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대학 거부’

김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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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한 것은 나의 선택,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대학거부선언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편에 앉은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며 머릿속으로 문득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진지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네가 대학에 가서 굳이 공부할 생각이 없고 그냥 지금 취직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꼭 대학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대학에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전혀 망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분명히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은 어떤 면에서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선택받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대학은 필수라고 여겼다. 나는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조차도 대학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는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막연히 대학생이 되면 자유로워지고 국․영․수 같은 주입식 교육, 혹은 죽도록 싫은 입시공부에서 해방될 것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예뻐지기 까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수준이었다.

반면 대학을 안 가서는 안 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졸이 받는 사회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 전문대를 졸업한 사촌이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결국에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요즘에는 대학 나와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 가방끈이 짧으면 사람은 좋아도 교양이 없다는 이야기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 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너의 삶은 너무 고될 거야. 이제까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참으며 살아왔니?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당연히 대학에 가야해. 대학에 가면 너의 꿈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잘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입을 선택했다. 고3인 내 눈에 질 높은 삶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 ‘대입’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그에 대한 나의 애증

(1)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1학년 때 가장 싫었던 것은 선배들이 강요하는 술과 노래였는데, 지금 가장 싫은 것은 선배가 된 내가 토익공부나 아르바이트로 바쁜 1학년 후배들을 불러 술 한 잔, 밥 한 끼 하기가 미안한 현실이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스펙을 쌓고 학점을 따 놓아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벅찬 등록금과 거주비용 등으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학생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오늘날의 대학생활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들은 무엇을 두고 경쟁하고 있을까? 대부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그런데 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작업이 모두가 노력만 한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경쟁에서는 절대로 모두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 이른바 낙오자는 ‘나’이거나 ‘내가 아닌 다른 학생’ 중에서 무조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참으로 무서운 전제이다.

대학에서의 경쟁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상대평가제도’가 아닌가 싶다. 이는 내가 얼마만큼 배움의 완성을 이루어 냈는지 상관없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보다만 더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것이니 학생들은 일단 다른 학생들보다만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려 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 교수님들은 상대평가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수준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와는 상반되게 노트하나 빌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강의실의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그러는 사이 대학 안에서 공부와 학점 사이의 간극은 커졌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주로 ‘학점’ 쪽이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현명하게 공부하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학점만 현명하게 받아내라’라는 주문이었다. 그 말은 “시험에 나오지 않을 부분을 붙들고 있지 말고 그럴 시간에 교수님께 가서 눈도장 한 번 더 찍어라.”라는 식이었다. 그런 말이 ‘현명하게’라는 단어를 앞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실속’이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점 외에 토익, 토익 스피킹, 봉사활동 및 기타 학내활동, 학외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해내기 위해서 공부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학생들이 겉포장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겉포장이 취업경쟁의 ‘참여요건’이 되는 사회의 모습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남에게 인증받기 위한 공부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의도한 적도 없는 경기에서 남에게 지거나 혹은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도서관에 앉아있는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더군다나 경쟁에 필요한 비용도 우리집 형편으론 만만치 않았고 그럴수록 나의 부담은 커져갔다. 이러한 부담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지라도 무조건 ‘안정적인’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열중하고 있는 이 경기에 나 혼자 의문을 가져서 괜히 이도저도 아닌 게 될까봐 두려운 적도 많았다.

(2)
대학에 와서 무조건 안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으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물론 그게 어떤 공부이든 공부도 하긴 했다. 검도 동아리에 들어서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경험도 했고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도 알았다. 학내기관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나는 나 스스로 ‘대학생활다운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대학은 이제까지 젊음을 대표하는 곳이고 그만큼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내가 대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대학이 그러한 에너지들을 어떻게 소모시키고 있는지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서 느낀 많은 것들이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대학의 현실은 어둡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대학의 낭만을 노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학의 공부와는 무관한 활동들을 꼭 대학에 들어와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그만큼 다양한 교육이 보장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애착과 불만이 뒤섞인 대학생활에 졸업이라는 지점이 가까워 올수록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동쳤다. 경쟁 속에 끼어든 많은 불합리한 사건들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내가 본 많은 학생들이 생각하려 들지 않거나, 모르는 척 하고 싶어 했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자살을 하고, 꿈을 잃고, 생존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허덕였다. 대학교 축제가 벌어지던 어느 날, 한창 인기 있던 노래에 맞춰 하나가 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보았던 생동성실험에 대한 방송,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했다는 선배의 얼굴, 대출금이 쌓여서 무섭다던 친구의 문자 메시지, 축제날임에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며 모인 달랑 두 명인 동아리원의 모습, 그리고 갖가지 기사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대학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일까? “축제에 흥겨워하는 저 모습이 대학의 진짜 모습일까?”라고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바로 ‘대학 거부’

대학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동안 그 폐해는 사건들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혹은 대학에 적응하지 못 하는 소수의 문제라고 치부하며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각해진 대학의 문제 덕분에 학교와 사회에서도 대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는 것, 물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등록금투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구조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학문을 추구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대학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고 해도 대학은 반값으로 내린 등급별 취업자격달성소가 될 뿐이다.

나는 ‘대학생’이라면, 아니 ‘젊은이’라면 이 시대의 순수한 지성으로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뼛속까지 느꼈던 많은 문제들을 다른 누군가가 죽음으로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졸업한다면 나는 그 졸업장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내가 ‘진짜 대학’을 원한다면 나 역시 ‘진짜 대학생’으로 행동하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내 후배들, 내 동생들을 나와 같은 어쩌면 더 심해질 문제의 한 가운데에 방치시켜놓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이 무의미한 경기에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대학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가로등이 있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거슬렀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이런 교육과 사회를 바꾸어야한다고 외치는 우리가, 가로등이 아니더라도 성능 좋은 휴대용 손전등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서린 님은 바람 같은 여자,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었지만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고 중퇴했습니다.
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2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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