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의 놀이와 노동] 삶은 게임! 장난이 아니네...

조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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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 년대도 어느덧 10년대로 접어들 즈음. 한국정보산업연합회라는 곳에서 국내 크고 작은 정보기술(IT) 기업들에 의견을 물어 조사했더니 2011년 정보기술 산업의 핵심 용어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꼽고 '클라우드 컴퓨팅'과 '소셜 네트워크'를 그 다음으로 꼽았다 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새로나온 디지털 신상품이나 인터넷의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웹사이트의 유행처럼 지나가는 게 아니라 우리네 일상생활의 문화 전반을 뒤덮을 기세다. '집단지성의 놀이와 노동'의 차원에서 볼 때 이 세 가지와 더불어 당분간 극성을 부릴 또 하나를 더 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게임화(gamification)일 것이다.

게임화

게임화는 한마디로 게임의 요소를 상품 판촉(마케팅)에 적용한 것을 말한다. 이 말이 처음 나온 곳도 게임 디자이너들과 손잡은 마케팅 업계다(주로 미국 얘기다, 아직은). 여기서 말하는 게임의 요소는 우리가 어떤 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마치 게임하듯이 재밌고 호승심을 유발해 쟁탈하듯이 만들거나 적절한 보상과 성취감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더욱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게 만든다. 게임화를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 돈벌이 하려는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마케팅 기업)은 이제 게임의 논리와 코드를 활용해 소비자의 감정, 동기, 행위 패턴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소비자들이 게임에 빠져들듯이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 몰입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게임화는 이미 존재하는 여러 마케팅 기법을 한데 모아보니 게임과 비슷하여 그것들을 묶어 이름붙인 것이라해도 틀리지 않는다. 다만, 최근의 상품 및 서비스 마케팅의 경향(트렌드)에 게임의 요소가 상당히 두드러지고 있고, 우리의 일상문화에 슬며시 그러나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런 경제문화 혹은 문화경제적 논리가 걱정된다.

위 사진:[출처: www.media.daum.net]


게임화의 양상을 몇 가지 살펴보자. 대표적인 게임화의 사례는 비행기표를 사고 숙박시설을 이용하면서 마일을 쌓는 일이다. 항공사에 혹시 회원가입이 되어 있다면, 시시때때로 오는 이메일에는 현재 적립된 마일이 얼마인데 이것저것 누릴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더 쌓아야하는지 알기 쉅게 그래프가 제시된다. 수퍼마켓에서 식료잡화를 살 때도 계산대에서 돈과 함께 포인트 적립카드 같은 것을 내미는 일이 어느새 일상화되었고, 사실 그 이전부터 중국집의 자장면 하나 배달받아도 스티커가 따라오기는 했다. 마일을 쌓고, 포인트를 적립하고, 스티커를 다 붙이면 뭔가 보너스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적절한 보상의 제공은 게임화의 기본이다. 보너스 혜택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순위가 높아지거나 그게 아니라도 뭔가 성취감을 주는 게 있다면 뭔가를 더 하고 싶어진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전적 보상만큼 동기부여가 심하게 된다고 믿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포인트, 마일, 뱃지, 트로피, 도전, 사이버머니 등과 같은 보상 기제가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다. 신용카드사나 은행, 호텔, 항공, 자동차, 통신사, 온라인 포털 등이 연계하면서 거리에서든 인터넷에서든, 현실세계에서든 온라인게임과 같은 가상세계에서든 안 가리고 쓸 수 있게 되고 있다. 그에 더해 내가 얻은 포인트 점수, 올라선 숙련의 단계 같은 것들이 계속 통계 처리되어 알기 쉬운 막대 그래프로 늘상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기분 좋을 것 같다.

게임화와 소셜 네트워크

이런 게임화 기제가 보다 잘 적용되는 것은 위에서 말한 최신 네트워크문화의 도구들을 통해서다. 우선, 우리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상생활에 '소셜 네트워크'가 기생하며 퍼져갔다면 게임화는 그 '소셜 네트워크'에 기생하며 확산되고 있다. 단적으로 "오늘밤 12시에 무엇이 반값이 될까"라는 광고 문구가 서울 시내버스 옆구리에까지 나붙었는데, 이는 어느 한 '소셜커머스' 업체가 소비자를 꼬이려는 말이다. 이 웹사이트에 가면 고급음식점이나 술집, 이미용 서비스, 공연행사 등을 하루에 하나씩 하루밤 사이에 100명 등으로 정해진 사람이 모두 결제하면 5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반값으로 살 수 있는 대신 정해진 사람수를 우리가 채워주는 수고를 해야하는데 그 때 바로 '소셜 네트워크'를 타고 우리의 친구들이 동원되는 식이다. 먹고 마시고 꾸미고 보고 즐기는 생활문화의 소비가 경매 혹은 게임하듯 이루어진다. 해외에서도 유사하게 '그루폰'(groupon)이나 '리빙소셜'(LivingSocial)이 있는데 그 이름이 암시하듯, 이제 개별적이었던 소비생활을 친구를 동원해서 '소셜'하게 하도록 유도된다.

