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의 인권이야기] ‘환경들’,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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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토건공사의 완공이 선포되면서, 4개의 강 16개의 보에 물이 하나둘씩 채워지고 있다. 아마도, 4대강 공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급격하고 잔인한 변화일 것이다. 지금까지 고발되었던 많은 문제들이 공사 과정에서의 잡음이었다면, 지금부터의 문제는 만들어진 4대강의 구조로 인해 반영구적으로 지속될 암세포와도 같은 것들이다. 잡음은 시끄럽기라도 하지, 암세포는 조용히 우리를 잠식한다. 거기에 강변레저타운으로 꽃피울 개발·투기의 욕망을 더하자. 뭍 밑의 조용한 죽음들과 물 밖의 불꽃놀이는 대칭의 순환을 형성한다.

위 사진:4대강 토건공사 이후 낙동강 구간의 수면고도. 이처럼 계단처럼 변한 강을 과연 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자료: 김자관 교수, 출처: 『나는 반대한다』]

강의 단면은 무엇을 말하는가. 강은 계단식 호수들의 불연속적 나열이 되었다. 강은 갈수기 없는 강이 되었다. 물의 많고 적음, 온도의 높고 낮음, 계절에 따른 강의 변화는 강의 생명들이 생의 다음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극하는 계기들이다. 그 생들은 새로워진 ‘환경들’에 적응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철새들은 도래지를 잃었다. 아마도 삶의 형태를 급속도로 구조조정한다면 겨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과는 다른 강, 그들의 다른 삶은, 다시 우리를 둘러싼 새로운 ‘환경들’이 된다. 흐름이 정체된 강은 영양분을 적절히 흘려보내지 못하고 과잉 축적시켜 녹조를 발생시킨다. 플랑크톤 덩어리와 시체들이 강을 뒤덮어 햇빛을 가리며 물과 공기의 접촉을 차단하고 독성가스를 발생시켜 물속의 산소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제 강은, 발 담글 수 없는 강이고, 모래밭 없는 강이고, 시체 가득한 강이고, 먹는 물로 쓰기 어려운 강이고, 녹색성장된 강이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들’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내려다 본 ‘환경들’

‘환경들’은 언제나 복수로 존재한다. ‘환경들’은 생물체에게 도래하는 외부의 영향들 혹은 그 영향을 발생시키는 상황들을 의미한다. 백년만년, 역사가 있기 이전에도 고민되어왔을 것 같은 ‘환경들’은 겨우 18세기에 와서야 생물학에서 말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뉴턴의 물리학으로부터 수입된다. “왜 분리된 물리적 개체들이 서로 거리를 두고 영향을 주고받는가?” 만유인력이 서로에게 작용하는 것처럼, ‘환경들’도 서로에게 계기가 되며 복수의 순환을 형성한다. ‘환경들’은 물·공기·기후·햇빛·달의 움직임과 같은 자연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도시·반지하·자동차·전기·상수도·방사능과 같이 인위적인 것들도 포함한다. 인간의 신체 혹은 인간이란 종도 그 순환의 한 고리를 담당하고 있다.

현자는 그 순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나는 어떤 환경들 속에서 살고 있고, 어떤 환경이 되는가?” ‘환경들’은 광범위하고 언제나 중첩되어 있기에 그것을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하늘로 올라가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답이 하늘에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는 하늘을 향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늘을 등진 채 올라간다. 그의 눈은 자신이 살던 세계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 그는 하늘로 올라가면서, 자신이 살던 세계를 파악한다. 어떤 ‘환경들’이 순환하고 있고 중첩되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다가 비로소 그는 저기 한 쪽에 점으로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그는 더 많은 ‘환경들’의 운동을 보게 되고, 더 작아진 자신의 모습[점]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스 사람들이 알았던 것처럼 현자가 답을 찾는 과정은, 스스로의 보잘 것 없음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아, 나는 사실 이러저러한 환경들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점에 불과하구나.” 하지만, 동시에 그는 능동적으로 자신의 ‘환경들’을 구성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선다. 그가 실천하는 만큼 그는 자유인이다.

위 사진:[그림: 윤필]

두물머리 자유인

“어떻게하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농부 최요왕은 도시생활을 접고 두물머리로 귀농했다. 두물머리 유기농지에 ‘인간똥’으로 만든 퇴비를 쓸 수 있을까? 농부 노태환이 답한다. “요즘 인간은 안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먹어서, 퇴비로 쓰기가 좀…….” 농부 서규섭은 별과 달의 움직임과 농작물의 성장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상상 같지만, 유럽에는 이런 고민으로 운영되는 농장이 많다. 이른바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전통농법도 월력에 의해 씨를 뿌리고 수확하지 않았던가. 이들에게 유기농은 단순히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법이고 철학이다.

