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개발의 첫 단추] 모르는 게 약이다?

정보로부터 소외되는 주민들

강민수․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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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이 있는 서울시 중림동에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개발의 끝에 문제가 있다면 분명 시작부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발 초기 단계에서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경우는 많지 않다. 인권운동사랑방 ‘우리동네 소모임’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막개발의 첫 단추가 어떻게 끼워지는지 생생하게 전하려고 한다. 현장의 경험이 현실을 바꾸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동네를 개발한다면, 그 목적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바람직한 동네 개발은, 소유주뿐만 아니라 주거·상가 세입자 등 다양한 처지에 있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 방안은 동네 주민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토의해 나간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 방안을 먼저 마련하게 된다면, 동네 주민들이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다른 더 나은 선택지들은 없을지 논의를 거쳐, 동네 주민들이 원하는 개발 방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동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개발을 한다는데 뭘 한다는 건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로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도 이럴까?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제4조에 따르면, 개발은 시장․군수(서울의 경우 구청장)가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정비구역 지정을 신청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정비계획의 수립이나 정비구역의 지정은 광역 지자체가 세운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 기본계획’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기본계획은 14일 이상 주민에게 공람하도록 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계획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 구청이 동네에 대한 정비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주민들이 의견을 내려면 이러한 과정과 그 내용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로 주민들이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위 사진:2010년 7월, 갑자기 날아온 설문지.
서울시 중림동 주민 김영훈 씨(가명)는 중림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60여 년을 살아온 토박이다. 김 씨는 작년 7월 중구청으로부터 우편물을 하나 받았다. ‘중림 도시환경정비계획 의견수렴조사’라며 설문지가 들어 있는 우편물이었다. 김 씨는 뭔가 개발을 하려나 보다 짐작만 했고, “무시하고 찬성을 안 하다 보면 추진되지 않겠지 싶어” 설문에 응하지 않았다. 뒤늦게서야 찬성이 훨씬 많은 설문 결과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중구청이 개발을 무작정 추진할 것 같은 불안감에 구청에 전화를 했더니, 찬성하는 주민이 더 많다며 오히려 주민들을 위한 개발이라고 자신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씨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주민들은 어떤 개발을 하겠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막연하게 개발을 하는가 보다 예상할 뿐이다. 이 동네에 하려는 사업이 ‘역세권 시프트 사업’이라는 사실은 대강 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는 어렵다. 구청은 주민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설문지를 돌려 개발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물었지만 주민들은 ‘어떤 개발’에 대해 입장을 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구청의 설명과 정보의 왜곡

위 사진:2011년 3월 8일 열린 구청의 주민설명회.
중구청은 지난 3월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주민설명회는 중구 중림동과 인접한 마포구 아현동을 함께 개발하면 어떨지 주민 의견을 묻기 위한 설명회였다. 개발과 관련해 중구청이 주민들을 만나는 첫 자리라 100여 명의 주민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구청은 “역세권 시프트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주민들에게 유리한 사업”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주택재개발 사업 기준으로는 개발을 할 수 없지만 역세권 시프트 사업이 생겨서 “드디어 중림동도 개발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거나 왜곡하고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에 자신을 옥탑방에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라고 소개한 주민이 질문을 했다. 자신도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다. 구청 직원은 물론이라며 현재 거주하는 세입자들에게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청 직원은 임대아파트의 임대료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임대아파트는 보증금과 월 임대료, 관리비를 부담할 수 있어야 거주할 수 있다. 최근 건설되는 임대아파트들은 보증금이 5천만 원을 넘고 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치면 다달이 40만 원 가까운 지출을 해야 한다. 입주 자격은 주어지지만 주거비를 부담할 수 없어서 입주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여전히 많다. 구청 직원은 실제로 그 독거노인이 입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함으로써 사실상 거짓말을 한 셈이다.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는 분담금을 얼마나 내야 할지다. 이에 대해서도 구청은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이 단계에서 자세한 계획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분담금이 산정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구청은 “아직 모른다. 다만 주민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역세권 시프트 사업은 주민들에게 유리한 사업이다”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주민들에게 막연한 환상을 유포한다. 분담금이 정확히 산정되기 어렵더라도 구청은 비슷한 조건의 사례를 알려주는 등 주민들이 판단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며 하지 않을 뿐이다. 최근 서울시는 사업 초기 단계에서 개략적인 사업비와 추정 분담금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취지가 개발 관련 행정의 여러 단계에서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알리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원하는 정보를 얻기도 쉽지가 않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주민설명회가 끝난 후 설명할 때 사용했던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달라고 구청에 요구했다. 그러나 구청은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도 비공개 결정이 나왔다. 주민설명회 때 참석하지 못한 주민들도 자료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항의했더니 담당 직원은 “관심 있는 사람은 다 와서 봤다”며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평일 낮 시간에 주민설명회를 한 만큼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비공개 결정을 내릴 정도이니 구청이 정보를 알리는 데에 얼마나 소극적인지, 심지어 정보를 숨기는지 알 수 있다.

위 사진:인터넷에 이미 개발에 대한 정보가 상세하게 돌고 있는데 구청만은 정보를 줄 수 없다고 버틴다.

인권운동사랑방은 결국 정보공개에 대한 이의신청을 거쳐 행정심판까지 한 후 자료를 공개 받았다. 행정심판에서 구청은 ‘부동산 투기 등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하며 정보공개법이 보장한 비공개 사유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행정심판위원회는 주민설명회 때 이미 공개한 자료이니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공개 결정을 내렸다. 자료를 공개 받을 때까지 걸린 몇 달 동안, 그 자료가 다룬 아현동과의 통합 개발 건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가 끝나 버렸다. 주민들은 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박탈당한 것이다.

구청이 주민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자세가 없는 것도 문제다. 김 씨는 구청에 몇 차례 문의전화도 하고 담당 직원도 만나봤지만 도저히 의견을 듣지 않는 것 같아서, 지난 9월 중구청 홈페이지에 구청장과 만나고 싶다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도시관리과 과장의 답변은 늘 되풀이하는 형식적인 답변이었고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김 씨는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구청의 답변은 “도시관리과에 연락하시거나 구청에 방문하여 주시면 친절히 답변드리겠습니다.”라고 마무리되지만 연락하거나 방문했을 때 김 씨의 궁금증이 풀렸던 적은 없다. 특히 김 씨는 개발을 반대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어 구청과 이야기를 할 때 늘 튕겨 나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위 사진:김 씨의 민원에 대한 구청의 답변.

주민들이 가장 잘 알고 선택해야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어도 개발 사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도심 재개발 사업들을 다룬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은 용어나 개념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고 사업 절차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주민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만 주민들은 자신에게 닥친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강제퇴거를 막기 위한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가이드라인은 사업의 내용에 대해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며 주민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상담도 제공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영국은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상담센터를 설치해 운영하며, 일본은 주민조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동네 개발이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주민들이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의 제공이 필수적이다. 물론 충분히 알고 찬성하는 주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개발을 반대하는 동네 주민들이 있다는 사실은, 개발이 주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전히 논쟁적이라는 의미다. 동네 개발이 세입자를 포함한 모든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반대하는 주민들이 어떤 이유에서 반대하는지 묻고 더 나은 선택지가 없을지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덧붙이는 글
강민수․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7일 15: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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