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수다] 성폭력 개념 확장의 길

정리/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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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 인권단체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경계를넘어’는 ‘자원봉사자 김00 회원 제명의 건’을 공개했다. 두 단체에 따르면 김00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회원으로 가입한 후 5일동안 두 단체의 여성활동가 및 회원 4명에게 발언 및 행동으로 성적 불쾌감과 위축감 등을 느끼게 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00은 젊은 여성 회원들에게만 자신을 미혼이라고 속이면서 결혼여부나 휴대전화번호를 반복적으로 물어본다거나, 누구와 함께 사는지 꼬치꼬치 묻거나, 불쾌한 성적 농담을 했다. 김00는 문제 해결을 위해 소집된 회의에서 피해자들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내가 하필이면 운 없게도 여기 와서 여러분 같은 사람들한테 치한, 성폭력범으로 몰렸다”며 “난 내 행동에 문제를 못 느낀다. 또 다른 단체에 가서 봉사할 것이다. 단체는 많다”고 말했다고 두 단체는 밝혔다. 결국 두 단체는 △행동 및 발언 모두에 관해 게시판 상에서 공개 사과할 것 △회원 탈퇴 및 온라인 활동 금지 △사무실 접근 금지 △소속 활동가/회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지 말고, 우연히 보더라도 아는 체하지 말 것 등을 요구했으나, 김00은 사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활동을 중단했고 두 단체의 남성활동가 2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성폭력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신체적 성폭력, 그 가운데서도 성기삽입의 문제에 머물러 있다. 또 성폭력을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로 보기보다는 ‘순결상실’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 이번호 [쟁점수다]는 위 김00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개념을 확장시키는 길을 모색해 본다.

위 사진:언어를 통한 성폭력도 피해자에게는 큰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출처; www.stoprapebyman.com>
#1. 뭔가 불쾌한데…

(반다) 사실은 저희도 이것이 미미한 사건이라는 의식들이 있었기 때문에 뭔가 불쾌한 것이 있는데 도대체 어느 지점인지 잡아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래서 다같이 고민을 해보자면서 고민의 가닥들을 맞춰가게 됐지요. 그러면서 김00의 행위들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법적으로든 사회일반론이든 여성계든 어느 단위에서 논의하는 성폭력의 단어로 규정되느냐는 부차적이고 우리가 어떻게 개념을 규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물론 그 개념의 근거들을 우리가 고민해야겠지만. 그런 개념들을 우리가 나름대로 규정하고 공론화하는 것이 성폭력, 여성권, 인권을 넓혀가는 단계가 되지 않을까 이런 얘기들을 했었죠.
그래서 저는 김00 사례를 보고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셨는지, 혹은 주변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 잘못되었지만 굳이 그것을 성폭력이라 규정해서 ‘긁어 부스럼’ 만든 것은 아닌가라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괭이눈) 성폭력 결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문점을 제기하면 ‘내 감수성이 이쪽의 감수성보다 덜한 것 같다’, ‘내가 무디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의문점이 들어도 시원하게 이야기 못하는 상황들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접하면서 소위 주류에서 얘기하거나 모두가 자명하게 얘기하는 그런 ‘센’ 성폭력 사건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너무나도 와닿더라구요. 내가 얼마나 이 일을 피해자만큼 민감하게 내 일처럼 느끼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 같은데 그것은 그냥 느끼는게 아니라 내가 거기에 확 들어가려고 하는 능동적인 노력이나 의지가 분명히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 사진:성폭력으로부터의 해방 없이 진정한 '해방'이 올 수 있을까?<출처; www.feminist.or.kr>
#2. 성폭력 개념, 열어놓고 생각해보자

(성준) 저는 이 사건이 공개된 후 이메일로 받고 자세하게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반사적으로 성폭력 사건이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됐어요.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고, 같이 모인 자리에서 사과나 아무런 조치도 없이 오히려 무례하게 굴었고 피해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김00에 대한 이런 처분은 당연하다는 거죠. 이게 보통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남성들의 반응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한 여성활동가가 “40대 남성은 다들 저런다. 모든 40대 남성들이 다들 성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냐”라고 문제를 제기하더라구요. 다시 생각해보니 결정의 근거가 피해자가 느꼈던 경험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걸 어떻게 객관적으로 말을 할 수 있을지, 공감을 할 수 있을지, 제가 만약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였다면 잘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괭이눈) 성차별과 성폭력의 범주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방향이 다른 것 같아요. 피해자 중심주의로만 생각하다보면, 그게 여성이건 남성이건, 자기가 받은 차별에 대해서도 난 성폭력을 당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정말 모두가 모든 것을 성폭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자주) 수다 제안을 받았을 때 난감했거든요. 성폭력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너무 큰 주제죠. 말하자면, 여전히 계속 움직이는 개념이고 누군가에 의해 새롭게 바뀔 수 밖에 없는 개념이고 명확해지고자 하지만 명확해질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명확해졌으면 하는 사람의 마음이 있잖아요. 법에서는 여전히 남성 성기의 삽입 중심적으로 보고 있지만 일상적으로는 문화나 조직 내에서는 훨씬 크게 보고 있고. 우리 역시도 성폭력을 강간으로만 보는게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보잖아요. 성적 자기결정권의 권역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각자 다르고 따라서 성폭력의 정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이죠. 자기 결정권인데 누가 정하겠어요. 자기가 정해야죠. 똑같은 발언을 했었어도 나에게는 성폭력이 아닐 수 있고 성적 농담일 수 있는데 그 사람에게는 굉장한 성적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일 수 있잖아요. 이미 성폭력의 개념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중심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개념이 열려져 있기 때문에 성폭력인가 아닌가, 피해자는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했는가를 계속 성찰해야 한다는 생각해요. 이게 정리되는 순간 사람들이 성찰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나는 이렇게 살았어’, ‘앞으로 이렇게 살거야’라는 김00의 말처럼 성찰 없이 반성 없이 가는 것이 문제겠죠.

