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의 인권나무 키우기] 젊은 비장애인 남성들에게만 안전한 나라라면?

<살인에 관한 전 지구적 연구>를 통해 본 한국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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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한국의 치안이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안전하다고 지레 짐작하곤 한다. 반면, 일본이나 싱가포르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을 한국보다 위험하다고 여긴다. 한국을 실제에 비해 더욱 안전하다고 평가하는 한편, 외국은 한국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구분하는 시각은 종종 부작용을 초래한다. 예컨대, 미국이나 영국을 갱단들이 무기를 들고 활보하는 위험천만한 지역으로 경계해서, 미국인들이나 영국인들이 불쾌해 하기도 한다.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오면 소매치기나 절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과장된 정보 제공으로 인해 실제 재산을 빼앗기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수많은 중국 범죄자들이 한국에 잠입해서 도피중이라는 최근의 보도 역시 문제적이다. 이러한 감정적인 보도는 “평화로운 한국”에 “위험천만한 외국인들”이 난입해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불안감을 퍼뜨리는 데 일조한다. 더불어, 외국인들을 위험집단으로 일반화해서 몰아붙이는 감정을 부채질할 수 있다.

선진국 중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

과연 한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잘 잡힌 나라에서 안전을 구가하며 천수를 누릴까. 국제적인 통계를 보기에 앞서서 한국이 안전하다는 통념에 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점이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을 현상들이 한국에서 모순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쉴 새 없이 방범에 신경을 쓰며 소매치기에서부터 도둑, 성범죄자, 사기꾼들, 심지어 ‘묻지 마 살인’까지 걱정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이나 노약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체감하는 일상적 불안은 더욱 크다.

위 사진:<살인에 관한 전 지구적 연구> 표지
이러한 모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보고서가 최근 국제연합 마약범죄사무소(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UNODC)에서 발행되었다. 라는 보고서는, 2009년과 2010년에 발생한 전 세계의 살인사건 통계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뜻 깊은 자료이다. 나라 간 사법체계와 법에 대한 감정의 현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살인을 범죄로 처벌하며 통계를 작성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범죄율을 국제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해당 년도의 살인사건을 인구 십 만 명당 희생자로 통계적으로 환산해서 국제적 비교를 꾀하고 있다. 보고서는 205개 국가들의 인구 십만 명당 살인발생 통계, 살인범죄 희생자 성별 비교, 총기류 사용 비율, 범죄의 속성 비교, 동일국가 내 지역 간 살인발생률 차이 등 크게 다섯 가지 범주에 집중하고 있다. 보고서에 담긴 한국과 관련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살인에 관한 한국의 어두운 자화상

첫째, 한국의 살인사건 발생률은 205개 국가 중에서 77위로 대부분의 선진국들보다 높은 상태이다. 선진국들 중에서 한국보다 살인사건 발생빈도가 높은 국가들은 미국과 대만뿐이다. 한국의 살인범죄 발생비율은 일본이나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슬로베니아보다 약 6배 높은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2009년에 총 1,374명이 살해됨으로써, 하루 평균 3~4명이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들이다.

위 사진:전 지구적 살인률 비교 [출처:<살인에 관한 전 지구적 연구>, UNODC]

둘째, 한국과 일본은 살인희생자 중에서 여성희생자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눈에 띌 만큼 많은 나라들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희생자 가운데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20% 안팎이다. 반면, 한국은 여성피해자 비율이 남성보다 되레 많은 51%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보다 여성피해자 비율이 높은 나라들(몰타, 나우루, 브루나이, 슬로베니아)은 한국과 달리, 살인발생률이 매우 낮거나 인구가 적어서 비교 자체가 유의미하지 않다.

셋째, 한국은 대부분의 선진국들과 달리 강력사건 발생률이 감소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600명가량이 살해되었으나, 2009년에는 1,374명이 살해됨으로써 두 배 이상 살인발생률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일본과 싱가포르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주요 범죄가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대조를 드러내고 있다.

살해에 관한 두 가지 유형

이 가운데 유념할 사항은 한국에서 기이할 정도로 높은 여성희생자 비율이다. 성범죄 가해자들처럼 세계적으로 살인사건을 자행하는 대다수(80% 이상)는 남성들이다. 한국처럼 여성희생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들인 독일과 스위스, 미국에서 실시한 조사들에 따르면, 여성희생자들 중 상당수가 면식범들에 의해 살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남성들이 조직폭력단 다툼이나 마약 밀매, 알코올이나 마약남용으로 인한 공격적 행동으로 집 밖에서 살해당하는 비율이 높은 것과 달리, 여성들은 주로 집에서 남편이나 동거인, 친척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알려져 있다. 여성희생자 비율이 높은 점은, 해당 나라들의 가정폭력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이 살인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표출된다는 점을 뜻한다.

