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 ①] 사회를 흔든 “학생인권” 함성

새로운 청소년인권운동의 발원지, 최우주씨 헌법소원 사건

유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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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청소년인권운동, 길을 묻다]를 시작하며...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는 짧게는 90년대 중반, 좀더 길게는 8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역사는 이제껏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아 온 청소년들은 자기 역사를 써내려갈 기회조차 갖지 못해 왔다. <인권오름>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함께 억압의 구조와 맞서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벌여온 인권운동의 역사를 10여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인주>


청소년인권운동사 연구를 시작하며

체벌, 두발규제, 강제자율학습, 입시경쟁교육 등 각박한 현실 속에서 한국의 청소년들은 하고픈 말도 많을 터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간주되어 사회적 의사결정의 과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반영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21세기 들어 청소년들의 다양한 ‘반항’이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그러한 기존 시각에 충격을 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싸워온 역사는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청소년인권운동사 연구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을 역사적인 맥락 속에 배치하고 알리기로 한다. 이미 잘 알려진 사건의 경우에도 체계적인 해석을 덧붙여 그 의미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이는 현재 청소년인권운동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운동의 단절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이다. 앞으로 청소년인권운동에 발을 들이려는 사람, 또는 이미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 첫 번째로 우리는 1995년 최우주 씨 헌법소원 시도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이 사건이야말로 199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청소년인권운동의 출발점이자 발원지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글, 한국사회를 흔들다

“저의 바램은 아주 상식적인 것입니다. 방과후의 시간을, 방학 동안의 시간을 당연히 학생들 자신의 적성에 따라 활용할 수 있도록 학생 개개인에게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위 사진:최우주 씨의 헌법소원 의사 표명 이후 하이텔에 개설된 토론방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1995년 7월 22일 하이텔 게시판에 올라온 이 한 편의 글은 이후 청소년 인권운동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발전했다. 당시 강원도 춘천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최우주 씨는 학교의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시행과 관련해 청와대, 교육부, 강원도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출하며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본래 헌법소원을 내려다 절차상의 문제로 민원을 제기하게 된 최우주 씨는 ‘학교가 학생의 기본권을 짓밟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최 씨의 민원에 대해 교육청은 “보충, 자율학습의 강제성은 사실이 아니며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면서 보충, 자율학습은 “희망학생, 희망교과에 한해 실시하게 되어 있다”는 공허한 답변만 내놓았다.

교육당국의 이런 무성의한 답변과는 대조적으로 언론과 하이텔에서의 반향은 적지 않았다. 같은 달 26일에는 강원도민일보, 27일에는 중앙일보 사회면에 관련 기사가 났고, 29일에는 전교조에서 ‘강제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이 사라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윽고 8월 3일 하이텔에서는 [최우주 군의 학교 문제, 함께 따라가 봅시다]라는 제목의 토론방이 개설되어 학생 인권에 관한 논의를 확산시켰다. 당시 하이텔 토론방에서는 최우주 씨의 문제제기 방법에 대한 비판과 재반박에서부터 체벌, 보충수업, 분반, 입시교육, 심지어 선거연령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청소년문제와 교육구조 전반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 씨 본인은 몇몇 교사로부터 자퇴나 전학을 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한때 교장으로부터 ‘민원을 취하하고 학교에 순응하든지, 혼자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빠지든지, 아니면 전학/자퇴를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기도 했다.


개혁도 민주화도 말뿐, 변하지 않는 학교

최우주 씨로부터 촉발된 일련의 논쟁은 95년 당시의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교육과정의 획일성과 경직성 개선, 다양성과 인간성 존중이라는 교육목표를 내건 6차교육과정이 도입되었고, ‘5.31 교육 대개혁’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발표되었다. 5.31 교육 대개혁에 담긴 ‘경쟁력 향상, 교육의 질 제고’는 교육에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도입, 경쟁교육을 한층 심화시킬 가능성과 학교 구성원들의 부담을 불필요하게 증가시킬 위험을 안고 있어 교육계 내부에서 상당한 논란거리였다. 당시 하이텔 토론방에서도 말뿐인 교육 청사진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근데.. 교육개혁이라는 게 대단히 애매하고 좀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군요. 현재 학교에는 이렇게 할 것이다라는 말만 있고 구체적인 말도 안 나오고 있으며 선생님들께서는 교육개혁 신경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한편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민주화의 열기가 곳곳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 입장에서 볼 때 학교는 여전히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인 질서를 강고하게 갖추고 있었다. 하이텔 토론방에서도 변하지 않는 학교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우리들은 20세기에 살고 있고 이젠 21세기라는 또 다른 세계로 달려나갈 것입니다…그런데 우리들의 학교라는 곳은 아직도 19세기적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 시대 방법으로 교육을 하고 학생을 이끌고 또 학생들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일고 있는 민주화 흐름과 달리 학교의 반민주적 질서가 학생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촉발시킨 요인이 되었던 셈이다.

