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분노의 도가니를 풀기 위한 국회의 몫

공공성을 높이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필요

임성택
print

도가니를 소설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읽는 내내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렇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픽션(fiction)이라 여겼다. 소설을 읽는 동안 속상하고, 화가 치밀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영화를 볼 때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의 판결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보면서 난 어른으로, 남자로, 아버지로, 변호사로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설과 영화 속의 도가니, 현실의 도가니

청각장애 특수학교와 사회복지시설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법인 이사장의 장남인 교장이, 차남인 행정실장이 장애아동에게 저지른 처참한 성적 유린. 복지시설의 생활재활교사가 자신의 방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추행했고, 특수학교 선생은 어린 남자아이를 강간했다. 수화를 모르는 선생들이 구화를 모르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최근 폭로된 바에 따르면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암매장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황당하고, 끔찍한 인권침해가 가능했던 것은 ‘시설’이 우리사회에서 ‘치외법권’에 속한 탓이다. 시설을 치외법권의 영역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이다. 도가니 열풍이 그저 열풍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시설을 유지, 운영하면서 이익을 챙기고 있는 ‘카르텔’ 구조를 해체하고 시설이 공공적으로 투명하게 운영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이미 국회에는 한나라당 진수희의원안, 민주당 박은수의원안,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안으로 공익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광주인화학교사건 해결과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위한 도가니 대책위원회(아래 도가니대책위원회)’도 인권친화적인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 논의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설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나아가 장애인, 아동, 노인 등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사회복지법인의 근본적 변화, 공공성․투명성 강화

먼저,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강화를 높이도록 사회복지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서비스라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인데다, 대부분의 재정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고 있다. 내가 설립한 사적 단체인데, 왜 내 맘대로 못하느냐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공익이사제’ 도입이 시급하다. 사립학교도 개방형 이사제도가 있고, 심지어 주식회사조차 사외이사를 통해 투명성을 높이는 시대이다. 대부분 재정을 국가에 의존하는 사회복지법인의 경우 공익이사가 임명되는 것은 당연하다. 도가니대책위원회는 사회복지법인의 이사수를 5인 이상에서 7인 이상으로 늘리고, 그 중 3분의 1 이상을 공익이사로 임명하도록 하였다.

그밖에 이사의 자격도 강화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정부가 감사를 추천하는 제도도 제안하고 있다. 즉 사회복지법인이 업무와 재산관리를 하면서 위법행위를 저질렀을 때 보건복지부장관이 감사 중 1인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야 구분 없이 공익이사제 도입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사회복지법인 대표들은 10월 28일 ‘범사회복지 전진대회’를 열고 공익이사제 도입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사회주의적 사고로 특정 정파나 특정 정권에 의해 획일화된 가치관을 사회복지시설을 통해서 달성하려는 포퓰리즘적,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이들이 기득권을 순순히 내놓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시설이 ‘사익’을 챙기는 곳이 아니라는 국민의 인식은 올라갔다는 걸 알기 바란다.

탈시설과 자립생활

도가니 사건을 보면 ‘인화원’이라는 ‘시설’에 장애인들을 수용하고, 기숙 형태로 특수학교를 운영한 것이 문제의 출발이었다. 시설은 각종 인권유린의 주범이다. 물론 모든 시설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규모가 크고 외부의 감시와 관심이 차단된 조건에서 인권침해의 가능성은 높다. 장애 때문에,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가족의 버림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장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볼모로 배를 채우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안타깝고 슬픈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자기 방어가 취약한 사회적 약자를 폐쇄적인 공간에 대규모로 수용하는 한 인권침해와 비리 근절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나쁜 복지시설’에만 있지 않다. 장애인을, 노인을, 버림받은 아동을 지역사회와 분리하여, 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도록 하고, 오로지 보호의 대상으로만 살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이런 삶은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도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살면서 친구도 사귀고, 재활이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러한 자립생활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존엄한 삶이 아닐까? 따라서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장애인들을 집단으로 수용하는 시설정책이 유지되는 한 제2, 제3의 도가니 사건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의 권리 강화

또한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양질의 사회복지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사업법에 관련 조항이 있으나, 법전 속에 잠자고 있었다. 여전히 복지는 국가의 시혜적 조치의 대상이지, 국민의 권리로 인식되지 못했다. 장애인, 노인, 아동 등은 ‘보호의 대상’이지, ‘당당한 시민’이 아니었다.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서비스 센터를 시군구 단위로 구성하고, 예산이 지원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제도가 널리 홍보되고 무엇보다 복지서비스는 시혜가 아닌 권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나아가 획일적 복지가 개인의 상황과 요구에 맞는 맞춤형 복지서비스가 제공될 필요가 있다.

당사자의 욕구를 자세히 조사하고, 당사자와 친족ㆍ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여 필요한 서비스의 내용과 유형을 정하며, 개별적인 상황과 욕구에 맞는 개별화된 계획을 세워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부족한 점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도가니 대책위원회 개정안에서는 사회복지서비스 신청절차에 여러 보완장치를 마련하였다. 실효성 있는 복지가 제공되기 위해 행정청이 법률에 근거를 둔 것에 제한하지 않고,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생활비, 주거, 의료 및 재활 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권리옹호시스템 도입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한국 인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인권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특성상 스스로 인권옹호나 권리구제를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과 맞물려 있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보호 및 옹호시스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실례로 아동복지법, 노인복지법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있다. 이 기관들은 아동 또는 노인에 대한 학대, 유기, 인권침해와 관련한 권리옹호기관이다. 도가니 대책위원회 개정안에서는 사회복지사업법에 장애인, 노인, 아동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옹호기관, 긴급전화 등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나아가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인 권리옹호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둘 것을 제안하였다.

장애인인권센터(아래 ‘인권센터’)는 시ㆍ군ㆍ구 단위로 전국에 설치하도록 하였다. 인권센터는 법률상 기관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하도록 하되, 민간에 위탁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는 그 특성상 장애에 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이 요구되며, 자발성과 헌신성이 필요하다. 인권센터는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또는 차별행위가 발생한 경우 현장 및 관련자들을 조사할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윌로브로크(Willowbrook)이라는 대형 복지시설의 문제가 뜨겁게 제기되었다. 이를 계기로 탈시설과 인권보장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지금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이 모두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도 의견을 마련하고 있다. 전에는 도저히 관철할 수 없었던 ‘공익이사제’를 모든 정당안에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영화로 인한 한 때의 흥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에서 정말 획기적인 변화로 이어지면 좋겠다. 그럼 좀 덜 부끄러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임성택 님은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입니다.
인권오름 제 273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2일 17:32:28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