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의 인권이야기] 교회 전단지와 유흥업소 명함 사이의 현실

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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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첫 방학, 나는 호기롭게 여행을 떠났다. 경부선을 타고 혼자 부산을 돌아다닌 후 대전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갈 때는 또 주제에 밤기차의 낭만을 느껴 본답시고 신새벽에 대전역에 도착하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밤기차의 낭만은 개뿔, 차창 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몸은 피곤하고, 대전역 광장은 아무것도 없이 휑했다. 순간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한 할머니 하시는 말씀, “학생! 여기 방 오천 원인데! 자고갈래?” “……”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계획대로 주변 피시방에 들어가 대전역 주변의 찜질방을 검색하고 나왔다. 그때 나를 다시 본 할머니!

“학생~~! 아가씨도 있어~~!”

나는 기겁하여 야간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의 찜질방을 찾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보다도 택시를 잡아 탄 게 더 무서운 상황인데. 그때는 이 할머니가 나를 어디로 끌고 가서 원양어선에 팔아먹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누가 들어도 너무 싼 오천 원짜리 방과 ‘아가씨도 있다’라는 말이 더 나를 무섭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전역 앞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 할머니의 눈에 나는 어떻게 보인 것일까? 그냥 조금 비틀거리는 술취한 객으로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혈기 왕성한(?) 스무 살의 장애청년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오천 원짜리?

위 사진:[그림: 윤필]

조제와 츠네오, 공주와 종두, 그리고 핑크팰리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와 츠네오의 만남. ‘오아시스’에서의 공주와 종두의 만남은 모두 ‘우연’에서 시작되고, 그 ‘우연’을 계속 이어 가게 되는 필연적 우연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물론 공주와 종두가 우연하게 마주친 듯 보이지만 종두가 공주의 집에 무단 침입해 성적 폭력으로 관계가 시작되는 점은 불편하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가 종두에게 전화를 하는 모습은 공감되지 않았다. 또한 공주가 갑자기 비장애인으로 돌변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에서 나는 불편했다. 이것들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나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느껴지지 않는지?

그러면 장애인의 삶 속에 실제로 ‘우연’이 존재하는 것인가? 장애의 영역은 다양하고, 장애인이 스스로의 매력을 발산하는 방법 역시 다양 하며, 사람의 매력을 느끼는 부분도 모두 다양하지만 적어도 ‘우연’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사회 활동이 일어나야 한다. 사회 활동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거나 관계 맺기가 어려운 ‘중증’ 장애인의 경우 이 ‘우연’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이다.

혹여 ‘우연’이 일어난 후에는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노력과 책임이 필요하다. 츠네오와 종두 모두 노력 한다. 공주와 조제도 노력한다. 일반적으로 노력은 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그 노력의 결과와, 그리고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모두 다른 상황에서 노력을 개인의 문제로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관계에서 필요한 노력 역시 개인의 영역이긴 하지만 그 환경이 형성되는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남지 않는다. 또한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책임들도 온전히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지 않다.

한편 나는 ‘핑크 팰리스’라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일면 공감 가는 면이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40대의 장애인과 나는 차이가 있고, 그 차이는 현실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것 같은 기차역 주변의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누군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차이인가?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 차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성욕을 해결 할 수 없는 모든 이들과 그 해결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성 행위가 감정과 분리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성욕이 성행위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성매매’나 ‘섹스자원봉사제도’로 성적 욕망을 해결하는 노력에 대해 박수를 ‘열심히’ 쳐줄 수만은 없다.

교회 전단지와 유흥업소 명함

대학 시절이나 지금도 가끔 친구 혹은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지느라 강남역 등의 밤거리를 지날 때면 꼭 있는 사람들이 유흥업소 호객꾼 들이다. 이들은 나에게 유흥업소 명함을 한 번도 권한 적이 없다. 현실이다. 또한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또 하나의 ‘호객꾼(나는 이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들은 교회의 전단지를 돌리시는 분들인데, 이분들은 어찌나 나를 좋아하는지……. 현실이다. 지하철역 앞에서 사무용품을 파는 회사 직원들이 신제품을 무료로 나눠주는데 나에게는 건네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 그들 손에 여전히 신제품 샘플이 들려 있는 것을 보지만 콧방귀 한번 뀌고 나는 가던 길을 간다. 그것들을 나의 뒤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이 느껴진다. 현실이다.

올해 들어 많은 양의 청첩장을 받고 있다. 물론 학교를 다닐 때도 결혼은 주위에 흔히 있던 일이지만, 이제 나와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이 결혼을 한다는 게 조금은 새롭다. 그동안 연락 없었던 녀석들이 갑자기 연락이 오면 이제 ‘너 결혼 하는구나!’라고 먼저 말을 던지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다양한 곳에서 결혼을 하는 이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것 먹고, 참석 확인 촬영 한번 하고 오는 것이 요즈음 나의 한 일상이 되었다. 재미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선후배들은 처음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내가 직장이 있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빨리 아무나 만나 결혼을 하라고 아우성들이다. 또 다른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현실들이 때로는 아주 불편하다.
나는 교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연하면서도 놀라운 가슴 떨림이 필요하다. 과연?
덧붙이는 글
세주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53 호 [기사입력] 2011년 06월 01일 11: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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