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소수자’, 그 부대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할 이야기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톺아보기 ②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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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이대영 부교육감이 서울시 의회에 학생인권조례를 재의하라고 요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와서 자리를 잡았는데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인권이 재심의 당하는 세상이라니.

누가 무엇을 심의하는가

중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후 고등학교에 복학했을 때, 사회적으로 보면 거의 힘이 없는 노동자들이지만 학생들은 절대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이들이 교사들이라는 사실과 마주했다. 복학을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자퇴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던, 내가 다른 모든 사람과 동등한 존재라는 그 깨달음을 무기 삼아, 한 번 싸워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기대는 어긋나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날부터 학교라는 공간이 논리도 이성도 감수성도 통하기 힘든 곳이란 것을 체험해버렸다.

“너 이 새끼 화장했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욕설을 내뱉던 그 사람에 경악해서, 멍하니 그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뭘 똑바로 쳐다보냐’, ‘반항하냐’는 말이 이어졌다. 그럼 내가 그 욕설 앞에 머리를 푹 숙여야 한다는 말인가. 무슨 이유로? 묻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학생이고 그 사람은 교사라는, 우리는 결단코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이 피부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화장실에서 찬물로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학교에 들어온 이상 나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어떤 존재인가, 떨떠름하게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았다.

2박 3일간 이어지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같은 반에 배정되었던 사람들은 밤만 되면 ‘팬픽’ 이야기를 해댔다(팬픽은 ‘fan fiction(팬이 쓰는 소설)’의 줄임말인데, 대개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동성애 장르가 주를 이룬다). 동방신기 누구는 공이네 누구는 수네(게이 섹스의 포지션을 말하는데, 동성애물을 즐겨 보는 이들이 주로 쓰는 용어다) 하며 밤을 지새웠다. 그네들은 얼마나 게이들을 좋아하는지, 내가 왜 동성애물을 보냐고 묻자 ‘동방신기가 여자랑 사귀는 거 읽으면 너무 질투 날 것 같아서.’라고 대답하는 시크함이란. 그러면서 레즈비언은 더럽고 역겹단다. 그 말을 하던 여자사람이 참 호감 간다고 생각했던 레즈비언인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지요.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서, 0교시 거부 문제로 온 학교 교사들과 싸우고, 선배한테 인사 안 한다고 2학년생들에게 왕따 당하다가 학교를 점점 안 나가게 되었다. 한 달 후 자퇴를 선언하면서 (당시 나는 이모네 집에 살고 있었는데) 내 애인을 불러다가 ‘동성애는 전두엽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라고 말하던 이모부를 피해 탈가정을 했고, 청소년 공동생활 공간에 살면서 서울학생인권조례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학생인권조례는 혁명이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그랬다. 당연한 듯 엎드리라면 엎드려 맞았고, 머리카락이 길다고 자르라고 하면 밤새 잘라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음날 학교에서 또 혼나고, 손바닥에 자해를 한 날도 지각했다고 피딱지도 덜 맺힌 손바닥을 맞았고, 수업 중에 동성애 비하 발언이 나오면 혼자 화장실에서 울었고, 교사가 체육시간에 몰래 내 가방을 뒤졌다는 사실을 알아도 아무 말 못했던 학교에서의 나날들을 모조리 뒤엎어줄 것만 같은 언어들이었다.

체벌금지, 두발복장자유, 집회와 종교의 자유, 그리고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차별금지 조항까지.

내가 합류했을 때는 서명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였고, 채워야 할 서명 수는 한참 남은 상태였다. 마지막 날 서명 1만장을 받는 기적을 이뤄내고,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비 오는 밤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는데 계속 눈물이 나왔다. 더 일찍부터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고, 이렇게 고생해야 조금이라도 바뀐다는 게 한스러우면서도 행복했다. 이후 상당수의 서명지가 무효로 나왔고(주민등록번호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부러 틀리게 쓴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5일간의 주어진 시간 동안 그만큼의 서명을 더 받아 숫자를 채워, 주민발의에 성공했다.

그때부터인가, 네이버 검색창에 ‘학생인권조례’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학생인권조례 동성애’가 나왔다. 몇몇 언론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기사를 발표했고, 자생적인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의 부재를 실감하고 있던 나와 몇몇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시작으로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을 꾸려가 보자는 결의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조항들을 삭제하고 뜬금없이 ‘학생의 책무’조항을 끼워 넣는 등 주민발의안보다 후퇴시켜 발표했고, 성소수자 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을 결성했다. 공동행동과 함께 청소년 성소수자 발언대회를 개최하며, 그들이 학교 안팎에서 받는 차별을 조사하여 사례집을 만들었다. 몇 차례의 항의와 선전전 끝에 교육청이 후퇴를 철회시켜 최종안을 내었다. 그러나 심의의 권한이 의회로 넘어가면서, 상황은 더 급박해지고 악화되었다. 성소수자 공동행동은 의원회관 1층 로비를 점거하고 차별 없는 학생인권조례를 외치며 농성에 돌입했다.