위 사진:성폭력 방지를 위한 외국의 한 포스터<출처; www.ucasa.org>
#3. 성폭력 개념의 무거움

(자주) 성폭력의 개념 규정에 앞서 성폭력으로 규정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왜 여성들은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싶은가가 고민되어야 한다고 봐요. 자신이 받는 부당함, 차별적인 상황들, 불쾌함과 끈적거림 그런 느낌들에 비해 성폭력이라는 개념은 무겁지만 무슨 다른 말로 표현할까요?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김00와 공적으로 만났는데도 사적인 질문을 받았잖아요. 그 사적인 것이 때로는 성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 불쾌함을 설명할 언어가 없는 것이고, 성폭력이 가장 유효한 거죠.

(괭이눈) 성찰과 지향은 좀 다르잖아요. 우리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같이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성찰을 넘어선 지향이 분명히 필요하고, 계속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잖아요?

(반다) 우리가 왜 성폭력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두려워할까, 혹은 불편해할까요? 남성들은 심지어 여성들도 성폭력으로 명명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 많은 갈등을 해요. 성폭력을 떠올리면 우리는 여전히 강간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걸까. 아니면 성폭력 가해자는 사회에서 매장되어야 하는 재생의 여지가 없는, 그렇게 판단하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00은 그날 제 슬리퍼와 발 사이에 붙은 것을 떼주겠다고 손을 넣어서 갑자기 뗐는데, 그 순간 오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비오는 날 집회에 갔다 와서 신발이 정말 더러웠는데, 그게 만약 내가 신뢰하는 어떤 남성활동가가 그랬다면 배려이고, 정말 친절하다면서 농담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이 사람이 그러니까 소름끼치는 나의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이 사람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피고소인이 둘다 남성활동가에요. 실제로 회의에서 많은 얘기를 했던 것도 여성활동가였고 사회를 봤던 것도 여성활동가였는데 고소를 한 사람은 남성활동가였던 거에요. 그 얘기를 듣고 “거봐라 쟤는 여자를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우리끼리 했어요. 고소의 대상도 안된다는 거죠. 아무튼 우리가 어떤 것을 성폭력이라고 명명하는 것에 왜이렇게 많은 두려움과 어려움과 갈등을 느끼는 걸까요. 지금은 성폭력의 개념이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다른 언어로 성폭력이 세분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주) 성폭력 피해자나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일까요? 남성들은 가해자가 됐을 때, 소위 말하는 ‘망신살 뻗치는 일’이고, 그래서 더더욱 가해자들은 부인해야 할 일이 되지요. 현재 사회적으로는 성폭력을 성관계에 중심을 두고 보는 시각이 있죠. 성폭력을 폭력이 아니라 성에 방점을 찍으면서, 폭력을 당한 피해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밀한 부분이 까발려진 것으로 본다든가.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다른 말로 규정할 말이 있었으면 성폭력으로 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일반적인 여성들은 남한테 화낼 수 없고, 불쾌감을 표현할 수 없는 여성으로 교육받잖아요? 착해야 되고 싫은 소리하면 안되고 늘 현명해야 하고 알게 모르게 내재화하고, 사회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사인을 계속 주는 상황에서 “왜 이렇게 집적대냐,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불쾌하다, 개인적인 관심을 거둬라”라고 말했다면, 두 사람이 동등한 관계였을 때 성폭력으로 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혼자서 싸우는 것이 힘든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혼자서 싸우기는 힘들고, 그럴 때 이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여성이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교육받는 방식이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런 선택밖에 할 수 없게 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듭니다. 물론 거기 계셨던 분들이 왜 ‘싫은 티’를 안내셨겠습니까? 좀 퉁명스럽게 얘기하는 것도 용기를 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해자가 못알아 들은거죠. 얼마나 이 사람이 감수성이 모자라는 사람인지 알 수 있죠.

