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의 인권이야기] 지적장애아동을 만나다

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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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송다큐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연출부에서도 조연출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온갖 업무에 시달리긴 하지만 오직 작품에만 몰입해야 하는 위치는 아닌지라 제작 과정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단 한 마디라도 섞게 되는 게 이 직업이다. 그 과정이 보람되기도 하지만 불편해지는 경우도 많다. 방송을 통해 맺어지는 관계의 한계, 오가는 말들 속에 마음에 걸리는 어떤 언어들, 이것 아닌 다른 방향 혹은 전혀 새로운 방향에 대한 갈망. 생각이 참 많아진다. 아직 생각이 많다는 게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내 인권이야기에서는 방송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 그 과정에서의 고민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엄마라는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

요즘 어린이 희귀병에 관한 방송을 만들고 있다. 그런 사례를 찾아 촬영을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복지원에서 만난 지적장애아동이다. 선천적인 유전병 때문에 지능이 낮아진 건데, 조기에 발견해서 식사요법이나 약을 잘 먹었더라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었던 거라고 했다. 그 아이는 지금 엄마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어떤 사정이었는지 부모들이 일찍이 아이를 그곳에 맡겼다고 했다. 그렇게 자라 16살이 되었다.

많이 움츠려 있어 어디 아픈 건가 싶긴 하지만 외모는 그냥 그 또래의 남학생이다. 남동생 생각이 나선지 마음이 많이 쓰였다. 촬영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럴 때마다 하염없이 들었던 생각은 “이 친구가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살 수 있었을 평범한 삶”이었다. 그랬다면 느낄 수 있었을 세상, 할 수 있었을 활동. 상상할수록 마음이 쿡쿡 쑤시는데, 대책 없는 연민이었다.

내가 반사적으로 생각해버리는 정상적인 삶이란 뭔가. 말을 하고 들을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대충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삶 말이다. 그래서 내 연민이 싫었다. 과연 내가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길 자격이 있는 건가 싶은 의문. 아무래도 불행할 거라는 짐작 때문일 텐데, 과연 내가 그의 행불행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건가. 내가 알고 있는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뭔가. 이 사회에서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행복의 조건은 너무 적지 않은가. 그리하여 만들어내는 것도 너무 빤하지 않은가.

어쨌든 이 친구는, 제 때에 치료하지 못 해서 뇌 기능이 떨어진 하나의 ‘사례’였다. 같은 유전병을 앓지만 조기에 치료를 받아서 정상적으로 자란 아이와는 비교가 될 터였다. 방송 주제에는 적합했다. 조기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할 수 있는 중요한 이미지였다. 이 아이는 분명 편집을 통해 가엾고 안타까운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건, 이 아이가 ‘정상적’이라고 하는 아이와 비교되어 불행하게 비춰지는 것이었다. 그 죄책감이 컸다. 나 역시 떨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그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으니까.

위 사진:[그림: 윤필]

소통하기 어렵다는 변명

다른 어떤 장애보다 지적 장애에 마음이 쓰였던 건, 너와 내가 소통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었다. 공통감을 나눌 수 없다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생각, 아니 착각. 아무래도 변명. 우린 이 사람이 지적 장애라고 들으면 너와 나는 소통하기 어렵다고 단정 지어 버리게 된다. 아니면 긴 시간과 지난한 노력이 있어야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린 쉽게 게을러진다. (여기서의 ‘우리’ 역시 구별 짓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토록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소통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상적이라는 말만큼이나 참 쉬운 것 같다. 언어라는 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말을 통해 하는 것, 이게 소통에 관한 우리의 습관적인 생각이다. 그게 소통의 한계일 거다. 언어로 둘러싸인 세계를 잘 인지할 수 없고 언어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 하는 그 친구는, 그래서 지적 장애라 불린다. 그런데, 정말 소통이란 무엇인가. 그건 그저 ‘정상적인’ 소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서툴렀다. 분명 그를 촬영하러 갔지만 정작 그는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교감하고 싶어도 어찌해야 할 지 아무도 몰랐다. 물건 찍듯, 짧은 시간 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거란 저마다의 짐작으로 최대한 필요한 것만 찍고 마무리했다. 각자 마음에 어떤 꿈틀거림이 있었을 테지만 그저 손 한 번 만져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 날의 내 고민을 말하자 친구는 말했다. 한없이 가여워하는 내 태도부터 바꾸라고.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가능했을 무언가’를 생각하는 건 실례라고 말이다. 중요한 건 현재라고, 그 사람이 더 잘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라고 했다. 덧붙여 해준 말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행복함이 나타나는 지점이 다양해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는 그걸 균질화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정말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며 그 사람의 현재를 부정하거나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현재를 살필 것. 나 역시 내 장애를 헤아릴 것. 그리하여 서로가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고민하고 도모할 것. 무엇보다 내가 하는 판단들이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지를, 쉽게 하는 생각 끝에 꼭 물려 생각하기. 우리가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들이 얼마나 쉬운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고민하지 않으면 결국 그 틀에 얽매이는 건 나일 거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지점이 훨씬 다양해지면 좋겠다.

아이가 씩 웃었다

내가 정상이라서 안주하고 싶지도, 비정상의 상태에 놓였을 때 안타까움의 시선을 받고 싶지도 않다. 나라는 사람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이 정상이라거나 비정상이라고 규정받고 싶지 않다. 그 경계를 지워버리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안다. 그렇게 노력해야 정상적인 소통에서 조금씩 움직거려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말을 걸고 싶은데 도무지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잠깐 짬이 나자 슬쩍 그 아이의 발에 내 발을 갖다 댔다. ‘와 너 발 되게 작구나.’ 잘 들리지도 않게 웅얼거렸는데 그 아이가 씩 웃었다. 그 미소 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 다시 그 친구를 본다면, 나는 좀 다른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주저하거나 거리끼지 않는 편안한, 그런 인사를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윤미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77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29일 11: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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