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의 인권이야기] 보행 중 흡연은 치명적 무기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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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태운 지 20년이 넘었다. 사실, 담배 태운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강력한 압박은 딸아이로부터 온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목에 구멍이 나서 죽거나, 폐가 까맣게 타버려 죽는다고 딸아이는 믿고 있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보육시설이나 유치원에서부터 금연교육을 제대로 받은 덕이다. 그러니 아빠가 얼마나 걱정스럽겠는가?

또 하나,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흡연은 개인의 기호임에는 분명하지만, 흡연자에게 한정된 문제만은 아니다. 원치 않은 사람들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쾌한 연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 담배 피울 곳이 없다’고 하소연 하는 끽연가들이 있는 줄 알지만, 나는 그런 불평에 동의할 수 없다. 담배연기에 역겨워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흡연가에 비해 분명 약자들이다.



며칠간, 혹은 최대 3개월까지 담배를 끊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금연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젊으니 조금 더 버텨보자, 라는 것이 내가 담배를 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던 중, 정말로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신문기사를 읽고, 담배는 심각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의 충격이었다.

7-8년 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일로 기억한다. 국내 언론을 통해서 잘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보행 중,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 뒤를 엄마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어린 아이가 있었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지막 한 모금을 흡입하고 담배를 손으로 털었다. 그 불똥은 어린 아이 눈으로 날아갔고, 그 아이는 실명에 이른다. 이 사건으로 일본 전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도쿄는 물론이고 ‘보행 중 금연 조례가’ 전 자치체로 번졌다. 아이에게 담배는 치명적인 무기였던 것이다.

며칠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한 지역 언론이 주최한 단체장 예비후보자 초청 토론회가 있었다. 한 여성 방청객이 후보자들에게 “길거리 흡연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후보자들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은근슬쩍 답을 피해갔다. 그 순간, 7-8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예전에 비해 흡연가가 설 자리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웬만한 건물은 모두 금연 건물이고 아이들 놀이터나 공원 등 각종 공공장소나 대중식당까지도 대부분 금연구역이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한 나로서는 아쉬운 대목이지만, 금연구역 지정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담배연기를 들이키겠다는 내 의지와는 별개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가 흡연에 대해 너무 관대하거나, 법치국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금연구역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음식점임에도 사람들은 버젓이 담배를 태우고, 식당 주인은 제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떨이를 공손하게 가져다주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전히 금연건물 계단이나 비상구 쪽에서 담배족들이 연기를 뿜어낸다.



어찌해서, 법 규정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돈을 더 벌기 위한 상인의 처지는 이해되지만, 그것으로 지금의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심증이 가는 것이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 ‘인권’에 대한 의식이 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본의 사례에서처럼, 보행 중 흡연은 무기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옷을 태울 수도 있고, 몸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어린 아이가 겪었다면 마음의 상처는 더욱 클 것이다. 약자의 인권에 대한 배려는 아직 멀다는 느낌이다.

또 하나는 ‘남성문화’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성 흡연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드러내놓고 담배를 태울 수 있는 계층은 성인 남자다. 나조차, 장정 여럿이 대중식당과 같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우더라도 “담배 꺼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린 아이나 여성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자는 방어적 수단으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남성인 나는, 담배문화의 가해자다. 나도 빨리 금연을 준비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김현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연구위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202 호 [기사입력] 2010년 05월 12일 2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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