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인권위 설립 10주년, 인권위와 인권운동의 과제

현병철이 사퇴하더라도 바뀌어야 할 것들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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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체제가 깨닫게 해 준 인권위의 역할

11월 25일 언론재단 20층 인권위 설립 10주년 행사장 바로 앞 로비에서는 인권단체들의 항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무자격자 인권위원장은 사퇴하라!”, “반인권 발언 일삼는 인권위원 사퇴하라”라는 구호를 10여명의 활동가들이 외치고 있었다. 많은 언론들에서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인권위 10주년’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전날 방송인 김미화 씨가, 영하의 날씨 저녁에 한미 FTA 반대집회 참가자들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쏴도 아무 말도 못하는 인권위라며, 인권홍보대사를 관두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로 인해 인권위의 무능과 침묵, 권력 감시 기능 포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졌다.

한국에서 인권위의 탄생은 한국사회가 인권을 주요 의제로 삼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의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현병철 인권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위의 문제점은 너무나 잘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하의 인권위의 변화는 △ 국가권력의 인권침해를 감시해야 하는 기능을 포기했다는 점, △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한 인권정책 생산 기능이 소홀해졌다는 점, △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와의 소통 단절을 들 수 있다.

위 사진:인권위 제자리 찾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사진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후퇴하는 인권 현안에 대해 침묵하는 인권위

이명박 정부가 인권위의 권고를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불순한 행위로 보면서 인권위를 흔들었다. 인권위의 인권침해감시 기능 포기가 그에 따른 효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단순히 무자격자만을 임명해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인권위에 들어오는 진정이 경찰을 비롯한 국가에서 자행한 인권침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권위의 기본 기능인 진정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인권위는 이명박 정부 들어 가장 후퇴한 분야인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안을 대부분 부결시켰다. PD수첩 명예훼손 사건,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제청 의견제출 건, 박원순 명예훼손 사건, 공직선거법 93조 1호에 대한 의견표명 건이 그것이다. 또한 김종익 씨 국무총리실 사찰, 기무사 민간인 사찰, 철도공사의 조합원 사찰 등 3대 사찰을 모두 각하하거나 기각시켰다. 사찰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이 감시됨으로써 발생하는 심리적 후유증이 심한 중대한 인권침해임에도 모두 외면하였다.

최근에는 전원위원회에서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자들에게 전기와 음식을 공급하지 않는 등 인권침해에 대한 의견표명을 부결시켰다. 더욱 가관인 것은 부결 과정에서 위법 농성자를 운운하며 의견표명에 반대한 위원들이 있다는 점이다. 인권의 기준은 실정법에 한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위법하다는 이유로 모든 인권이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위원들의 이러한 막말은 인권위의 바닥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에 대한 의견표명 건이나 두리반 단전조치 긴급구제도 부결됐다. 또한 보수기독교단체가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아도 어떤 입장 표명도 내고 있지 않을 뿐더러 2010년 사업계획에 포함되었던 ‘차별금지법 제정’ 관련 활동은 조직축소를 근거로 뺐다.

정책기능 축소, 인권증진을 위한 제도마련 고민 없어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 및 관행 개선을 위한 정책생산기능은 다른 나라 인권위에서도 매우 부러워했던 기능 중 하나이다. 인권증진은 이미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 뿐 아니라 이후에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관행 개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권증진을 위한 정책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병철 체제 이후 인권정책개발은 매우 더딘 상태이다. 2010년과 2011년의 정책 사업은 그 이전에 해왔던 것을 이어가는 것 외에 신규 계획은 거의 없었다. 실태조사의 항목과 규모가 적어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설립 초기 25건을 웃돌던 실태조사가 2009년 이후로 10건에 못 미치고 예산 총액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인권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제도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특히 2010년 말 상임위원들의 사퇴이후 인권위에서 인권정책에 대한 고민은 이어지지 않고 있으며 정보인권보고서는 아직까지 채택되고 있지 않다.