위 사진:"여성에 대한 폭력에는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 없다"<출처; www.umich.edu>
#4. 여성은 계속 피해자로 남는다?

(자주) 그런데 성폭력개념이 확정되는 것이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그만큼의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지금 법적으로 남성 성기중심적, 삽입중심적 강간만 인정하고 그것도 잘 인정안하지만, 개념이 더 확장되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죠. 그런데 (성폭력의 개념이 확장되어) 성폭력이 일상적인 것으로 되어버리면 여성은 피해자로만 남게 되지 않나요? (피해자가 되는 것과) 적극적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 꼭 같이 가는 것은 아니죠.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여성은 왜 늘 피해자여야만 할까하는 고민을 할 수 있는 거죠.

(반다) 어떤 사건을 성폭력으로 부른다고 해서 여성이 곧바로 자신을 피해자로만 정체화하는 걸까요?

(자주) 성폭력으로 명명하든 아니든 개인적인 변화는 크게 없을 수도 있어요. 지금 던지는 질문은, 성폭력 개념이 확장되었을 때 여성들의 주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거죠. 여성의 성은 침해되어야 하는 성일까요? 성폭력 범위가 계속 확대되면서 공적인 영역에서 힘을 빌릴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지는데, 이것도 피해고 저것도 피해고 이런 식으로 가는게 꼭 좋은 영향만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양면성이 있는 거죠. 어떤 부분을 얻게 되면 어떤 부분을 잃게 되기도 하는 거죠. 성적 농담에 대해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냥 낄낄거리잖아요. 여성은 그러지 못하죠. 여성이 성적인 것에 대해 매번 피하고 침해받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확장되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반다) 여성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했고, 회원들이 며칠안에 발빠르게, 모일 수 없어 온라인으로 토론하고 해서 사건을 풀어갔는데 이 사건에 대해서 빠르게 감정이입을 해서 느낌들을 잘 캐치하고 잘 풀어갈 수 있었던 과정 자체가 저한테 중요한 경험이었거든요. 당사자들이 나서서 ‘너도 그런일 있었어?’ 이러면서 모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되지’, ‘그게 너무 고통스러웠어’하면서. 정말 성폭력을 누가 규정하고 그 사건을 누가 해결하느냐에 따라 다르구나, 사건해결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하고 내가 당사자가 되고, 내가 당사자인데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내안에 있었을 때 정말 다르게 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말씀하신, 성폭력이라고 명명했을 때 여성들이 계속 수동화될 수 있다는 염려는 이론적으로는 받아들여지는데 이 사건의 경험으로 들어가서 보면 아니에요.

(자주) 피해자로만 규정했을 때, 그게 항상 수동화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아까 말했던 개념확장의 문제, 일상적으로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문화, 공적인 힘을 빌린다는 것이 여성들이 강해지는 방식인가? 자기 역량이 강해지는 방식인가?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싶어요. 역량강화라는 측면에서.

(괭이눈) 폭력적인 상황에서 사람은 벗어나고 싶거나 그냥 조화롭게 살고 싶은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있잖아요 그래서 폭력이라는 말이 싫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폭력에 듬뿍 들어가 있는 기름기를 빼고 폭력을 조금더 가볍게 하면서 모두의 감수성이나 민감성을 한껏 높일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오히려 여기에 방점을 직어서 활동방향을 지향해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사건이 그럴 수 있는 한 단계로 느껴져서 다들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고. 이 사건이 모든 상황을 성폭력적인 상황, 모두를 성폭력범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누구나 피해를 당할 수 있듯이 내가 누구나 가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생각하면서, 조화롭게 살자고 폭력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 여기에 저항하려는 씨앗을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야지요. 성폭력의 개념확장이 거기서 선의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주) 성폭력의 피해가 사건화되고 그러면서 무거워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걸 일상적인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에는 동의하고 지금까지의 운동도 그런 방식이었죠.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으로 개념을 확장시키고 일상적인 영역까지 가야 하죠. 성폭력이 일상의 성문화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데 성폭력 개념 확장으로 공적인 영역, 공적인 방식으로 확장되어 여성의 개인적인 삶의 영역이 침투해야 하는 무엇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은 문제적이지 않나요? 성이 마치 여성과 분리되어야 하는, 성이라는 개념이 여성과 너무 멀거나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그런 방식으로 얘기된다거나. 피해의 개념을 확장하고 그것의 의미를 끌어내리고 일상의 문화를 공격하고 도전하고 저항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충분히 동의하지만 개개 여성들의 삶에서 어떻게 힘을 뺏고 있는지 고민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반다) 보호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단어 같지만, 보호는 ‘통제’를 동반하지 않고는 보호일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누가 누구를 보호하느냐의 문제인거죠. 남자가 자기 애인을 보호할 때와 자매가 자매를 보호할 때처럼 어떤 관계에 놓여지고 어떤 관계에서 경합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힘들을 지니는 것 같아요.
인권오름 제 17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18일 12: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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