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의 인권이야기]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다르게 산다는 것의 비극, 나답게 산다는 것의 즐거움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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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남들과 다르지 않게 키울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커서 ‘왜 다른 애들이 다 배운 피아노 한번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는 소리를 할까봐 악착같이 벌어서 악착같이 학원에 보낸다고들 한다. 아이들은 정말로 통조림처럼 똑같은 삶을 경험하길 원하는 걸까.

나의 현재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혹은 ‘아빠처럼 살진 않겠어’로부터 비롯됐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모든 갈등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마 나 말고 다른 이들도 그 어느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일기장에 이렇게 휘갈겼으리라. ‘난 절대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유 불문 졸업장을 받아야 했다. 대학 진학을 원하지 않았지만 대학에 입학해야 했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생기자 무조건 취업을 해야 했다.

위 사진:[그림: 윤필]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에 의해 대신 선택 된 삶은 고통스러웠다. 나는 매일 이유 없이 화가 났고 대상없는 분노심에 불타올랐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으므로 최선을 다해서 살지 않았다. 대충했고 요령을 익혔고 그 시절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그래서 어떤 시절이라도 오기만을 바랬다. 견디다 못한 어느 날 드디어 나는 내 마음대로 선택하고 정당하게 책임지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삶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내 주머니에 라면 하나 살 돈조차 없는 현실보다 오늘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더 불안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무서웠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우리는 전부 십대와 이십대 초반을 고스란히 타인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데 보냈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는 안됐고 어른이 되는 데는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었다. 멋지게 살겠다던 주변의 그 많은 언니오빠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볼 수 없어서 나는 그냥 혼자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갖은 직업들의 쓴맛과 단맛을 다 맛보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내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지금 시각장애인과 저시력인을 위한 책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에서 편집 일을 하고 있다. 회사생활은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녹록치 않지만 가끔 이용자들과 직접 만나 우리가 만든 책이 그들에게 책 이상의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될 때의 짜릿함은 나머지 수고로움을 전부 잊게 만든다.

‘왜 남들처럼……’

다르게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어지간히 독해야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취급된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 대해, 사회복지 분야에 사명감이 불타올라 이 일이 아니면 죽음을 원하는 잔다르크 같은 이미지를 연상한다. ‘(그 나이에, 그 적은 월급을 받으며, 그런 일을 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들 한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소박하며 훨씬 더 복잡다단한 이유로 오랜 고민 끝에 이 직업을 선택했다. 단순히 연봉이나 모든 걸 희생해야만 하는 거창한 명분으로 택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삶은 가족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다. 아버지는 안부전화를 할 때 ‘한 달에 얼마 받고 일하냐’는 질문을 빼놓지 않고 하신다. (스무 살 이후로 용돈 좀 달라고 손 벌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내 통장의 잔고며 나의 월급명세서 따위를 만천하에 공개해야 하며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에 관계없이 벌이의 크기가 내 효심의 크기와 비교당해야만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왜 남들처럼 ‘벌지 않느냐’, 왜 남들처럼 때맞춰 ‘시집가지 않느냐’, ‘그렇게 산다고 네가 특별해질 것 같냐’며 자존감을 깔아뭉갠다.

그래도 마음이 잘 맞는다고 믿었던 나의 애인은 결혼 얘기를 시작하면 결국 ‘왜 그렇게 어렵게만 생각하냐’며 한숨을 쉬고 만다. 나는 ‘그러면 당신은 왜 그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하냐’고 쏘아주지 못해 밤새 분해서 잠을 설친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어서 위인전기에 실릴만한 기이한 삶을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몇 가지, 내가 옳다고 믿거나 혹은 내 가치관에 의해서 스스로 선택한 소소한 결정을 실천하겠다는 것뿐인데도 이 정도다. 나는 특별한 인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을 원한다.

진짜배기 해피엔딩을 바라며

대부분의 드라마 속에서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에서 시작된 갈등이 ‘엄마처럼 살기 싫었어’라고 울부짖으며 극에 달하고, 결국 엄마처럼 살게 된 주인공이 엄마를 이해하며 끝난다. 나는 가끔 그 뒷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서로를 이해한 뒤 우리만의 ‘살기’를 시작하는 것, 각자 다른 만듦새로 나이를 먹어 가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는 별의별 방법을 다 시연해 보이는 것, 각양각색 서로 다른 삶을 세상에 관철시키는 것. 그게 바로 진짜배기 해피엔딩이다.
덧붙이는 글
박혜경 님은 사회적기업에서 독서장애인을 위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262 호 [기사입력] 2011년 08월 01일 16: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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