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서둘러야 할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강제퇴거는 사회적 관계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미류,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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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퇴거는 범죄행위
“위원회는 강제퇴거는 오로지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될 것, 그리고 용산 사건에서와 같이 폭력에 의존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어떠한 개발사업이나 도시 재개발사업도 그 사업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사전 통지하지 않거나 임시 주거를 제공하지 아니한 채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권고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2009년 11월 19일 대한민국 정부의 3차 보고서 정기 심사를 마치고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최종견해를 채택했다. 지난해 1월 용산에서 일어났던 용산참사에 대한 유엔의 공식적인 지적인 셈이다. 이런 지적을 받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재개발사업은 폭력으로 얼룩져 왔다. 용산참사는 철거민 5명이 망루에 올랐다가 죽음으로서 보도의 초점이 되었지만 사실 재개발 지역에서는 언제나 폭력에 의한 강제철거는 당연한 것처럼 공식화되어 있다.

용산참사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상가세입자 영업손실 보상이 4개월치로 늘어났고 도시개발법에서는 야간․동절기 철거를 금지했고 서울시는 공공관리자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상가세입자들은 한 달치 보상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생계의 터전을 잃었던 것이 문제였다. 도시개발법 시행령은 최근 개발 사업의 대다수인 주택재개발사업이나 도시환경정비사업과 무관하다. 공공관리자제도는 개발 사업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개발 사업의 관리에 공공의 자원을 투여하는 것일 뿐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 심사에서 “용산참사는 강제퇴거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정부의 인식은 생색내기 개선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법 밖에 있다.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에서는 철거용역깡패가 군림한다. 개발 사업 구역은 삽시간에 무법천지로 변한다. 용역깡패들은 영업을 방해하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면서 주민들을 위협하고, 폭행도 가한다. 비어가는 집들의 한 귀퉁이를 무너뜨리고 유리창을 깨고 벽에는 붉은 페인트로 해골을 그려 넣는다. 밤이면 무서워서 지나갈 수도 없는 곳이 되는 게 개발사업구역이다. 이런 노골적인 폭력으로 공포를 조장해, 세입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알량한 보상금을 챙겨서 이삿짐을 싸도록 만든다.

그 곳에서 법은 오히려 철거민들의 권리를 압수할 뿐이다. 폭력을 당해 신고해도 경찰은 오지 않고 와서도 깡패들 편을 든다. 다친 것은 철거민이고, 당한 것도 철거민인데 경찰이나 검찰, 법원은 철거민들이 용역 깡패들에 저항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단정하고 입건하고 구속한다. 그러다가 깡패들의 폭력에 쫓겨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것이 망루다. 망루는, 그들이 ‘철거민’이라는 특수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고 싶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르게 되는 곳이다. 그렇게 저항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마저 경찰을 동원해 하루 만에 짓밟고 사람을 죽게 만들었던 게 용산참사다.
유엔은 당연히 이런 강제퇴거를 인권침해라고 말한다. 폭력에 의존해 온 재개발의 역사는 인권기준에 어긋난다며 매번 심사 때마다 한국정부에 강제퇴거의 문제를 지적했다. 유엔 사회권규약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권고에 따라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법․제도를 바꿔야 할 의무를 진다. 그러나 권고를 받은 후 1년이 다 되도록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없다.

강제퇴거금지, 법으로 선포해야
“강제퇴거는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선언 이래 유엔은 강제퇴거를 중단시키기 위한 각종 선언과 결의와 논평 등을 내놓고 있다. 사회권규약을 다루는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일반논평 4’에서 “점유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강제퇴거, 괴롭힘 또는 기타 위협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점유에 대한 법적인 안정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규정하였고, ‘일반논평 7’에서는 “당사국은 어떠한 강제퇴거, 특히 대규모 집단이 관련된 강제퇴거에 앞서 강제력 사용의 필요성을 피하거나 적어도 최소화시키기 위해 관련자들과의 협의 하에 가능한 모든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사회권규약의 당사국으로서 이런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특히 1995년 세계주거회의에서는 강제퇴거 및 철거를 금지하고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결의에 서명하기까지 한 당사국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정부는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가 폭력적으로 용인되는 법과 제도, 관행을 고치지 않고 있다. 안정될 만하면 쏟아내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은 건설사와 땅 투기꾼들이 재개발 사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보장해주었고 강제퇴거의 문제는 방치되고 조장되었다. 즉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강제퇴거를 금지하겠다고 결의를 밝히면서도 내부에서는 버젓이 강제철거를 자행하도록 촉진하는 기만행위를 계속해 왔다.

