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미끄러지면서 상담을 배우다

학생인권 상담의 달인 되기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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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광주에서 두 번째 학생인권조례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달 서울시 의회에서도 10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성사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이 심의를 앞두고 있다. 교총 등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 저지 투쟁연대’가 결성되는 등 반격이 만만치 않지만, 인권의 잣대로 학교를 재구성하려는 거대한 물결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보다 더 큰 도전은, 학생인권조례가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제로 버팀목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바라는 이들은 ‘조례 이후’를 동시에 준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11월초 이틀간 열린 ‘학생인권 심화 워크숍’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경기, 서울, 대구, 전북 등 여러 지역의 청소년 활동가와 교사, 인권단체 활동가 20여 명이 머리를 맞댔다.

심화 워크숍의 첫째 날은 학생인권조례의 조항을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그 조항의 의미와 활용 방안을 살펴보고, 학교현장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고민의 실타래를 함께 풀어보았다. 이튿날은 실제 학생인권에 관한 상담이 들어올 경우 가져야 할 자세와 대처 방법을 익혀보는 시간이었다.


날개 달기 - 귀를 열어봐

상담을 의뢰받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잘 듣기’이다. 잘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들어보면’ 안다. 상담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열린 귀를 갖기 위한 훈련의 중요성을 느껴보기로 했다. 먼저 네 사람을 무대로 초대해 앞으로 나란히 앉게 한 다음, 맨 앞 사람이 3분 정도 요즘 고민거리를 뒷사람에게 털어놔 보라고 요청했다.

“엄청 바쁜 일이 끝나고 나니 다른 일이 손에 잘 안 붙어요. 내가 나사가 풀렸구나 싶었는데 일이 자꾸만 쌓여요. 술도 끊었는데……. 석 달째 붙들고 있는 원고도 있고, 자꾸만 중간에 일이 끼어들고 일을 나누기로 했던 사람이 갑자기 잠수를 타는 바람에 또 일이 쌓이고. 해도 해도 일이 줄지 않으니까 다른 일까지 자꾸 지연되고, 압박이 장난 아니고,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민폐를 끼치는 것 같고……. 지금 하는 일은 예상보다 호응이 적고, 뭐 되는 일도 없는 것 같고, 요즘 그러고 살아요.”

두 번째 사람은 자기가 들은 대로 뒷사람에게 전달하고, 세 번째 사람은 다시 뒷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달해 보도록 했다. 옮겨지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순서도 바뀌고 사람들마다 강조하는 지점도 달라졌다. 마지막 사람까지 이야기를 옮긴 다음, 맨 앞 사람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어보았다.

“다들 잘 들어주셨는데……. 일단, 제게는 술을 안 먹겠다는 결심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는데 그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하더군요. 노는 시간까지 없앴으면 일이 줄고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좌절감이 생긴 거예요. 또 중간에 급하게 끼어드는 일, 당일치기로 저한테 일을 맡기는 사람이 제게는 굉장히 힘든 부분 중 하나인데 이 이야기를 놓친 분도 있었고요.”

이어서 이야기를 듣고 전달한 사람들의 느낌을 물어 보았다.

“들은 대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얘기가 바뀌어 버려요.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 게 어려웠어요.”
“말하는 사람이 지금 힘들다는 건 느껴졌는데 어디에 방점을 찍어서 힘듦을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정리를 잘 해서 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바람에 정작 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잘 못 들여다본 것 같아요.”
“메모를 하면서 들었으면 좀 더 쉬웠을 텐데, 그냥 들으려니까 잘 정리가 안 돼요.”

사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이야기를 건넨 사람의 핵심을 자기 식대로 정리해버리기 쉽다. 또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정작 마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한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기 판단이 끼어드는 일도 잦다. 간단한 체험을 통해 마음을 기울여 있는 그대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껴본 다음, 상담의 실제 과정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더불어 날갯짓 1 - 미끄러지면서 마음을 읽다

참여자 가운데 한 사람씩 무대로 초대해 네 가지 유형의 내담자(상담을 의뢰한 사람)를 만나보도록 했다. 전화나 얼굴을 맞댄 상황에서 상담을 의뢰받았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내담자가 원하는 게 무언인지, 내담자와 어떻게 대화를 나누면 좋을지를 찾아보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미리 짜둔 각본을 바탕으로 진행자가 내담자 역할을 맡고, 상담자는 참여자 중에서 가급적 상담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첫 번째 사례는 학기 초에 목격한 강제 방과 후 수업이나 기합 같은 문제가 인권 침해라는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중학생의 전화였다. 그런데 상담자는 전문가의 조력을 얻어 사건을 해결하기를 원하는 전화라고 잘못 해석해버렸다. ‘법에는 어떻게 되어 있지?’,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지’라는 부담에 휩싸이자 상담자는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참여자들과 함께 내담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따져보았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당연시하더라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옳습니다.’라는 단 한 마디가 필요한 순간이었음이 명확해졌다. 상담자 역할을 맡은 이가 마음 상하지 않도록 격려하면서 다음 사례로 넘어갔다.