위 사진:남성보다 여성이 가까운 사람에 의해 범죄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살인에 관한 전 지구적 연구>, UNODC]

2008년 유럽에서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살해된 여성들 중 약 35%가 동거인이나 배후자에게 목숨을 빼앗겼으며, 17%는 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체적으로 52%의 여성들이 최측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지인들로부터 생명을 잃은 것이다. 다른 조사에서는 여성희생자들 중 무려 77%가 가족들과 동거인, 애인들에 의해 살해당한다고 보고하고 있기도 하다. 여성들이 낯선 범죄자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성폭행을 당한다는 세간의 통념을 불식시키는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피해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국제적으로는 살인사건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서 살피고 있다. 하나는 조직폭력과 마약 밀매단과 관련된 살인을 들 수 있고, 두 번째는 가족이나 측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살인이다. 살인에 관한 성별분리현상 중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여성들은 주로 후자의 유형에 속한다는 점이다. 여성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범죄와 숫제 관련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로서 속수무책으로 폭력에 희생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가정폭력이 발생할 경우 오스트리아처럼 법이 개입해서 가해자를 집으로부터 축출하는 제도도 없으며,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해도 처벌이 비교적 경미하기 때문에 법에 의한 단속효과가 크지 않다. 특히 형기를 마친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집으로 복귀하기 쉽기 때문에, 더욱 과격한 폭력을 무지막지하게 행사하다가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르는 비극을 야기 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성폭력과 성폭력은 상대의 존엄성과 평등한 관계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가장 끔찍한 범죄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에서 유달리 여성희생자들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인권의 현주소를 여실히 말해주는 지표로 보인다.

위 사진:살인률과 지니계수의 관계. 소득불평등이 높을수록 살인률이 높아진다. [출처:<살인에 관한 전 지구적 연구>, UNODC]

사회적 모순의 결과 발생하는 살인

그렇다면 한국에서 살인범죄 발생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펼쳐야 할까.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살인은, 물자부족이나 사회적 배제,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부당함, 양극화, 낮은 교육수준과 법치주의 미비의 결과 일어난다는 것이 정설이다. 동시에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모성보호가 부족해서 유아나 산모사망률이 높은 나라들일수록, 저개발 상태가 극심한 나라들일수록 살인사건들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평등한 나라들에서는 평등한 나라들에 비해 무려 살인이 네 배 이상 높이 일어난다. 평등지수와 투명성지수가 높은 나라들인 북유럽의 대형범죄 발생률은, 남미나 아프리카에 비해서 괄목상대할 만큼 낮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으며, 열악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처참할 만큼 어려움에 내몰려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은 극단적인 경우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동반성장”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승자들이 독식하는 사회체제는 경제적으로 환산하기 힘들 만큼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각종 위기에 노출된 사람들을 처참하게 방치한 차별과 배제의 결과는, 이제 그들이 칼을 들고 우리의 일상에 침투하는 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범죄에 대한 불안의식을 묻는 조사에서, 전 계층을 망라하고 범죄를 두려워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두드러질 만큼 범죄를 걱정하며 의기소침하게 밤거리를 다니는 중이다.

위 사진:중위소득이 낮고 빈곤선 이하 인구비욜이 높을수록 살인률이 높다. [출처:<살인에 관한 전 지구적 연구>, UNODC]

약자들에겐 결코 안전하지 않은 나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폭력에 대한 대책이 부족한 결과는 쉴 새 없이 여성들과 아이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가족구성원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비인간적인 현실에 대한 무관심이 한 몫 한다. 특히 관련 법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더딘 정치권에서부터, 실질적으로 약자들을 돕고 가해자들을 처벌하거나 교화시켜야 할 법집행기관의 복지부동한 업무태도, 그리고 가정폭력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으면서 의제화를 촉구하지 못하는 미디어의 책임도 있다. 동시에, 주변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목격했을 경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 우리들의 거리 두기도 문제를 키우는 데 일조한다.

다음의 사례들은 여성과 아동 인권에 대한 의식의 현주소가 만들어낸 현실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여성 ㄱ씨는 회식을 마치고 귀가할 때마다 잔뜩 긴장하며 택시를 타거나 길을 걷는다. 남성들이 만취한 상태를 고스란히 내보이며 주사를 부리는 것이 가끔 부럽다고 느낄 정도라고 한다. 술에 취한 여성은 각종 범죄에 더욱 취약하게 노출되기 십상이기에 술을 안 마신 것처럼 행세한다. 택시에 탄 뒤에도 최대한 침착하고 또렷하게 목적지를 이야기한 후 잠에 곯아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30대 비혼 여성 ㄴ씨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서 가족과 함께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한 후 귀가할 때마다 공포를 느낀다.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야 자신의 집이 나오기에 상시적으로 끔찍한 범죄 상황에 취약한 자신을 발견하며 불안하다고 호소한다. 성적소수자인 남성 ㄷ씨는 경기도의 작은 아파트에 둥지를 틀었다. 옆집에서 남편이 종종 아내를 구타할 때마다 그가 신고를 해서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이어졌다. 연거푸 경찰이 출동하지만, 가정폭력은 중단되지 않은 채 더욱 심각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힘겹다고 말한다.

모두에게 안전한 나라로 거듭나야

우리 주변에 범죄 피해를 입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적잖은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에 산다는 걸 납득할 수 있을까. 만일 한국사회가 젊고 건장한 비장애인 남성들이 살기에만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면 지극히 문제적이다. 범죄 예방 정책은 범죄에 유난히 취약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계속 증가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꾸준히 증가하는 강력범죄들을 힘을 주어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어디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로 당연하게 치부해버리는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제연합의 전 지구적 범죄통계는 한국이 살인에 관한 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에 비해 안전하지 않으며, 특히 여성들의 경우 선진국들 중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만큼 앞으로는 어떻게 살인률을 감소시킬지, 특히 엄청난 수의 여성들이 면식범들에 의해서 살해되는 예고된 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에너지가 집중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나이테 님은 인권운동사랑방을 후원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77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29일 11: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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