이렇게 게임화가 소셜 네트워크와 결합하는 방식을 크게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공간은 사람들의 실시간 위치정보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리고 시간은 소비 선택을 인위적으로 희소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먼저, 게임화가 스마트폰과 결합되면 우리의 일상적인 이동과 자주 가는 장소에 대한 게임이 펼쳐진다. 국내에는 아직 유사한 것이 없는 모양인데 '포스퀘어'(foursquare)라는 소위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는 이 것(앱)을 설치한 스마트폰으로 특정한 장소에 가서 ‘나 지금 여기 있다’고 등록(check-in)하면 된다. 특정한 곳에서 가장 많이 등록을 한 사람이 그 곳의 '시장'(mayor)이 되었다고 표시된다. 그러니 시장 자리를 뺏으려면 더 많이 체크인하면 된다. 그 전에라도 등록하는 족족 포인트를 받는다. 내 점수는 다른 사람들과의 순위를 매기는데 사용되고 순위가 낮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서 등록을 많이 하면 된다. 식당이나 극장이나 어디든 그 곳에 대한 정보를 올리면서 말이다. 그러면 열심히 했다고 다양한 뱃지를 얻을 수 있고, 다양하고 예쁜 뱃지 얻는 재미로 역시 등록을 계속 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이 '포스퀘어'(foursquare) 말고도 '페이스북 장소'(Facebook Places), '에쓰씨브이엔쥐알'(SCVNGR), '고왈라'(Gowalla) 같은 것이 있다.

반면, 시간에 대한 게임화 적용의 한 방식은 구매할 기회를 인위적으로 희소하게 만들어서 소비를 유발시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자정 때 반값으로 공동 할인 구매하는 곳의 경우가 그렇다. 십 만원에 육박하는 드라마 촬영장소였던 식당의 식사권을 반값에 살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오늘밤까지다.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머릿수 채워 반값에 구매하는 것이 무슨 게임같아 재밌고 어차피 먹고 마시고 즐기고 할텐데 반값이라니, (어느 한 홍보성 블로그 글의 표현대로) "하루에 한번이라도 안 보면 괜히 손해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뭔가 돈을 쓰면서도 돈을 절약하거나 심지어 돈을 버는 것 같다. 지금 안 사면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찬스가 매일밤마다 희소하게 제공되는 셈이다. 어차피 살 것이었는지 굳이 필요없었던 것인지 애매하지만 말이다. 외국에서는 보석 같은 고급 치장물이나 고가 제품을 취급하는 '길트 집단'(Gilt Groupe) 같은 곳이 이렇게 희소한 할인 기회를 만들어 소비를 유발하는 이런 게임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는 게 장난이 아니네...

'소셜'을 앞세운 마케팅 전략이 직접 얼굴보며 만나거나 전화로 유지되기 힘들었던 가족, 친구, 동료, 선후배 등과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새로 맺으며 발전시킬 수 있게 돕는 도구(소셜 미디어, 스마트폰)를 통해서 우리 생활 전반에 파고들고 있듯이, 게임화 역시 그런 식으로 문화(산업), 미디어, 건강, 의료, 교육, 환경 등 가능한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이를테면, 건강 차원에서 다이어트나 체력 관리를 위한 게임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동시에 게임화의 방식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 게임화 전문가가 말한 예를 들자면, 내 신발에 센서가 달려있어서 하루동안 걸어다닌 거리가 자동으로 원격 측정되어 그에 따라 나는 포인트를 받게 되는데 그 정보가 보험회사로 들어가 보험료의 일부가 자동 납부될 수도 있고, 나의 체력관리 노력이 어느 정도 이르면 물론 광고회사로도 전송되어 체육용품에 대한 할인쿠폰을 우송받을 수도 있다. 친환경, 녹색성장, 저탄소, 대체에너지 이용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도 이런 식으로 갈 수 있고, 교육도 (입시)지옥이 아니라 게임처럼 재밌게 만들자는 시도가 있을 것이다.

건강도 교육도 환경 보존도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한결같이 즐겁게 할 수 있다니, 세상 참 재밌고 살 만해지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죄다 소비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앞서 언급한 여러 사례들을 한 개 두 개 찾다보면 기발하다 생각되기도 하지만 계속 보다보면 왠지 모르게 주눅들고 곤혹스러운 느낌이 절로 생긴다. 한 두 번의 재미가 반복적인 일이 된다면, 그래서 놀이가 노동이 된다면, 노동 과정에서도 벅찬데 사는 것 자체가 무슨 조종을 받으며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무엇을 하든지 간에 보상이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임화의 설정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충성 고객의 지속가능한 소비를 만들기 위한 투자라는 차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의 강화를 위한 기제일 뿐 진정한 보상이나 혜택이 아니다. 우리의 자발성이 (이윤창출을 위해) 언제나 쉽게 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그런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점점 이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게 되면, 그런 금전적인 동기나 유인(인센티브) 없이도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어왔던 우리의 자발성과 자율성이 점점 내좇기고 무슨 다중 역할수행 게임 속 캐릭터처럼 살게 되지 않을까.


게임화의 목적은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소비과정이나 노동과정에 관여하는 방식을 지가 좋아서 하는 일로 만드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재미있던 게 재미가 없어지고 노는 게 노는 게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어느때부턴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 중에 "장난이 아니네..."는 바로 그런 현실 변화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담고 있다 하겠다.

참고한 것

  • "2011년 IT산업 키워드는 스마트, 클라우드, 소셜," 전자신문, 2010.12.8


  • "5 Predictions for Game Mechanics in 2011"(2011년 게임 메커닉스를 위한 5가지 예측), Gabe Zichermann, mashable.com, 2010.12.17


  • Gamepocalypse Now(블로그), Jesse Schell


  • "The Gamification of Everything?"(모든 것의 게임화?), Margaret Wallace, Gaming Business Review, 2010.12.14



  • 덧붙이는 글
    조동원 님(dongwon@riseup.net)은 미디어운동과 문화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232 호 [기사입력] 2010년 12월 21일 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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