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차별의 낙인,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

장애등급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남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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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심사에 분노한 장애인들

지난 9월 13일, 20여명의 중증장애인이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건물 밖에서는 매일 수 십 명의 장애인들이 노숙을 하면서 점거농성을 지켜주었다. 이들의 요구는 당장 ‘장애등급심사를 중단하라’는 것과, 장애등급이 하락되어 생존의 위협에 처한 ‘피해사례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 궁극적으로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는 것이었다.

위 사진:[출처] 비마이너


보건복지부 차관면담을 통해 몇 가지 약속과 확인을 받는 것으로 농성은 4박 5일 만에 끝났다. 물론 그 정도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전혀 아니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선명히 지적하고 이후 대안을 강하게 요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컸다. 애초에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해결될 성질의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장애등급심사의 전면적 확대

장애등급심사란, 의사가 판정한 장애등급이 적절한지 여부를 장애등급심사센터에서 서류로 심사하여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선 의료기관의 의사 혼자서 장애등급을 판정해 오면서 형평성과 객관성의 문제가 수없이 제기되었고, 심지어 사기단까지 동원된 소위 ‘가짜장애인’이 만들어지는 일도 있었다. 때문에 장애등급심사를 위해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타당한 조치로 보는 측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장애등급심사의 문제가 장애인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은 보건복지부가 기존에 등록된 장애인에게 장애등급 ‘재심사’를 강요하면서 부터였다. 보건복지부는 2007년 4월부터 장애수당을 새로 신청하는 중증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장애등급 ‘재심사’를 시행하기 시작했고, 2009년 10월부터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새로 신청하는 사람에게도 장애등급심사를 의무화하였다. 그리고 올해 1월 1일부터는 새로 활동보조나 장애수당, 장애연금을 신청하는 사람은 물론 새롭게 장애인 등록을 하는 1~3급 장애인들 모두에게 장애등급심사를 받도록 확대하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4월에는 과거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을 근거로 하던 장애등급심사를 장애인복지법에 규정하는 법개정을 통해 장애등급심사의 법적 근거도 강화하였고, 내년 장애등급심사 예산을 153억원으로 책정, 올해보다 무려 2배가 넘게 증액하면서 장애등급심사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장애등급심사의 결과

지난 6월 1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7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3년 동안 총 92,817건의 장애등급심사 결과 장애등급이 유지된 경우는 60%이며, 상향조정된 경우는 고작 0.4%에 불과했고, 등급이 하향된 경우는 무려 36.7%인 34,064건이었다.

이 결과를 두고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된 장애등급제를 개선했다고 말하지만, 분명한 건 이렇게 등급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제공되던 복지는 중단되거나 후퇴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중에는 활동보조가 끊겨 생존이 위태로워진 사람들도 있다.

위 사진:[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어느 장애여성의 이야기

세 살 때부터 40년 넘게 장애를 가지고 살아 온 김00씨는 일상생활의 대부분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이다. 2007년부터 시행된 활동보조서비스 덕분에 그나마 낮에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거동하고, 활동보조인이 없는 밤에는 85세 노모의 도움으로 살아왔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하기에 움직여야 할 때는 팔로 다리를 들어 옮겨야 하며, 척추가 휘었고 손목까지 통증이 와 숟가락질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침대에서 휠체어에 옮겨 앉거나 목욕이라도 하려면 두 사람이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활동보조서비스의 최대시간은 고작 한 달 100시간에 불과하여 김00씨 같은 중증장애인에게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얼마 전 시청에 활동보조추가를 신청했었다. 활동보조 추가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등급재심사를 받아야 한다기에 어쩔 수없이 수 십 만 원을 들여 재심사를 받았지만 오히려 장애등급이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져버렸다.

추가지원은 고사하고 지금까지 받고 있던 활동보조마저 끊기게 되어버린 것이다. 어렵게 다니던 작업장도 못나가고, 이제 꼼짝없이 방안에 틀어박혀 노모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장애등급이 무엇이기에 그녀의 삶을 하루아침에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까?

