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녕의 인권이야기] 나의 공동체에서 살아가기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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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만남

초등학교 3학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내 방이 생겨서 엄청나게 좋았지만 그 만큼 싫은 게 생겼다. 어른들에게 인사하기! 잘 모르는데 옆 집 사니깐, 위층 사니깐, 옆 통로에 사니깐 등등의 이유로 인사를 해야만 했다. 인사를 잘하는 것은 연립 어른들이 그 집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 때문에 막 이사 온 새내기 세대로써 부모님의 당부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다 최근 생각일 뿐, 당시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화창한 봄이나 가을, 하교 길이 얼마나 부담이었는지. 연립근처에 가면 동네 아줌마 무리가 평상에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소리가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보자마자 인사를 해야 하나? 아줌마들이 날 봐야 인사해야하나? 몇 번 인사를 해야 하지? 난 인사를 했는데 아줌마가 못 봐서 인사 안했다고 엄마한테 말하면 어쩌지’등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그 관문을 통과해야 안전히 집에 갈 수 있었다. 친구들과 인사하기는 내가 인사를 했는지 안했는지도 가물가물 할 만큼 자연스러운데 어른들에게 하는 인사를 참말로 오금을 저리게 했다. 이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여전히 낯선 사람과의 인사하기는 서투르다.

위 사진:[출처] http://www.east4.org/blog/?paged=10


공동체. 내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말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나의 인생지론은 “남에게 피해 받지 않고 피해 주지 않으며 살기”였다. 불가능한 삶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심각히 고민했다.

365일 중 360일은 집에 계시는 우리 엄마. 가끔 아빠랑 놀러 갈 때면, 꼭 옆집 아줌마 윗집 아줌마에게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러면 옆 집 아줌마가 식사 때 마다 반찬 가져오고 찌개를 가져오신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예전만큼 싫을까. 옆 집 대문소리가 들리면 움찔한다. 역시나 우리 집 문 두드리는 소리. 개기름 낀 얼굴에 주섬주섬 옷을 입는 것도 싫고, 보여주는 건 더 싫고, 안줘도 되는데 왜 주려고 하시는지 당최 이해가 안가서 짜증만 나는 그 상황. 1년에 몇 번 안 되는 그 상황이 참 스트레스였지.

내 학교 시험 성적을 왜 옆집 아줌마, 옆 통로 아줌마들에게 말하는지 절대 이해할 수 없었고,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우리 집에 아줌마들을 불러들여 수다 떠는 것도 싫었고, 벨도 안 누르고 문을 확~ 열어버리는 동네 아줌마들이 정말 싫었다. 또 목욕탕에 갔다가 반갑게 인사하시는 동네 아줌마를 만나 기절할 듯 놀라고는 꽤 오랫동안 목욕탕을 멀리 다니기도 했다.(초등학생 때부터 목욕탕을 혼자 잘 다녔다.)

내성적인 나에게 새로 이사 온 이 곳 사람들의 문화는 너무 많은 것을 내줘야했기에 부담이었던 듯하다. 때문에 나 아닌 누군가와 같이 무리를 이루며 산다는 것이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 알아가기

공부는 하기 싫은데 공부 말고는 대안이 없는 대안이 있어서도 안 되었던 고등학생 시절, 스트레스에 많이 먹고, 살찌니 교복은 작아지고, 변비는 내 평생 동반자가 될 줄 알았던 그 시절. 나에게 또 하나 큰 골치는 시도 때도 없이 아랫도리를 훌러덩 벗어재끼는 이른바 ‘바바리 맨’이었다. 그 시절 한창 속출하다보니 동네 아줌마들도 당신 딸내미들 때문에 걱정이셨다. 그러다 연립 마당 평상에 앉아계시는 아줌마들이 나를 잡고 바바리 맨 물리치는 전술을 알려주신다. 바바리맨을 보자마자 얼음이 되어 내 갈 길만 가는 나에게 아줌마들의 그 전술은 말만 들어도 굉장한 스트레스 해소였다. 비록 절대 실현 불가능일지라도…….

30년 가까이 살다보니 전보다는 얼굴도 살짝 두꺼워지고, 사람이 산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면서 우리 동네 공동체가 도심의 삶 속에서 얼마나 드문지 알게 되면서 이전과는 점점 다르게 다가온다. 본격적으로 자랑해 볼까?!