강변의 땅부자들이 4대강 사업을 환영하며 지역유지로서 목소리를 내는 사이, 국가로부터 임대한 땅에 농사짓고 있는 이들이 집주인이 나가라는데도 ‘못 나간다’며 버티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4대강 사업이 우리 삶의 ‘환경들’을 어떻게 구성할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땅과 강과 사람의 순환을 고민하고 실천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두물머리에 ‘레저용 공원’이 들어오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폭력이었다.

지난 2년 반을 싸우면서, 두물머리 농부들의 오래된 고민과 실천은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그 고민과 실천이 연구자들을 만나면서 만들어진 것이 <두물머리 대안모델>이다. 이것은 농부들이 주인공이고 농부들이 화자인 작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유기농의 발원지로서 30년을 이어온 이곳의 역사성을 잘 살리는 것이었고, 그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었다. 작품은 또한 투쟁과정에서 연대하고 두물머리를 찾아왔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매주 두물머리를 찾아와 농사일을 거들며 배우는 친구들이 있기에 ‘귀농학교’도 만들어졌고, 천주교 생명평화미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빚어내는 영성 속에서 심신을 달래고 치유해간 사람들이 있기에 ‘치유농장’도 만들어졌다. 정부와 공무원, 그리고 토건마피아의 책상에서 그려지는 획일화된 강과 공원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특성에 맞게 그리고 지역사람들의 삶과 철학을 담아 만들어낸 대안이라는 점에서 <두물머리 대안모델>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국의 4대강 현장에서, 또 도심 곳곳의 재개발 현장에서 하나의 ‘모델’로 참고되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싸우는 이유

내가 또 많은 친구들이 ‘두물머리 활동가’로서 두물머리와 함께 싸우며 4대강 토건공사에 맞서고 있는 이유, 그것은 나의 ‘환경들’을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폭력적으로 주어지는 방식과 구조에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존’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개발’이다. 네그리는 ‘개발’이 자본주의의 발명품이 아니라고 말한다. 본래 자연에서의 개발은 연대를 통해 이루어진다. 보잘 것 없는 존재인 인간은 나무와 강과 땅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연대하면서 공동의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 개발은, 우리가 만물과, 또 만물 스스로가 어떤 관계를 구축하고 어떤 삶의 형식을 만들어갈 것인지의 문제인 것이다. 두물머리는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고, 우리는 함께하며 배우고 있다.

4대강 사업에 저항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4대강 토건공사 완공이라고? 그럼, 악순환은 지금부터 심화될 것이고, 저항이 곳곳에서 발생할 것이다.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 ‘환경들’을 능동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다.

√ 22조를 긴급 소비하여 만들어진 4대강의 인공상태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연간 1조원으로 추정된다. 반면, 16개 대형 보를 허물어 자연이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북돋아주는 비용은 기껏해야 4천억 원 정도. 모래들은 이미 돌아오고 있다. 이제, 인간이 할 일을 할 차례이다. 정부와 국회를 움직여야 한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후보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꼭 확인하고 압박을 가하자!

√ 전국의 강변을 하나의 모습으로 획일화시켰던 4대강 사업이 지류·지천으로 확대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토건자본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일방적인 개발계획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개발계획을 지역주민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두물머리 대안모델>을 만드는 과정은 참고할만한 하나의 중요한 사례이다.

√ 날치기 통과된 친수구역특별법은 강변에 대규모 레저타운을 조성하는 등 강변 막개발과 투기 붐을 조장하고 있다. 반면, 4대강 사업 과정에서 하천법은 강변에서의 농사를 사실상 금지하도록 개정되었다. 4대강 사업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개의 법이다. 친수구역특별법과 하천법 등 법을 둘러싼 운동도 놓쳐서는 안 된다.

√ 두물머리와 내성천·영주댐 등의 지역은 여전히 4대강 토건공사에 저항하고 있다. 지난 2월 두물머리 농부들은 하천점용허가 취소소송에서 승소하였지만, 11월 23일(수) 서울고등법원이  “두물머리 농민들을 내쫓고 위락공원을 만드는 게 더 공익적이고 시급하다”며 1심판결을 뒤집었다. 하지만 두물머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겨울농사와 농성을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 영주댐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지만, 지역의 단체들과 내성천 지킴이들을 중심으로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직접 방문하여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이 무엇인지 우리들의 감수성을 되찾는 것이다. ‘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덧붙이는 글
승욱 님은 두물머리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76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22일 1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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