장애등급심사의 문제점

장애등급심사는 다양한 차원과 영역의 문제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우선 장애등급심사가 이루어지는 전체 과정이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위 사례의 장애여성 김00씨는 사실 등급재심사의 대상이 될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등급재심사를 강요받은 장애인들 대부분은 등급심사 결과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있을지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국민연금공단과 동사무소에서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받은 것이다. 또한 장애등급재심사에 소요되는 비용은 전적으로 장애인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지원체계도 없이 장애등급‘재심사’를 강요하기에 일방적, 폭력적 행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장애등급심사를 위한 진단비는 보험적용도 되지 않고 특별한 비용지원도 없는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연금 신규 신청자가 수급자나 차상위계층(기존 중증장애수당 수급자)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활동보조 신규 신청자의 경우에는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라도 등급재심사를 받아야 하며, 저소득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개인소득이 아닌 가구소득 이어서 장애인에게 또 하나의 차별이 되고 있다.

획일적 의료기준에 의한 등급판정은 특히 뇌병변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등 특정장애유형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와상상태(일주일에 적어도 4일 이상 하루 22시간 이상을 침대에서 지내는 경우)가 아니면 1급 판정을 받기 어려운데, 이렇게 기준자체가 지나치게 엄격하다. 다른 장애유형 1급 장애인이 2,3급 뇌병변장애인의 활동을 보조하는 일도 흔한 일인데, 정작 활동보조는 1급 장애인으로만 제한되어 있다. 사실 발달장애인의 경우, 1급 2급 3급의 등급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일선 의료기관 의사의 판단근거가 철저하게 무시되고 서류심사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심사과정에 대해 신뢰도의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서류심사만을 하다보니 더욱 비싼 검사자료가 요구되고, 의료적 기준만을 절대시하게 되고 있다.

문제는 장애등급제 그 자체에 있다!

장애등급제는 의학적 기준에 의해 장애인의 몸을 저울질하여 점수를 매기고, 낙인을 찍는 차별적 행위이다. 의학적 기준을 절대시 하는 것은 장애와 장애인의 사회적 관계성을 은폐하고 장애라는 것이 사람의 신체기능 점수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하게 된다. 장애인의 삶은 몸 상태 뿐 아니라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고 다양한 욕구로 표현될 수 있는 것임에도, 장애등급제는 의료적 기준에 의한 획일적 복지체계를 정당화한다.

또한 장애등급제는 본질적으로 장애인의 권리를 부정하고, 선별적 복지를 위한 행정도구이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복지제도에 접근하는 장애인을 선별하는 데에 장치로서 작동한다. 때문에 장애등급 하락은 접근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등급제는 예산에 의한 권리제한을 정당화한다. 장애로 인해 일상 활동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즉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14.5%로 1급 장애인수 보다 많은 35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정부는 고작 3만 명만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사업예산을 편성하고 1급 장애인으로 신청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위 사진:[출처] 비마이너


보건복지부는 3만 명 분의 예산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최중증 3만 명을 파악하기 위해 등급제와 같은 선별체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등급제와 같은 선별체계의 강화를 통해 보편적 권리를 은폐하고 장애인의 욕구를 통제하여 예산의 단기적 절감 뿐 아니라 예산에 의한 권리제한을 공고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가 대안이다

장애등급제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것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 의식과 권리제한을 상징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장애등급을 절대 기준으로 하여 서비스 제공 또는 제한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에 따라 결정하는 개인별 사정체계를 만들면 될 일이다. 요컨대 사람의 몸이 아닌 서비스에 등급을 두고 개인이 어떤 서비스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파악해야하는 것이다.

장애등급제폐지투쟁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선착순 복지를 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하고,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권리를 명확히 드러나게 해줄 것이다. 애초에 등급은 낙인에 불과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남병준 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입니다.
인권오름 제 221 호 [기사입력] 2010년 10월 06일 22: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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