잠결에 달아난 정신을 챙겨 상황을 파악한 즉, 여인이 비어있던 노약자석에 앉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의 나무람이 있었다. 이내 일어난 여인에게 할아버지의 질책이 계속되자 화가 난 여인이 할아버지에게 맞서기를 하는 접전 상황.

“여기는 노인네들이 앉는 자리야!”
“그래서 일어났잖아요. 잠시 비어있는 자리에 앉은 거예요.”
“어디 젊은 게 앉고 말야.”
“일어났으면 됐지. 어떻게 하라구요.”
“에이 못된 X같으니라고.”
“뭐라고? 대접 받고 싶으면 나이값을 해.”

싸움은 점점 진흙탕처럼 혼탁해져 가는데 대각선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던 할머니와 다른 할아버지가 한 마디씩 거든다.

“지하철에서 장사해먹는 X가 어디서 부모 같은 노인에게 큰소리야.”
“그만 해요. 아주머니가 참아요. 이유가 어떻든 노인네한테 그렇게 대들면 되겠어요?”

그런데 한 정류장의 사이는 왜 이렇게 긴지, 네 사람의 동의어 반복과 욕설이 백만년은 더 계속된 듯 싶더니 마침내 도착한 역에서 행상 여인이 내리며 한 ‘울트라 캡숑 왕창 짱 험한 마지막 욕설’과 함께 문이 닫혔다. 하지만 남아있던 노인들은 여전히 한마음이 되어 한마디씩 했다.

“저저 나쁜 X같으니라고 지하철에서 장사해먹으면서 어디서 행패야.”
“이 자리는 노인네들만 앉는 자리인데 저 못된 X같으니라고.”
“며느리가 저런 X같으면 시부모가 다 맞고 살 거야.”

등등. 막상 접전 상황엔 외면하고 있던 노인들까지 거들며 지하철 행상의 그 여인은 졸지에 ‘애미애비도 없는 능지처참의 죄인’이 되어버렸다. ㅋㅋ 가히 오랜만에 웃기는 쿵따리샤바라다.

지하철에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비슷한 상황들. 인권의 차원에서 볼 때, 이런 상황들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참 희한한 상황에서 효도를 논하고 노인공경을 부르짖는 이 나라에서 행상 여인은 순간 능지처참의 대역죄인이 되었지만, 인권과 법적인 틀에서 볼 때는 오히려 여인에게 욕설의 포화를 쏟아 부은 노인들이 ‘명예훼손’의 가해자가 될 것 같다. 이미 몇 년 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20대 여성이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은 노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일이 있었고, 10대 청소년 역시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은 노인이 지하철에서 내리는 걸 따라가 계단에서 밀었던 일도 있었다.

그만한 일에 노인을 고소하거나 계단에서 밀쳐낼 수가 있냐고 하겠지만, 지하철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비슷한 상황들을 보면 노인들의 분노와 욕설 수위도 도에 지나칠 때가 많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달라도 많은 경우 그들은 분노를 친구처럼 갖고 있는 것 같다. 같은 결과를 가지고 ‘지난 번에 꽤 호의적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문제에 대해 지금은 불같은 화를 내고, 예전엔 무슨 말을 해도 긍정적으로 받아주었는데 지금은 조심해서 말을 해도 부정적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격의 없이 이런 저런 말도 섞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심기를 거스르거나 핀잔을 들을까봐 아예 입을 닫는다. 이게 노인들에 대한 요즘의 내 경험이다. 노인이 됨으로써 겪게 되는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상실감 등으로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분노가 있을 것을 감안하더라도 생면부지의 낯선 이들, 특히 자신보다 훨씬 약해보이는 이들을 향한 분노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 쉽다.

평소 인권 관련한 일을 하거나 인권에 대한 생각을 별반 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인 내가 생각하는 인권은 함께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든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걸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출퇴근길 자주 텅 비어있는 노약자석을 보면 나도 맘 편히 앉아보고 싶고, 노약자석 비워두고 일반석에 앉아있는 노인들을 보면 괜시리 얄미울 때도 있다. 또한 웃기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지하철에서 장사해먹고 사는’ 하며 말하셨던 할머니는 사실 지하철 요금을 안내신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그 여인은 정해진 요금을 냈을 것이다. 그러니 경제이론상으로라면 요금 안 내는 할머니보다 장사하는 여인이 지하철에겐 나름 더 고맙고 대접받아야 하는 손님이 아닐까? 약자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발상에서 시작한 노약자석 제도가 어느 사이 노인과 노인 아닌 세대들간의 분리를 가져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너무 오바인가?

덧붙이는 글
김옥자 님은 『갈라진 시대 기쁜 소식』편집인 입니다.
인권오름 제 199 호 [기사입력] 2010년 04월 22일 22: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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