또한 ‘민주화’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또 금방이라도 사회가 민주화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인권’이나 ‘기본권’, ‘헌법’ 등의 개념이 좀 더 빈번하게 사용된 점도 최우주 씨가 헌법소원을 생각하게 된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 우리들의 오아시스

하이텔 토론방은 최우주 씨 사건이 하나의 ‘반짝’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다른 청소년들이 서로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결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회에서 발언의 통로를 갖지 못하고 있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소통하고 표명할 수 있는 매체에 목말라 있었다. 당시 활성화되기 시작한 PC통신 공간은 그런 청소년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기 위해 새로운 매체인 온라인 공간에 몰려들면서 하이텔이나 나우누리 등은 사회적인 광장의 역할을 했다. 학교에서 당한 모욕적인 일, 부당한 일을 이제는 온라인 공간에서 다수와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며 문제의식이나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 등도 공유할 수 있었다. 최우주 씨가 적극적으로 헌법소원까지 생각하며 민원을 냈다는 자체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것이었으나, 그 행동이 다른 청소년들의 의식이나 의지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 것은 분명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등장에 힘입은 바가 컸다.


학생, 인권을 말하다

최우주 씨의 글은 청소년에게도 기본권, 인권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헌법소원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부터 청소년, 중고등학생도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주체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위 사진:지난 3월 열린 청소년인권활동가 워크숍. 이제 청소년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억압에 맞서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최 씨의 글은 다시 읽어봐도 유의미한 탁월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강제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은 학생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으로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이렇게 부당하게 감금된다는 점에서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 방학 동안 강제학습 때문에 교회수련회에 참석할 수 없으므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 등 최 씨는 이 글에서 헌법의 구체적 조항을 열거하며 자신의 권리를 조목조목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토론에 참여했던 김한울 씨는 “헌법소원은 단순한 해결방법이 아니라 학생도 ‘인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행위였다”고 말했다. 전영민 씨 역시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문제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하이텔 토론, 학생인권단체 결성으로 이어져

최우주 씨 사건은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김한울 씨는 “최우주 씨가 구체적인 행동을 보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토론방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점점 이런 학교 문제가 하루 이틀만의 문제냐, 토론만 해서 뭐가 달라지냐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끝나서는 안되겠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몇몇이 이런 분위기에 공감했고, 토론 종료 후에 결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라고 회고한다. 하이텔 토론방에서 「학생인권회복회....모집 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던 전영민 씨는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모일 수 있고, 뭔가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는 힘이 됐다”고 말한다. 이처럼 최우주 씨 사건은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했고, 직접적으로는 (이후 학생복지회로 바뀜)를 탄생시키는 결실을 맺게 된다.


중고등학생 운동, 인권운동으로 부활하다

청소년인권운동사의 측면에서 최우주 씨 사건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의 참교육 운동과 함께 타오르다 쇠퇴해가던 중고등학생 운동을 ‘인권’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일으켰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최우주 씨의 헌법소원 사건을 계기로 하이텔과 나우누리 등에 가 생겨나면서 인권의 측면에서 청소년문제․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 성장해갔다. “학생인권”이 하나의 독립된 개념으로 널리 퍼져나간 것 또한 학생복지회 결성 이후부터였다. 이후의 문제제기나 운동에서 학생 인권이 전면에 나서게 된 이유도 최우주 씨의 헌법소원 시도가 끼친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의 청소년운동은 비록 인권이슈를 다루고 있기는 했지만, 인권 개념을 전면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우주 씨 사건 이후 인권개념을 중심에 둔 새로운 의미의 ‘청소년 인권운동’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유윤종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2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03일 8: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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