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자유를 찾는 고양이들의 모험

『100만 번산 고양이』와 『날 고양이들』

이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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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삶에 자유가 있을까.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기분을 느껴본 일이 얼마나 될까. 하루하루의 삶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깃털처럼 가벼워서 훨훨 날아갈 것만 같은 만족감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

강제 노동에 가까운 과중한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생이 남긴 유서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글귀다. 구속 없이 속박 없이 자기의 삶을 자기 스스로 살아내고 싶은 소망이 가득 담겨 있어, 가슴을 울린다. 무엇보다 이런 자유에 대한 한 어린이의 갈망이 단지 개인의 것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우리를 더 아프게 한다. 모든 어린이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매일 부모와 교사의 요구 아래 자신의 욕구를 숨겨야만 하는 아이들은 철창 속에 갇혀 있는 기분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그렇다고 아이들이 그저 순응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에 꿈틀 거리는 불안, 불만, 삐딱함을 해소할 방식들을 저마다 찾고 있을 테다. 문제는 그런 삐딱함을 사회가 지지해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문제 행동'으로 폄하되고 만다. 그럼 그 모든 삐딱함을 포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내가 되어야 한다고 날카로운 눈빛을 매섭게 번득이며 우리를 응시하는 고양이들이 있다. 그 누군가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자존으로 날카롭게 빛나는 눈들. 바로,『100만 번산 고양이』와 『날 고양이들』의 주인공들이다.



자유와 사랑을 얻은 고양이, 드디어 죽다, 『100만 번 산 고양이』(사노요코 글, 그림)

“100만 번이나 살다니, 정말 운이 좋은 고양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미친 세상에 100만 번이나 태어나다니 정말 운 나쁜 고양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어느 것이든 100만 번이나 태어난 고양이라면 100만 개의 특별한 인생을 살았다는 뜻이 되니 흥미롭게 여겨진다. 하지만, 고양이는 마지막 순간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자기만의 삶을 살지 못했다.

고양이는 다시 태어날 때마다 임금님, 뱃사공, 서커스단 마술사, 도둑, 홀로 사는 할머니, 어린 여자 아이의 것이었다. 그들과 사는 것을 싫어했던 고양이는 매번 잔인한 죽음을 당했다. 화살에 맞아 죽고, 바다에 빠져 죽고, 마술사의 상자 속에 잘려 죽고, 개에 물려 죽고, 늙어 죽고, 끈에 목이 졸려 죽는데, 고양이는 아무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데다 목숨까지 다른 사람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돌처럼 차가운 심장을 가진 듯 날카로운 눈빛만이 매섭게 빛난다.

그러나 그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온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고양이”가 아니라 “100만 번 산 고양이”아닌가.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습니다…….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 했습니다.”

시퍼렇게 잔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매서운 눈빛을 잃지 않는 고양이를 보며 서늘했던 마음이 일순간에 녹아버리는 구절이다. 길거리에 발라당 누워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양이가 프레임 전체를 가득 메운다. 이제 누군가의 고양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것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천진하게 그려 보여주었다. 특별한 것을 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다, 그저 하릴 없이 누워 생선뼈를 발라 먹더라도, 자기만의 자기가 되어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

100만 번을 살면서, 99만 번 동안 가져보지 않았던 삶이다. 온 마음을 다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삶을 산 고양이는 이제 더 이상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된다. '진정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죽음'이다. 임금님이, 뱃사공이, 마술사가, 도둑이, 할머니가, 여자 아이의 고양이었을 때는 '진정한 자기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계속해서 100만 번이 될 때까지 다시 태어났던 것이다. 작가는 생명의 문제가 단순히 살고 죽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를 실현하는 자유와 크게 맞닿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꽤 웅숭깊은 은유임에도, 이야기가 잘 짜여 있어 아이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독립을 향해 날아오르는 고양이, 『날 고양이들』(어쉴러 르귄)

판타지와 SF 작가로 잘 알려진 작가 어쉴러 르귄에 의해 태어난 날개 달린 고양이들은, 동화 속에서 소수자다. 날개 달린 고양이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게 잡히게 되면 창살에 갇혀 평생 구경거리로 전락하여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엄마고양이는 그런 날 고양이 새끼들을 가슴 속에 품고 있기 보다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길 바라고 떠나보낸다. 날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보호'가 아니라, 스스로 날아올라 살아 갈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맛 볼 '자유'이기 때문이다.

“너희 실력이면 지금 당장 떠나도 괜찮을 것 같다. 저녁밥 든든히 먹고 나서 어디로든 날아가렴. 멀리멀리 날아가렴......”

그리하여 결국 날 고양이 남매들은 엄마를 떠나 한적한 농장에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 인간 친구를 만나 우정도 나누고 먹을 것도 얻는데,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막내 검정 날 고양이 제인만이 농장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태어나고 자란 도시 뒷골목 속에서의 생활이 자기 자신에게는 더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 놓고 떠나는 제인은 엄마에게 쫓기듯 독립한 다른 고양이들의 모습과 또 다르다. 거침없이 자신의 자유를 실험하는 날카로움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날카로운 자유에는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공존하게 된다.

이제 철저히 혼자가 된 제인은 새로운 삶을 함께 꾸릴 친구를 찾아 나선다. 우연히 알게 된 한 남자를 친구로 여기고 그가 제공해 주는 친절을 믿고 따랐지만, 그 남자의 친절은 제인이 신비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인은 그 남자로 인해 텔레비전에 출연하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려야 했다.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제인은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았고, 결국 밖으로 살금살금 기어 나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나는 자유롭다. 나, 나, 나는 자유롭다!”

작가는 거침없이 자신의 자유를 실험하는 제인을 응원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는 위험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는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도처에 위험이 널려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온몸으로 터득할 기회를 가진다면 누군가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얻은 지혜를 통해 "낮에는 절대 날아다니지 말 것, 모르는 집에 함부로 날아 들어가지 말 것"이라는 삶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야 뒷골목 고양이! 나는야 신비의 소녀, 도시의 밤하늘을 날아가는 검은 그림자! 나한테 까불지 마라! 나는 제인, 나는 자유롭다! 나, 나, 나는 자유롭다!”

제인의 노래가 도시의 어두운 밤길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자유롭다는 것은 때론 위험하고 때론 두려운 것이지만, 밤하늘을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착하게 순응할 것을 강요당하며 어른들이 만든 틀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제인의 두 날개는 꿈처럼 여겨질지 모르겠다. '미래를 위한 준비', '성공과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뒷골목을 활보하는 제인의 두 날개는 두려운 반항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어른의 두려움에 갇혀 자유로운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진정한 '성장'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자유를 가득 품은 제인의 노래와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진정한 삶이 어린이의 삶 속에서도 흐를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선주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입니다.
인권오름 제 238 호 [기사입력] 2011년 02월 16일 20: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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