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잠자던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을 깨우다

탈시설 소송, 그 소중한 승리

임성택
print
어느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2003년 7월 사회복지사업법에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제도’가 도입된 뒤 처음이며, 탈시설 자립생활이 소송으로 청구되어 승소한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복지가 여야를 넘어 국민적 화두가 되고 있는 시기에 복지국가를 향한 역사적이고 중요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기나긴 여정 - 판결에 이르기까지

황인현 씨는 어릴 때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 후 걷지도 못하고 누워서만 지냈다. 형제들이 학교에 간 뒤에는 혼자서 집을 지켜야 했다. 매일 나가고 싶었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삼육재활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게 되었다. 엄마가 다 큰 자식을 업고 재활원까지 다녔다. 버스를 잘 태워주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집에만 있다가 외출을 하니까, 세상 구경을 할 수 있으니까, 친구도 사귈 수 있으니까 좋았다. 그런데 재활원에는 열여덟 살이 넘은 뒤에는 다닐 수가 없어서 스물한 살 때부터 사회복지시설에 들어가야 했다. 집에 돌볼 사람도 없었고,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황인현 씨는 그 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시설에서만 살았다.

싸구려 체육복으로 사계절을 지냈고, 빵과 우유가 간식으로 나오다가 안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시설장이 국가의 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황인현 씨는 시설 비리에 맞서 싸우는데 참여했고, 점차 세상에 눈을 떴다. 그래서 시설을 나올 생각을 했다. 황인현 씨가 시설을 나오려는 이유는 시설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다. 시설에서의 삶은 개인이 주체가 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삶이라 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은 시설도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저 보호를 받는 대상자 중 하나다. 지역사회와 분리된 채 단체생활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아무런 꿈도 가질 수 없고, 그저 시설에서 보호를 받다가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시설 생활인들의 삶이다. 황인현 씨는 시설에서 나오기 위해 사회복지사업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양천구청장에게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을 하였다(2009. 12. 16). 그러나 양천구청장은 그의 신청을 거부했다(2010. 5. 26). 황인현 씨는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월 소송에서 승소했다(서울행정법원 제1부 2010년 1월 28일 선고 2010구합 28434 사건).

위 사진: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 기자회견(2009.12.16)에서 변경신청서에 도장을 찍는 소송 당사자들. 왼쪽부터 윤국진, 박현, 황인현 (출처: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황인현 씨와 같은 시기에 음성 꽃동네를 나오기 위해 같은 취지의 소송을 했던 박현 씨, 윤국진 씨도 음성군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청주지방법원은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청주지방법원 행정부 20010년 9월 30일 선고 2010구합 691 사건). 당시 청주지방법원은 “음성군수의 거부처분이 절차법상, 실체법상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법원은 대도시에서 자립생활을 하기를 희망하는 원고들을 위해 음성군수가 서울 등 대도시의 서비스를 조사하고 연계해줄 의무가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서울행정법원은 이와는 달리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양천구청장의 거부처분은 적법한 복지요구 조사를 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가 있고, 나아가 재량권의 남용에 해당하는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렇게 두 판결이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엇갈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엇갈린 판결 - 소송사건의 쟁점과 판단

쟁점 1 : 누가 복지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가?

우선 누가 사회복지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양천구청장은 황인현 씨가 사회복지시설에 자의로 입소했다는 것을 이유로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신청을 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양천구청장은 황인현 씨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적합 결정을 내렸으나,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은 수급권자만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임을 인정한 것이다.

쟁점 2 : 행정청의 거부가 절차상 위법한가?

다음으로 행정청이 복지요구 조사를 어디까지 하여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청주지방법원은 “신청인이 법이 허용한 한계를 넘는 신청을 한 경우에는 복지요구 조사를 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더욱이 복지요구 조사를 하더라도 구체적인 상황과 형편에 맞춰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방법으로 시행하면 되고, 이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복지요구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이와는 달리 행정청이 성의를 다해 충분한 조사를 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특히 서울행정법원은 사회복지행정에서 급부의 내용에 대해서는 행정청이 광범위한 재량을 갖는다고 해도, 절차에 관해서는 실질적이고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사법부의 중요한 기능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보호에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행정의 절차에 관한 사법심사는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신청을 받은 행정청이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하는 서비스까지 조사하여 연계하여 줄 의무가 있는지 논란이 되었다. 음성군수 사건에서 법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양천구청 사건에서 법원은 적어도 상급 자치단체가 관할하는 서비스까지 조사하여야 하여야 하고, 신청인이 주소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의 복지서비스를 제공받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전국 단위의 조사 의무도 있다고 판단하였다. 서울행정법원은 △사회복지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 업무를 행함에 있어 최대로 봉사할 의무가 있고, △사회복지사업법은 행정청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이고 특히 원고와 같은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활동능력이 매우 제한되므로 특히 원스톱 서비스가 제공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논거로 들었다.