위 사진:인권위 10년을 돌아보는 사진전. 인권위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2008년 2월의 농성 당시의 사진이다. [사진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인권단체와의 소통이 단절된 인권위

인권위는 국가기구이기에 갖는 한계가 있다. 위원이나 직원들이 정부정책에 영향을 받기도 하며,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안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인권위는 시민사회와 소통하지 않으면 현장성이나 인권감수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시민사회와 소통할 때 인권감수성을 갖고 인권의제를 설정하고 인권의 잣대를 댈 수 있다. 그래서 파리원칙에서도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민간단체의 본질적 역할에 비추어 인권의 보호와 향상, 경제사회적 발전, 인종주의에 대한 투쟁, 특히 인권침해를 받기 쉬운 집단 또는 특정지역을 위하여 헌신하는 민간단체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 중 활동방식)고 강조하고 있다.

파리원칙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인권위가 낸 유의미한 권고나 정책연구들을 분석해보면 인권단체들과의 교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보인권이나 장애인권분야에서 이러한 협력이 없었다면 성과는커녕 방향도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해도 태도 변화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인권단체들은 인권위와 일을 같이하는 것을 중단하였다. 설상가상 인권위는 인권단체의 인권위 사업 참여 거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적반하장 격으로 인권위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단체나 활동가를 노골적으로 배제하기도 하였다.

현병철 위원장만 사퇴하면 괜찮다고?

그렇다면 현병철 위원장 체제 이전에는 인권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인권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밀실 인선, 법조인 중심의 인선’에 대해서 끊임없이 정부와 국회를 비판했다. 파리원칙에 나와 있는 인권위원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충족하기 위한 인선절차 마련은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시민사회의 입장이었다. 검증절차조차 없어 무자격자 인권위원이 임명될 때마다 인권활동가들은 사퇴운동을 해야 했다. 또 법조인으로 가득한 전원위원회의에서 인권침해에 대한 판단기준은 법을 넘어서지 못했다. 국제인권기준은 큰 판단 근거가 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다. 현병철 이후 더욱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에도 인권위 운영의 비민주성, 불투명성에 대한 비판은 출범초기부터 있었다. 비민주성의 상징은 회의의 비공개, 인권위 회의록의 불투명한 공개, 인권위 결정문의 자의적 비공개이다. 인권위법상 인권위 회의는 공개가 원칙이지만 비공개로 할 수 있는 단서조항을 이용한 비공개안건이 많다. 또한 정보공개 청구한 인권위 회의록에도 인권위원들의 이름은 지워져서 나와 어느 위원이 어떻게 발언했는지는 방청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인권위원으로서의 발언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권위에서 다루는 안건에 대한 결과도 제대로 공개되고 있지 않다. 기각된 사안은 어떤 근거로 기각되었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의결된 사안조차 알 수 없다. 인권위법 제50조에는 “진정의 조사 및 조정의 내용과 처리 결과, 관계기관 등에 대한 권고와 관계기관 등이 한 조치 등을 공표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공표가 제한되거나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되어 있어, 조사결과의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사회권 침해에 침묵하지 않도록

두리반의 긴급구제나 철도공사의 사찰 건을 부결시키면서 인권위가 내세운 법적 근거는 인권위법 상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근 인권위가 ‘기업과 인권’에 관심을 높이면서도 정작 기업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수단으로 인권위법을 들먹이는 것은 모순된 태도이다. 한편 사회권의 경우, 2001년 4월 30일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 30조는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를 헌법 10조 내지 22조에 보장된 인권에 한정하고 있어, 사회권 침해에 대한 조사와 구제가 어렵게 되어 있다. 헌법 31조 이하의 사회권인 교육에 대한 권리, 노동의 권리, 노동자의 단결권, 사회보장과 건강권은 해당사항이 안 된다.

