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영화제 15주년 기획: 다른 생각에 대한 기억] 인권은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각, 다양한 표현의 공존과 인정에서부터

장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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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년이 지난 후의 삶, 그리고 역사를 사람들은 어떻게 그릴까. 인간의 이성과 역사의 진보를 긍정한다면 그것은 분명 희망적인 어떤 것일 게다. 엄혹하고 열악했던 과거를 돌이켜 현재를 본다면 우리가 희망을 꿈꾸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건 삶의 동력이자 의미이다. 요즘 같은 퇴행의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는 말이다.

14년 전인 1997년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다가올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학생이었던 당시 나는 과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자원 활동 중이었다. 그해 인권영화제에서는 말 안 되는 답답한 일들이 많았다.

위 사진:인권영화제가 진행되는 홍익대학교 주변에서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들.


사전 검열을 거부했던 영화제는 당국의 불허방침으로 전기가 끊겼고 영화는 실내상영이 힘들어졌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부는 홍대 캠퍼스에서 옷깃을 여미며, 발전기에 의지해 돌아가는 영상을 바라봐야 했다. 홍대 앞에는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밤이 되면 기자재가 탈취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그해 부산영화제에서 문제없었던 는 인권영화제의 상영 건에 대해서는 딴지가 들어왔다. 국가보안법 등등의 위반 혐의로 서준식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구속됐다. 표현의 자유는 터무니없이 무시되었다.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 용납하지 않는 못된 사회였다.

위 사진:홍익대학교의 단전조치로 발전기를 옮기는 사람들


영화제 전 포스터에 쓰일 이미지를 생각하며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각, 다양한 표현의 공존과 그 인정은 인권에 대한 이해의 출발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다양한 천들을 구했다. 되는대로 모으고 구입한 천들을 하나하나 바느질했다. 그 천들이 모여 나중에 알록달록 새롭고 커다란 이미지의 천이 되었다. 사회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념, 종교, 성별, 국적, 나이, 피부색, 성적 취향/ 지향, 지위 등에 의해 차별받거나 억압받지 않는 다양하고 풍부한, 그래서 커다란 사회……. 그것 말이다.


위 사진:홍익대학교 정문에 걸린 인권영화제 포스터


국가의 야만적인 통제와 억압을 저항하던 인권영화제에서 나는 표현의 자유와 생각의 다름에 대한 인정……. 그게 가능한 사회에 대한 꿈을 꾼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이라는 무책임하고 막연한 희망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후에 정권이 바뀌고 더디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보였다. 국가기구로서 공식적인 인권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도 생겼다. 민주주의 진전과 함께 사회는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것 같았다. 다양한 담론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 이주노동자……. 등등. 표현의 자유는 상당한 수준 신장되었다. 시원스레 해결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존의 가치로 이해하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지만 소중한 흐름이었다.

그리고 또 정권이 바뀌었다. 새 정권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두 번의 정권교체는 그만큼 진전된 민주주의의 모습이라 애써 긍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인권영화제가 다시 밖으로 내몰렸다. 표현은 그 자유가 다시 훼손돼갔다. 언론은 정권에 장악당하고 기층의 민초들은 재개발로 삶의 터전에서 내쫓기고 저항하다 공권력에 희생당했다. 생존권을 위해 저항하던 노동자들은 무자비한 진압과 함께 해고되고 삶의 변두리로 버려졌다. 시국선언 등 사회 참여적 활동을 했던 교사와 공무원들은 해고와 파면이라는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한 징계에 몰렸다. 비열한 방법으로 다른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일들이 버젓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역사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재현되고 있었다. 야만스런 사회가 돼가고 있었다. 최근 한국의 인권 상황을 조사했던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랑크 라 뤼는 지난 2년 동안 인권, 의사표현의 자유가 상당히 위축됐다고 했다.

14년 전 나는 희망 같은 것을 가졌다고 했고, 근거 없이 조금은 확신했다. 또 일반적으로 미래에 대한 긍정은 인지상정이라는 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많은 다양한 천들이 서로서로 얽혀 여러 색깔과 무늬를 지닌 컬러풀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나쁜 사회가 우리 앞에 버티고 있을 뿐이다. 나쁜 권력은 훨씬 교묘해졌다. 그게 걱정되는 요즘이다.

위 사진:홍익대학교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장광석 님은 <한겨레21> 디자인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포스터, 트레일러를 만드는 자원활동을 했습니다.
인권오름 제 204 호 [기사입력] 2010년 05월 25일 17: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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