이제 시민사회가 나서서 주거 약자인 세입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폭력에 시달리다가 눈물로 이삿짐을 싸지 않도록, 원주민은 도시의 외곽으로 쫓겨나고 땅투기꾼들만 잇속을 챙기는 일에 국가권력이 동원되지 않도록, 그 원주민들이 재정착할 수 있도록, 그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개선되어야 하고, 입법되고 정책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다시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게 강제퇴거와 폭력적인 철거를 금지하는 일일 것이다.

강제퇴거를 막기 위한 투쟁은 1960년대부터 끝없이 이어져왔다. 철거민들의 투쟁은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자 보편적인 주거권 실현을 위한 투쟁이었다. 그 결과, 개발 사업은 막무가내로 내쫓고 허허벌판에 내팽개치던 과거의 모습보다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집’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재산의 문제로 인식되고, ‘강제퇴거’ 역시 근절되어야 할 반인권적 범죄이기보다는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권리 다툼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은 국제인권규약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주거권을 비롯해 강제퇴거를 당하지 않을 권리를 법률로 명시함으로써 ‘강제퇴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의 권리를 명시하는 것은, 동시에 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음을 확인하고, 누구도 강제퇴거를 자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여전히 많은 개발 예정구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 강제퇴거를 방지하기 위한 주요 기준들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현재 개발 관련 법령이나 제도는 매우 다양해서 개발 사업의 종류에 따라 사업 방식이나 세입자 대책의 격차가 있다. 각각의 법률을 개정해야 할 과제도 있지만, 관련 법률을 일관되게 개정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과제다. 이를 통해 개발 사업이 추진될 때 모든 거주민들이 재정착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세입자들이 개발 사업 후 입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이나 임대상가, 개발 사업 기간 동안 임시로 이주할 수 있는 주택이나 상가, 그리고 개발 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사회적 손실에 대한 보상 등이 개발 사업 종류를 불문하고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강제퇴거는 단순히 살던 집이나 가게에서 쫓겨나는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 또는 한 가구가 기반을 두고 있던 사회적 관계와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강제퇴거가 있어서는 안 될 범죄임을 분명히 하고 강제퇴거가 발생할 경우 이것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다. 강제퇴거의 위협에 저항하는 것이 오히려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강제퇴거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강제퇴거로 발생하는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인데도 책임지거나 처벌되는 자가 하나도 없는 현실로 인해 강제퇴거가 더욱 만연했다. 경찰의 고문이 처벌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제퇴거 행위는 처벌되어야 한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은 새로운 싸움의 시작
강제퇴거금지법의 제정으로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강제퇴거는 단지 법이 금지하지 않아서 발생했던 문제가 아니라, 개발이익을 노린 자본과 탐욕이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다. 강제퇴거를 금지함으로써 마구잡이 개발에 제동을 걸 수 있으며 탐욕을 부추기는 자본에 약하나마 족쇄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는 법 제정의 의미가 더욱 크다. 많은 나라들이 주거권과 강제퇴거금지원칙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다양한 법률들을 통해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여전히 ‘주거권’에 대한 인식조차 미약하다. 삶의 전부를 걸고 집 한 채, 가게 하나를 지켜야 하는 싸움을 넘어서, 삶 자체를 가꾸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의 희생과 약탈을 통해서 소수를 배불리는 재개발 제도와 정책은 당장 시정되어야 한다. 한없는 폭력 앞에 무권리의 상태로 쫓겨나는 철거민이 없어야 한다. 끝내 망루에 올라 목숨까지 담보하는 철거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얼마나 살풍경하고 야만적인 모습인가. 그런 약탈과 야만이 판치는 철거 현장을 두고서 공동체 운운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누구도 삶의 터전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나서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강제퇴거다. 더 이상 폭력에 의한 강제퇴거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정부가, 국회가, 시민사회가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서둘러 해야 할 일이다. 용산참사 2주기를 맞아 열리는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토론회에 주목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주거권운동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박래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집행위원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233 호 [기사입력] 2011년 01월 05일 16: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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