내가 사는 연립은 김장철이면 서로서로 품앗이를 한다. 매년 우리 집 김장도 동네 아줌마들이 새벽같이 오셔서 같이 도와주시지 덕분에 나는 김장을 도와줘 본 적이 없다. 또, 18세대가 서로의 자동차를 다 알아서 주차 관련되어 싸우는 것도 없다. 심지어 서로 누가 어떤 직업으로 빨리 나가는지 알기 때문에 늦게 출근하는 사람은 차를 안쪽으로 대놓기도 한다. 물론 단점은 있다. 다른 동네 차가 연립 마당에 떴다. 난리난다. 사실 공간이 비면 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연립 마당 청소도 용역을 쓰지 않는다. 매주 토요일 아침 7시에 각 세대마다 1명씩 나와서 동네 청소를 한다. 안 나오면 벌금 오천 원. 또 집을 비울 때면 혹시 도둑이라도 들까 싶어 우리 집을 신경써달라는 부탁도 할 수 있다. 가끔 밥을 얻기도 한다. 한 공기만 먹으면 되는데 밥하기 귀찮을 때 말이다. 또 연립 마당에서 번개탄에 돼지고기, 양미리, 조개 등을 구워먹으며 모임을 갖기도 한다.

저번 가을에는 내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 페달 한 짝이 빠져서 한동안 못 탔다. 고치러 갈 시간도 없고 해서. 그런데 어느 날 옆 통로 아저씨가 그거 고치고 계셨다. 정말 인심 좋다. 그런데 서로 흉도 많이 보고 종종 대판 싸우기도 한다.

# 살아가기

혼자 살지 못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말 많고 시끄럽고 그러면서도 은근한 정이 있는 것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속한 단체에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실망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으면서 잘 보낼 줄 알았지. 그런데 공동체(모임 혹은 단체)마다 문화, 성격 등이 다르다 보니 나의 어려움은 또 다른 곳에서 만났다. 바로 가사일. 아니 예견된 일이지. 집에서 내 속옷 한번 빨아보지 않았는데 두 달에 한번 씩 오는 당번 일을 잘 할 수가 없었다. 매뉴얼을 보면서 속만 타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물어볼 사람은 없고……. 결국 엉망으로 해버렸지. 그리고 다음 번 차례에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다음에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보기만 했으니깐.

위 사진:[설명] 프리타운(Freetown) 이라 불리는 크리스티아나는 코펜하겐 시티센터 자전거로 15분 거리에 있는 자치구역입이다. 이 지역을 바라보는 입장이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도의 장으로 혹은 사회의 낙오자들이 모여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출처: [디자인과 건축기행]대안공동체,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나를 가다. http://www.makehopecity.com/?p=8237


예전에 대학교 1학년 때 농활을 갔는데 30명이 넘게 먹은 설거지를 두 명이서 졸졸졸 떨어지는 물에서 설거지를 한 적이 있었다. 물이 적게 나오니 일은 더뎌지고 그릇은 아무리 씻어도 줄지 않는 거다. 울었다. 그 이후로 설거지라면 질색이고 덕분에 가사 일을 슬슬 안하는 버릇도 생긴 것 같다.

집안 청소에 능숙한 활동가에게 배우면서, 베란다 화장실 변기를 닦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만날 청소만하는 엄마한테 미안했다. 그리고 좀 재밌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하니깐. 물론 변기에 변 찌꺼기가 있다면 달랐겠지만.

며칠 뒤 집에서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변기 청소를 했다. 일을 하다가 소변이 급해 화장실을 가니 커버에 똥이 튀겨서 앉을 수가 없었다. 다른 때면 막 욕하면서 위층 화장실 갔을 텐데 그 땐 조용히 닦았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 언급한다. 넓은 마음으로…….^^

곧 당번이 또 다가올 것이다. 딱히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40평이 넘는 공간을 둘이 청소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배운 데로 해봐야지. 안 그럼 다음 당번이 힘들 테니깐. 어제는 사무실 내 책상 청소도 했다. 책상 지저분하게 쓰기로 소문난 내가 청소를 하니, 입사 이래 처음이라고, 관둘 거냐고 놀린다. 내가 선택하고 함께 하기를 원한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며, 때로는 날을 세우며 긴장하고 싸우며 그렇게 살겠지.
덧붙이는 글
선영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36 호 [기사입력] 2011년 01월 26일 21: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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