두 번째 사례는 평소 학교에 불만이 많던 딸이 홧김에 교사에게 ‘에이 xx’이라고 말했다가 퇴학 위기에 놓인 학부모가 소송을 도와줄 수 있는지, 변호사를 지원해줄 수 있는지를 다그치듯이 물어보는 전화였다. 그런데 상담자는 학부모가 원하는 도움을 주기에는 법 지식이 모자라고 아는 변호사도 없다는 생각에 쩔쩔매기 시작했다. 당황한 상담자를 위해 상담을 의뢰한 학부모를 도울 방법이 없을지 참여자들과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참여자들은 이내 ‘내담자는 딸의 퇴학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전화를 걸었지만 징계의 발단이 된 사건을 보면 퇴학은 과도하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또 ‘법적 대응까지 가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학생도 많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면 상담자는 학생이 퇴학을 당하기 전에 먼저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힘을 모아보자고 제안할 필요가 있었다는 결론에 함께 이르렀다. 소송 지원은 딸의 퇴학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으니까. 이처럼 상담은 내담자와 상담자가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세 번째 사례는 학교의 요청으로 인권교육을 갔는데 교육이 끝난 뒤 학생이 찾아와 학교 인권상황에 대해 하소연을 늘어놓는 경우였다. ‘우리 학교는 통제가 진짜 심하다, 짜증나고 답답하다, 학생인권조례 있어봤자 소용이 없다.’ 학생의 고발성 하소연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학생인권을 지지해주는 외부 교육가를 만나게 되면 학생들은 평소 학교에서 문제라고 느꼈던 부분을 공감 받거나 고발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대개 학교를 당장 어떻게 바꾸겠다는 결심까지 서 있지는 않다. 그런데 상담자는 ‘헐~ 진짜요?’, ‘대박이다’라며 몇 마디를 하더니 곧장 ‘우리 학교를 같이 뒤집어 볼까요?’라는 제안으로 훌쩍 도약해버렸다. 이 상황을 지켜본 참여자들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준비된 정도를 앞질러 해결책을 제시해버리면 마음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 사례는 조금 전 수업시간에 체벌을 당한 학생이 분노에 휩싸여 신고 전화를 걸어온 경우였다. 내담자는 격분한 상태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상담을 차분히 이어가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런데 상담자의 감정 또한 흥분한 내담자에 휩쓸리면서 내담자가 쏟아내는 이야기에만 끌려 다니기 시작했다. 수업시간 종이 울렸다며 내담자가 전화를 뚝 끊어버리자, 상담자는 망연자실한 상태가 돼 버렸다. 이런 조건의 상담이 갖는 어려움을 참여자들과 함께 찾아보았다. 그냥 분해서 전화를 한 것인지, 가해 교사의 처벌까지 원하는 것인지, 또 아니면 이 사례를 알리고 싶은 것인지 내담자 자신도 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라는 지적이 나왔다. 다시 전화가 걸려올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급하고 분노에 찬 목소리, 학교 쉬는 시간 동안의 통화라는 조건에서 한 번의 통화로 많은 걸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를 읽어내고 다음의 통화나 만남을 가능케 할 여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이렇게 가상의 상담 상황에 들어간 이들이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여자들은 상담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들을 눈으로, 몸으로 얽어냈다. 상담을 의뢰한 사람들의 마음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 내담자 스스로 원하는 것이 분명치 않은 경우도 있는 만큼 호흡과 속도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 상담자가 섣불리 내담자의 준비된 정도를 앞질러 해결책을 제시하다 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을 알리고 이슈화하려는 욕심 때문에 내담자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과 같은 주의 사항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더불어 날갯짓 2 - 달인은 아니더라도 길을 잃지 않도록

이렇게 상담의 첫 고개를 잘 넘는다 해도 끝은 아니다. 이제는 구체적 사례를 갖고 본격적인 해결 절차를 밟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광활한 벌판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지도를 꼼꼼히 그리고 나침반도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실제 상담을 의뢰받았다고 가정하고, 모둠별로 사건 해결의 절차도를 그려보도록 했다.


제시된 사례는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돼 있지 않은 ‘연애’ 문제로 징계위기에 놓인 고등학생 사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 학교규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학생 다수의 의견이 묵살되고 학생 대표조차 학생의 의견을 잘 대변하지 못하는 학교 사례, 불이익에 대한 염려 때문에 체벌 교사를 쫓아내준다는 확답을 해주기 전에는 증언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학생 사례, 동성애를 비하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교실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성소수자 학생 사례, 기숙사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왕따를 당할 정도로 지쳐 있는 상황인데도 학부모가 막무가내로 강제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밀어붙이는 사례 등이었다. 모둠별로 한 가지씩 사례를 골라 내담자와 신뢰를 형성하는 방안, 내담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방안, 주어진 조건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 방안과 절차, 대응 논리 구성,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았을 때 취할 수 있는 방법 등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았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디딤돌을 하나하나 놓다보니 내담자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에 대한 토론이 자연스럽게 일었다. 내담자의 욕구는 조건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인 것인 만큼 지속적인 협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 학교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이 심리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학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 방안과 학내에서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보아야 한다는 이야기, 학교는 시끄러워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만큼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협상카드를 다양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섣불리 나섰다가는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학생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이 오갔다.

머리를 맞대어

되찾을 수 없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이 그 권리의 회복을 요구할 수 있을 때 권리는 비로소 진짜 권리가 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안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만,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는 날은 없을 것이다. 학생인권 상담은 잃어버린 인권을 되찾고자 하는 학생과 그 지지자들을 지원함으로써 학생인권을 살아 꿈틀대는 생물체로 만들려는 과정이다. 그러나 경직된 학교에 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나 이를 지원하고자 하는 상담가들이 비록 사건의 해결에는 실패하더라도 주저앉지 않으려면 상담을 처리해나가는 과정이 즐겁고 풍성해야 한다. 상담의 달인(?)이 된다는 것은 귀를 여는 즐거움, 마음을 나누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78 호 [기사입력] 2011년 12월 06일 19: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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