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에서 본 청소년운동의 현재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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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집회 준비 과정은 좀 이상하다. 다른 집회들을 준비하는 과정과 비교해보면 그 우선순위가 전혀 다르다. 청소년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돈을 들이고 공을 들이는 부분은 바로 홍보이다. 충분한 홍보를 통해 조직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참여하도록 하지 않은 채 집회를 하면 50명도 채 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나 여성운동 등을 비롯한 여러 운동들의 집회 준비 과정에서 홍보가 ‘이미 어느 정도 조직화된’ 사람들에게 집회를 확실히 주지시키고 참가를 독려하기 위한 것인 반면, 청소년 집회에서 ‘홍보’는 사실 집회 자체의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청소년운동의 씁쓸한 조직화 현황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19일에 있었던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3월 2일, 초중고등학교들이 개학하자마자 등하교길 홍보를 시작했다. 매일 매일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 일정에 참여하는 와중에도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 쪼개고 만들어가며 등하교길 홍보와 주말 번화가 홍보로 전단지만 대략 1만5천 장을 배포했다. 웹자보도, 퍼나를 만하고 퍼나를 수 있는 사이트에는 거의 모두 퍼날랐다.

전단지를 받아본 청소년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냥 읽지도 않고 버리는 경우도 있고, 바로 주머니에 넣는 경우, 묵묵히 읽는 경우도 있다. 이번 집회의 경우에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 폐지”라는 주장을 전면에 배치해서 그런지 “야 이거 쩐다!”, “이거 꼭 해야 돼!”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았다. 전단지를 받아들고 “꼭 가겠다”라고 말한 청소년 분들 중에 반만 왔어도 집회가 참 대박이 났을 텐데……. 1만 5천 장을 청소년들에게 배포했는데 그 전단지를 받고 온 청소년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으니, 전단지를 받고서 오는 청소년들의 비율은 0.1%도 안 되는 셈이다. 쩝. 일단은 학교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그런 주장을 많은 청소년들이 접하는 계기가 된 것 자체에 만족해야 할까?


청소년운동의 현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이번 “실종신고” 집회는 그토록 많은 품을 들여 홍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집회 참가자가 100여 명에 그쳤으며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이미 아수나로나 다른 단체 등에서 활동을 하던 청소년들이었다. 집회 분위기는 좋았지만 과거의 청소년 거리 집회들처럼 미조직된 청소년들 상당수가 나오는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작년 일제고사 반대 집회 등에서부터 확인되어왔던 이런 모습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먼저 첫째, 2000년대 초중반, 중고등학생들이 미군장갑차 살인사건을 비롯하여 내신등급제와 학생인권 등을 가지고 곧잘 거리로 나오던 시기에는 그나마 미조직된 학생들이 거리 집회에 참가하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친 이후의 변화인지 아니면 교육․사회 환경의 변화인지 혹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 탓인지, 미조직된 학생들이 친구들과 같이 옹기종기 집회에 참가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아니 2008년까지만 해도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온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호들갑을 떨던 언론들 역시 이제는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만 가지고는 별로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시큰둥한 모습이다. 이번 “실종신고” 집회의 경우에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 폐지”,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등 논쟁적인 주장들을 전면에 내세웠는데도 그렇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른바 ‘진보교육감’ 등이 학생인권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실과, 작년 조중동에서 아수나로 등을 대대적으로 다룬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집회는 청소년운동이 앞으로 조직력을 키우는 데 더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교훈을 준다. 집회가 끝난 뒤, 아수나로 회원들끼리 김치찌개 집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서 나는 식당을 가득 채운 30여 명의 아수나로 회원들의 모습을 보며 몇 년 전만 해도 10명 남짓하던 아수나로가 이렇게 커졌나 하며 뿌듯해했고, 계산을 하며 밥값에 절망했고, 마지막으로 “조직된 사람들로 200명을 채울 자신이 없으면 앞으론 단순 홍보에 의존한 거리 집회는 하지 말아야겠다. 밥값으로 단체가 파산하더라도.”라는 다짐을 했더랬다.

실종신고, 그 후…

이번에 청소년 집회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의 요구 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시험 폐지)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학력, 학벌 폐지, 사람다운 생활 보장)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교육예산, 복지 확대)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학교 민주화, 학교운영․교육정책 참여)
◑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인권 보장)

이런 주장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우려도 있을 법하고, 또 실제로도 그러한 의견이 인터넷 등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주장은 오히려 ‘생활 밀착형’ 주장이 된다. 예컨대 시험 폐지의 경우에, 대다수 중고등학생들의 경우에는 “전집형 일제고사를 표집형으로”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 같은 복잡한 정책적 논의보다는 “모든 시험 폐지”와 같은 주장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인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일제고사든 모의고사든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자신들에게 점수와 등수를 매기고 서열화하기 위한 시험 자체가 스트레스이다. 학생들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줄 세우고 점수를 내기 위해 이루어지는 시험, 그리고 그 시험을 위한 교육 자체가 문제이고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입시 제도를 가지고 깔짝깔짝 복잡하게 장난치는 것보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가 더 현실적인 대안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런 주장들 중 대다수는 청소년운동뿐 아니라 다른 여러 운동과 정치 세력들의 것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는 복지 사회 건설 주장,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의 변형이다. 교육예산을 GDP 대비 6%까지는 올려야 한다는 것은 십여 년 전부터 나온 교육운동의 요구였다. 시험 폐지의 경우에도 일제고사나 교원평가제 반대 투쟁을 거치면서 “평가가 아닌 진단을”, “평가하고 서열화하기 위한 시험을 바꿔야 한다.”와 같은 형태의 주장으로 여러 토론회와 포럼에서 교육운동 주체들(주로 교사, 교수, 학부모들)이 제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회운동의 주체들이,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운동 주체들은 자기들끼리 하는 토론회나 포럼에서 이런 주장을 정리해서 내거나 아니면 정치세력에 정책으로 제안하기만 하고, 그런 주장들을 대중화하고 행동으로 풀어내는 데는 게으르다. 오랜 시간 대중적․지역적인 운동을 해온 것은 무상급식을 비롯하여 몇 가지뿐이고, 그나마 이 무상급식의 경우에도 사람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적 논리와 제대로 된 의미는 충분히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적 운동이 “대안 없는 반대”만 한다는 식의 비판은 잘못되었다. 적어도 교육운동에서는, 대안과 정책을 만들고 공부하고 토론하기만 하고 운동과 실천을 하지 않고 있는 문제가 더 크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아수나로는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이 주장들을 내세워서 청소년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조직화하고, 행동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작정이다. 그런 마음으로 올해 2월에 회원들이 모여 두 차례의 토론을 거쳐 주장의 내용과 슬로건을 확정했고, 이 주장들은 앞으로 적어도 1, 2년 동안 아수나로의 학생인권과 교육에 관한 활동 전반을 관통하는 슬로건이 될 것이다. 이번 “실종신고” 집회에서는 말 그대로 “이런 것들이 우리 교육에는 없다. 학생들에게는 없다.”라고 “실종신고”를 한 셈이다. 이제 사라진 제대로 된 교육, 학생인권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그걸 같이 할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일, 그게 앞으로 우리의 활동이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43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23일 12: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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