위 사진: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의 내용과 의의를 설명하는 임성택 변호사 (출처: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쟁점 3 : 행정청의 거부가 실체법상 위법한가?

양천구청 사건에서 법원은 거부 처분의 실체적 위법성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양천구청이 황인현 씨에게 제공할 수 있는 주거지원시설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은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에 해당하여 실체적으로 보아도 위법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양천구청 관내에는 11개의 공동생활가정이 있고, 서울시는 체험홈뿐 아니라 자립생활가정 등 탈시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양천구청은 서울시 관내는 물론이고 양천구청 관내에 있는 장애인 주거지원 서비스에 대해서도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다만 이 판결은 현행 법률상 탈시설 지원을 위한 피고의 의무가 어디까지인지, 특히 주거지원의무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한편 음성군수 사건에서 청주지방법원은 관련 법령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원칙으로 국가 등에게 필요한 정책을 강구하고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 주거지원의무가 도출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사회복지에 관한 사법심사 가능성 확대

그동안 법원은 사회복지가 비록 국가의 의무라고 하더라도, 예산, 인력 등의 제한으로 국가에게는 광범위한 재량권이 있다고 판단하면서 사회복지행정에 관하여 사법적 개입을 자제해왔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사법부의 중요한 기능이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있음을 전제로 사회보장행정의 절차에 관해서 엄격한 사법심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사회복지가 더 이상 국가의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며,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에 관한 절차가 적법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사법부가 엄격하게 사법심사를 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2003년 7월 사회복지사업법 전면 개정에 의해 도입되었지만 오로지 법전 속에서만 잠자던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 제도”를 살려낸, 사회복지역사상 매우 큰 의미를 갖는 판결이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이 있으면 관할 행정청이 최선을 다해 당사자의 복지요구 및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조사한 뒤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복지 전달체계에 관해서도 의미 있는 판결이라 할 것이다.

시설중심에서 탈시설-자립생활로 복지서비스의 패러다임 전환

이번 사건은 장애 등으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역사회로부터 격리당한 채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요구한 첫 소송이다. 비록 절차적 하자를 주된 이유로 피고(양천구청)의 처분이 취소되었지만, 이번 판결이 우리나라의 복지서비스가 시설중심에서 탈시설-자립생활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음성군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박현 씨, 윤국진 씨는 한 단체의 도움을 받아 시설(꽃동네)을 나왔다.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이들은 항소를 포기하였다. 양천구청 사건은 양천구청이 항소를 포기하였다. 결국 엇갈린 두 판결은 1심에서 확정되었다. 양천구청은 판결에 따라서 기존의 처분을 취소하고 새로운 처분을 내려야 한다. 그 처분의 내용이 과연 당사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만일 당사자의 요구를 다시 거절한다면 새로운 행정소송이 제기될지도 모른다. 소송은 확정되었지만, 탈시설을 위한 당사자들의 시도는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논란이 많다. 적어도 우리사회의 복지수준이 아직 낮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은 다툼이 없는 것 아닐까? 장애인과 노인, 아동들을 이 사회가 어떻게 품고 있는지는 그 사회의 복지수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가장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사회적 약자이며, 이들에 대한 복지정책은 그 사회의 양식과 수준을 보여준다.

이웃과 격리되어 수십 명, 수백 명 나아가 수천 명을 수용한 시설에서 사는 것보다는 지역사회에서 비록 단칸방이라도 자립생활을 하고 싶다는 이들의 바람이 지나친 것일까? 시설에 살고 있는 당사자들이 지역사회에 살겠다는 선언은 한국 사회복지사에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동네에서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끌고 돌아다니고, 노인이 함께 사는 공동가정을 이웃으로 만나기를 희망한다. 그들을 시골구석에 격리시키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돕고 살아가길 희망한다. 이번 판결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국민의 보편적 권리 -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

사회복지사업법은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초 자치단체에 복지서비스 제공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사자의 신청이 있으면 시장․,군수․구청장은 당자자의 요구와 상황을 고려하여 개별화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즉 ①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자가 관할 기관에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을 신청하면(사회복지사업법 33조2), ② 관할 기관은 당사자의 복지요구를 자세히 조사한 후(사회복지사업법 33조3), ③ 복지서비스 제공 여부와 그 유형을 결정하고(사회복지사업법 33조4), ④ 대상자별 복지서비스 제공계획(보호계획)을 작성하며(사회복지사업법 33조5), ⑤ 그 보호계획에 따라 보호를 실시(사회복지사업법 33조6)해야 한다. 황인현 씨는 이 규정을 근거로,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주거지원서비스, 활동보조서비스, 초기정착금 및 생계비 지원서비스 등을 신청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임성택 님은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변호사입니다.
인권오름 제 241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08일 17:41:30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