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인권이야기] 맥주 캔 약병 뚜껑, 종이 핸드볼 공, 뚜껑 없는 변기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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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투쟁을 하고 있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돈이 없어 공부 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약을 지켜라!’를 주장하는 투쟁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에 대하여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을 위한 공약일 뿐 현실가능성이 없다는 뻔뻔스런 답을 한다. 말의 약속을 이렇게 우습게 여기는 정치인이 있을까?

그리고 이어 8월에는 학교 무상급식으로 인해 큰 소동이 있었다. 서울시의회에서 통과시킨 초등학교 고학년 무상급식지원을 오세훈 시장이 거부하면서 주민투표까지 한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시장 직을 걸고서라도 막겠다고 나섰고 결국 주민투표가 결정됐다. 그때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이 대거 펼침막을 내걸었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것은 ‘무상급식 세금폭탄으로 돌아온다’는 문구와 ‘무상급식 포퓰리즘으로 선진국 문 앞에서 멈춘다’는 내용이다. 아이들 밥 좋게 먹이자는 것을 두고 세상 끝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너무도 천박한 표현을 써가며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지금 우리 사회가 과연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인지 회의가 들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 2만 불 시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1위를 자랑하는 저들의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아이들 무상으로 밥 먹이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선진국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됐다.

위 사진:[그림: 윤필]

쿠바에서 만난 종이 핸드볼 공

무상급식 투표 과정과 반값 등록금 투쟁을 보면서 지난 4월말 쿠바에서 본,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얼굴들이 생각났다. 우연한 기회에 쿠바에 가게 되었고, 약 2주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1차 진료소인 가정의와 초등학교를 방문했던 일과 엄청난 매연을 뿜으며 거리를 달리는 옛날 영화에서나 봄직한 낡은 자동차, 뚜껑 없는 양변기다.

쿠바는 미국의 봉쇄 정책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적인 수준을 비교한다면 한국보다 훨씬 뒤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100% 책임지고 있었다. 아바나 시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모든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있었고, 한 반에 약 15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방문한 사람들이 신기한지 연신 쳐다보며 웃음을 짓는다. 함께 간 일행들과 교장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교실을 돌아보고 마지막에 체육교사가 있는 방으로 가게 됐다. 체육선생님께 아이들하고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냐 물었더니 야구도 하고 다양한 구기 종목들과 체력을 기를 수 있는 놀이 등을 진행한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체육시간에 사용하고 있는 기구를 모아놓은 곳의 문을 열어서 보여준다.


거기엔 핸드볼 공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오재미가 그득하게 모아져 있었다. 오재미를 한 개 꺼내 보니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오재미와 똑같았다. 내가 신기해하며 보고 있으니까 선생님께서 콩을 넣어 직접 만들었다고 하신다. 속으로 ‘선생님들 힘드시겠네’ 생각하며 이번엔 핸드볼 공을 꺼내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그 공은 진짜 고무공이 아니라 신문으로 만든 공이었다. 물자가 부족해서 선생님들이 손수 공을 만드신 거다. 신문을 뭉쳐서 둥글게 만든 후 핸드볼공하고 똑같은 색을 칠하고 줄을 긋고 투명테이프로 감아놓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학년 교실에 가보니 아이들의 장난감, 수업에 필요한 소품들을 모두 선생님들이 손수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교육과 의료, 그들의 자부심

이렇게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교복도 지원한다고 한다.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느냐는 질문에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고 했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종이로 만든 핸드볼 공을 사진기로 찍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혹여 선생님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포기했다. 그런데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둘러보며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나라가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에 차 있었다. 그들에게 물자부족은 하등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교육은 물자나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가정의를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탄자스의 기론’이란 마을에 있는 가정의를 방문했는데, 우리에게 의료체계를 설명하는 의사선생님의 모습은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팍 다가왔다. 의사 한 명과 간호사 두 명이 담당하는 인원은 약 900명, 가구 수로는 150가구다. 아파서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지만 대부분 많은 시간은 각 가정을 방문해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활동을 한다고 했다. 설명을 들으며 진료소와 처치실을 돌아봤는데 이곳에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치실에 있는 약병 뚜껑이 일반적 플라스틱 뚜껑이 아니라 맥주 캔 밑동을 잘라 만든 것이었다. 안내하던 간호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우리에게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자부심 넘치는 모습으로 설명 하던 의사의 모습과 맥주 캔 밑동 약병 뚜껑이 겹쳐지면서 그냥 느낌으로 알 것 같았다. ‘심각한 물자부족을 겪고 있지만, 우린 그래도 당당하게 무상의료를 100% 실현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이처럼 물자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가난하지만 돈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그런 일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어도 교육과 의료는 국가가 책임집니다.’

한 사회의 복지와 삶의 행복은

가정의와 학교를 돌아보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은 아무리 어려워도 제대로 지키고, 소비는 꼭 필요한 만큼만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쿠바 사람들. 우리는 이것이 뒤바뀌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정의 약병 뚜껑도, 학교의 핸드볼공도 그렇고 우리가 머물던 캠프도 많이 낡아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았다. 특히 화장실을 보고 놀랐는데, 양변기 뚜껑이 없다. 양변기 뚜껑이 없다고 양변기 역할을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대한 물자를 아끼려고 하는 쿠바인들의 모습이 역력히 묻어난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한 사회의 복지와 삶의 행복은 결국 돈이 아니라 사람의 아름다운 공동체적 의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덧붙이는 글
김소연 님은 금속노조 기륭분회 분회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267 호 [기사입력] 2011년 09월 20일 14: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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