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는 이유

국가보안법과 인터넷 ①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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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에는 ‘자유게시판’이 있다. 이곳에는 누구나 새로운 소식이나 자기 의견을 올릴 수 있다. 그것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또한 상업 광고처럼 굳이 게시판에 둘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면, 인권운동사랑방은 그 게시물들을 삭제하지 않아 왔다.

그런데 올해 1월과 3월, 청송경찰서와 포항남부경찰서 보안과에서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몇 개의 게시물들을 삭제해달라는 업무협조 공문을 보내왔다. 문제의 게시물들은 북의 정책이나 정치지도자에 관한 글들로, 경찰이 보낸 공문은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 즉 해당 게시물들이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미화·찬양하고, 선군정치 등 북한의 주의·주장을 선전·선동하는 내용”이라며 삭제를 요구했다.경찰이 인권단체 홈페이지를 일상적으로 사찰하는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경찰이 인터넷 상의 게시물들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월권행위라고 판단하여, 인권운동사랑방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7월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에서 다시 해당 게시물들을 삭제하라며 ‘시정 요구’를 해왔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삭제 요구에 응하지 않자, 오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다음주 수요일까지 이 게시물들을 삭제하라는 행정 명령을 내렸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형사 고발하겠다는 경고와 함께.

인권운동사랑방은 이 명령에 불복종하려 한다. 사상․양심 및 표현의 자유는 모든 사람이 보장 받아야 할 기본적 인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침해하는 것으로 국내외적으로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 및 공안기구가 인터넷을 검열하기 위해 사용되는 정보통신심의제도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상․양심 및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사상․양심의 자유는 한 사람이 자기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윤리적 요구에 따라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살 권리를 의미한다. 한 사람은 세계관, 인생관, 주의, 정치적 신념 등을 자유로이 선택하여 내면에 형성하고, 그에 따라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 권리를 가진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다른 사람과 자유로이 사실과 견해를 교환하여 자신의 사상․양심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 살 것을 도모하기 위한 권리다. 이 자유에는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명할 자유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다른 사람의 견해를 접하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권리까지 포함된다.

민주 사회는 이러한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임무로 하며, 또한 그러한 자유를 보장함으로써만 발전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표명하는 헌법이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명시적이고 강하게 보장하고 있는 이유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법리

물론 어떤 표현들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법에 따라 제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부당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 악용하는 일들이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막기 위한 법적 기준들이 만들어져 왔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법리, 명확성의 원칙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어떤 표현을 법으로 제한하기 위해선 그 표현과 국가 안보에 초래될 위험 사이에 긴밀한 인과 관계가 성립해야 하며, 그 위험이 시간적으로 임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광범위한 표현들을 금지하고 처벌할 수 없도록, 법이 금지하는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법리, 명확성의 원칙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원칙들로서, 헌법학계는 물론 각종 국제 인권 규약과 기준들의 바탕이 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제7조는 이러한 기준들에 부합하지 않는다.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찬양’, ‘고무’, ‘선전’, ‘동조’와 같은 모호한 개념들은 명확성의 원칙에 부합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러한 표현들과 국가 안보에 초래될 위험 사이에 어떤 긴밀하고도 임박한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검찰의 어떤 공소장이나 법원의 유죄판결도 그러한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거나 인정한 바 없다. 있는 것은 ‘적을 이롭게 하니 국가안보에 위험하다’는 예단뿐이었다.

이에 대해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 역시 “단지 사상의 표현이 적성단체의 주장과 일치하거나 그 실체에 대해 동조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이유만으로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제7조를 “긴급히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유엔과 국제사회는 근 20년 가까이 지속적
으로 같은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해오고 있으며, 올해 초에도 제17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프랭크 라뤼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국가보안법 제7조 삭제를 권고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 제7조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상․양심의 선택과 유지를 불가능하게 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현행 정보통신심의제도는 인터넷 상의 표현물에 대한 검열제도

정보통신망법과 방송통신위원회법은 정보통신심의제도를 다루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중앙 행정 기관 등으로부터 심의 요청을 받은 인터넷 상의 게시물들에 대해 심의한 뒤 게시판 운영자 등에게 삭제 등의 시정 요구를 하고, 게시판 운영자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행정 명령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이 명령은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 재판을 거쳐 징역 2년 이하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강제 처분이다.

그러나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독립적인 사법 심사를 거치지 않은 채 개인의 표현물을 ‘위법하다며’ 삭제하도록 요구하고, 또한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를 강제하는 것은 사실상 국가에 의한 자의적인 검열이다. 행정 기관이 마음대로 어떤 행위나 표현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해도 된다면, 권력 분립의 원칙은 무엇 때문에 있고, 사법부는 무엇 하러 있겠는가?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이를 인정하여 2010년 정보통신심의를 민간 자율로 바꾸도록 방송통신위원회에 권고한 바 있다.

특히 최문순 전 국회의원이 2010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는 국정원, 경찰, 검찰이 삭제 요청한 게시물들의 74%에 대해 삭제를 결정했다. 또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유로 심의되는 것은 모두 국정원과 경찰의 요청에 따른 것이며, 이 경우 사실상 100% 삭제되거나 차단조치가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현행 정보통신심의제도가 사실상 국정원과 경찰에게 인터넷 상의 표현물을 검열하고 삭제할 권한을 편법적으로 부여하는 제도임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자신의 사상․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권의 원칙은, 이렇게 국가 권력의 노골적 요구를 편법적으로 세탁한 ‘심의 제도’를 통해 간단히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상․양심 및 표현의 자유와 문제의 게시물들

물론 인권운동사랑방은 ‘모든’ 표현이 표현의 자유로 옹호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권의 원칙은 국가 권력의 부당한 검열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지만, 동시에 전쟁 선동이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 선동은 표현의 자유로 옹호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런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갖고서, 인권운동사랑방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해당 게시물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문제가 된 게시물들이 그런 종류의 게시물들이라면, 경찰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삭제 요구 사유와는 별개로, 반인권적 표현을 허용하지 않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자유게시판 운영 원칙에 따라 삭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라진 원철로” “적극 지지해준 제의” 등의 제목으로 게시된 이 게시글들은 북의 정치 지도자나 정책에 대한 소개와 평가를 담은 것에 불과하며, 그 표현들과 국가안보에 초래될 위험 사이에 그 어떤 긴밀하고도 임박한 인과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전쟁 선동이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 선동의 성격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게시물들에 대한 강제 삭제는 누군가 이 게시물들을 올린 사람들의 표현을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자신의 사상과 양심을 형성시켜 갈 누군가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폭력이다.

도리어 우리는 이런 시각을 가진 사상과 표현들을 국가가 금지하려 드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느낀다. 태생부터 지금까지 전 기간 국가 폭력을 동원하여 유일한 사상적 편향만을 강제해온 온 역사를 지닌 남한의 이 반공 체제에서, 이 지점을 넘어서지 못하면 사상․양심과 표현의 자유는 결국 허깨비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을 옹호하는 단체로서, 인권운동사랑방은 국가 폭력에 동참하라는 요구에 응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양심의 문제이다.


덧붙이는 글
유성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75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16일 23: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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