그렇다고 그동안 인권위가 사회권과 관련한 진정에 대한 조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차별(헌법 10조의 평등권)이라는 형태로 사회권과 관련한 진정을 하기도 하고 조사를 하기도 하였다. 물론 정책권고의 경우 사회권은 포함된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사회권규약 한국정부보고서 3차 심의에서도 사회권위원회는 사회권 관련 인권위 권한의 법적 보장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동안 인권위는 인권위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권과 관련한 인권침해에 대해서 차별 여부로 조사하고, 그 외 사회권 관련 정부정책에 대해서 정책 권고나 의견표명 등을 해왔다. 하지만 그 내용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인권 분야에 몰려 있다. 노동권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노동3권 분야와 관련해서는 실태조사나 권고도 제대로 없다. 전략조차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은 파업을 불온시하는 사회적 편견에 인권위가 함께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미 FTA 체결로 건강권, 식량권, 교육권 등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우려가 높음에도 이에 대한 어떠한 인권적 검토,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후속활동과 적극적인 실태조사가 있어야

유의미한 권고나 의견을 내더라도 정부가 이를 수용하고 이행하도록 노력하고 교육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이다. 기관을 직접 찾아가고,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낼지라도 실제 그것을 집행하고 있는지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않는다. 일례로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재계와 보수기독교의 반대로 법안 발의조차 안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인권위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사회권위원회에서 성적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가 줄을 잇고 있음에도 인권위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또한 주요 인권침해현장으로 달려가고, 필요하다면 실태조사를 기획해야 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이다. 그러나 2008년 촛불 인권침해감시활동 이후 주요한 인권침해현장에 인권위가 나서서 현장에 가보지 않는다. 진정이 들어오면 겨우 담당자가 현장에 가보는 정도이다. 밀도 있는 후속 조사계획도 없다. 최근에도 김미화 씨가 한미 FTA 반대집회에서 경찰폭력을 수수방관한다고 비판하자 그때서야 인권지킴이를 현장에 파견했다.

위 사진:인권위 설립 10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항의하는 인권활동가들. 인권위는 이들을 내쫓고 빗장을 걸어 잠갔다. [사진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시민사회와 인권위, 인권단체의 역할

이렇듯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있어야 인권위는 화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인권단체가 인권위에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보니 인권위에 있는 인권위 직원들이나 인권위원들은 열심히 하는데 너무 비판만 하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할 수 있지만 잘하지 않은 것을 감싸주는 것이 인권단체의 역할은 아니기에 쓴소리를 언제나 할 수 밖에 없다. 인권단체와 인권위는 ‘긴장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인권위가 알리바이 기구가 되거나 관료조직화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끊임없는 비판과 격려의 목소리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권단체의 몫은 인권위의 몫과는 다른 것이 있음은 분명하다. 국가인권기구가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가,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에 따라 인권운동과 함께 가기도 하고 따로 가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인권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권위의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권위를 버릴 수도, 없는 게 낫다고 공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권위를 변화시켜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도 하나의 제도이기에 그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들의 힘의 관계에서 그 제도의 성격과 위치가 변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한편으로 제도가 각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해당 시기의 국가인권기구의 모습에 대한 판단은 인권보장 수준과 인권 요구 수준과의 역학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인권위는 인권운동과 인권단체에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걸림돌일 수도 있으며 그에 따라 인권위와 인권단체의 관계는 ‘협력, 긴장, 저항, 대립’으로 강조점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은 인권위가 알리바이기구가 되지 않도록 인권운동의 몫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현병철 시기의 문제점과 현병철 이전의 문제점은 모두 바뀌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최소한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독립성, 정책과 조사기능 확대, 시민사회와의 소통, 인권위원 인선, 인권위의 민주성과 투명성 확보, 사회권 침해에 대한 기능 확보, 권고 이후 후속활동 지속 등은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병철이 사퇴하더라도 인권위는 사회적 약자들의 벗이 될 수 없다.

인권위를 만들었던 열망이 사그라지기 전에, 시민들이 완전히 등을 돌리기 전에, 인권위가 제자리를 찾도록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비판하고 인권위 관련 법제도관행을 바꾸는 인권운동의 역할이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77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29일 20: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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