학생인권조례는 모두를 위한 것

교육위원들과 의원들은 잔인하게도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키는 데 성적지향, 임신출산으로 인한 차별금지 사유에 대한 보수 측의 공격이 많아 부담스럽다.’는 답변들을 해왔다. 성적 지향과 임신 출산이 학생인권조례 통과에 방해물로 작용하게 되는 듯 보이는 상황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임신출산으로 인한 차별 금지 조항은 학생인권조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고민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바꿀 수 있는 학교 현장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체벌 없는 학교, 두발복장규제 없는 학교, 학생들이 집회를 열고 종교로 인해 차별 받지 않는 학교, 학생이란 이유로 지속적인 폭력을 겪지 않게 최소한 보장해 줄 수 있는 이 조례.

그러나 차별 금지 사유들 중 논란이 되는 부분을 삭제시킨다는 것은 ‘누군가는 차별 금지 대상이 아니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아주 많은 부분들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모욕감과 동시에 비참했다. 단지 동성과 정신적이고 성적인 깊은 유대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세상과 뚝 떨어진 채 스스로 갇혀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누구에게도 내가 왜 괴로운지 이야기할 수 없어서 느껴야 했던 외로움이, 도무지 벗어날 방도가 없다는 걸 깨닫고 마주했던 절망들이 ‘넌 그런 폭력들을 당해도 되는 존재였어’라고 모조리 결론지어진 듯했다, 그렇게나 아팠다.

저 ‘위쪽’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논의가 오고 가는지 갈팡질팡하며 농성이 이어졌고, 힘든 나날이 반복되면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양한 단위가 참여한 운동이니만큼 학생인권조례 속에도 서로가 중요시 여겼던 부분과 주목했던 지점들은 달랐다. 보수 진영에서는 학생인권조례 통과를 저지시키기 위해 동성애와 임신을 타겟으로 잡고 압박해왔다. 오랫동안 학생인권을 위해 싸워 왔고 학생인권조례 서명을 직접 받았던 사람들은 후퇴된 조례안이더라도 조례 통과를 기원해야 할 것인가 기로에 서게 되었다. 성소수자들은 법이 제정될 때마다 혐오의 대상이 되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차별금지 항목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삭제되었던 역사들이 있었고 절박함이 있었다. 그렇게 찢어지고 갈라지는 상황에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적지향과 임신출산 차별금지를 명시하라고 외치면서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느새 함께 서명을 받았던 청소년인권 활동가들이 저만치 멀어져 있고, 성소수자 공동행동과 함께 농성을 지속하면서도 끊임없이 상처를 받았다. 내가 ‘청소년 성소수자’라고, 그렇게 구분된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까지 크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청소년 성소수자 의제가 가시화되고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가 드러나길 바랐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는 약자 중의 약자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나날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혼자 ‘청소년 당사자’로 공동행동에 있던 나의 역할은 ‘당사자의 대표발언’ 정도로 한정된다는 느낌에, 왜 주체적으로 운동하지 못하냐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나의 경험 부족과 무능력이 걸림돌이라고 체감될 때면 좌절하기도 했다. 기존 성소수자 운동 진영과 함께 농성에 참여하였던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이는 누가 ‘당사자’이냐 아니냐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정말 의외의 결과인, (주민발의 원안은 아니었지만) 차별금지 사유에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임신출산이 명시된 채로 학생인권조례가 의회에서 가결되었을 때,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을 모색하고 이끌어왔던 활동가들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눈물은 감격과 환희와 슬픔과 아쉬움이 섞여 있었던, 그런 것이었다.

끝나지 않아야 할 이야기

그렇게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고 농성이 끝나고, 원인 모를 허무함에 허우적대며 며칠을 보냈다.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하는 중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불편한 지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군가를 마녀사냥하지 않고 함께 풀어가는 방식으로 귀결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앞으로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 십대의 성적 권리 찾기 운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던 운동이었다. 학생인권조례는 기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뒤흔들 힘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당연했던 것이 폭력임을 드러내고, 더 많은 차별들을 발견하고, ‘누군가도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인권운동인 것 같다. 조금 더 넓은 의제를 상상하고, 시야를 확장시키고, 주위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연대는 공감에서 나온다. 내부의 공감 능력을 키우고, 다른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생인권조례가 무사히 서울에서 정착되기를, 다른 지방에서도 제정되어 드러나지 않았던 억압과 차별을 가시화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발판이 되길, 간절히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쥬리 님은 십대 섹슈얼리티 인권 모임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82 호 [기사입력] 2012년 01월 10일 15: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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