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어른들의 동시가 어린이 시를 절대 뛰어 넘지 못하는 이유

각기 다른 빛깔의 동시집 세 권을 보며

이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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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동시와 어린이 시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항상 교과서에 실린 동시를 보면 ‘야, 얘는 정말 시를 잘 쓰는구나!’라고 감탄한 적도 있어. 그러다 동시는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해 쓴 시라는 걸 알고 안심했지. ‘어른들이 쓴 시니까 이렇게 잘 쓰는 거지.’하고 말이야.

그런데 친구들 중에는 아직도 교과서에 실린 동시가 어린이들이 직접 쓴 시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을 거야. 그리고 동시와 어린이 시가 다르다는 걸 알아도, 자기가 시를 쓸 때 교과서에서 본 동시들을 흉내 내려는 친구들도 간혹 있어. 그런데 그런 어린이 시를 보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담겨있기 보다는 그냥 예쁜 말들로만 꾸며진 것 같고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워.

자기 시보다 더 잘 쓴 시라고 생각해서 그럴까? 사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동시를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우리 반 친구들도 제목이 재미있어서 책을 선택했다가도 펼쳐들자마자 ‘에이 동시네.’라며 다시 덮기 일쑤야. 그런데 정말 어른들이 쓴 동시들을 아이들이 읽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혹시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어른들이 쓴 동시가 우리 친구들이 쓰는 시보다 잘 쓴 시일까?’, ‘ 두 시는 뭐가 다른 거지?’ 하는 궁금증이 들었어. 그래서 몇 권의 동시집을 찾아보기로 했어.

『근데 너 왜 울어?』

첫 번째 책은 『근데 너 왜 울어?』(동시마중 편집위원회/상상의 힘)란 동시집이야. 이 책에는 마흔 명이 넘는 시인들이 쓴 최근의 동시가 70편이나 수록되어 있어. 현재 우리나라 동시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들 중에는 가슴에 와 닿는 시들이 별로 없어. 하얀 밤 고라니를 만나고 마녀 할멈과 개구리 이야기가 나오고 예쁜 꽃밥 도시락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지는 못해. 왜 그럴까? 그건 이 책에 실린 각각의 동시들이 잘 짜여진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 어린이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두려움, 두근거림과 그리움을 거의 그려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야. 실제로 70편의 동시 중에 아이들이 발 딛은 현실을 그려낸 시는 몇 편 없어. 어린이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도 그 내용이 너무 예쁘게만 그려져 있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왜 그럴까? 어쩌면 혹시 동시를 쓰는 어른들은 우리 친구들을 너무 의식하고 글을 쓴 건 아닐까? 이 동시는 어린이들이 보는 시니까 너무 직설적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나 어린이에게는 좋은 걸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들 말이야.

『이 세상의 절반은 나』

두 번째 책은 『이 세상의 절반은 나』(곽해룡/우리교육)라는 동시집이야. 이 동시집에는 짧지만 상상력이 넘치는 시들이 실려 있어.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재밌게 읽고 미소를 지을 만한 동시들도 실려 있어. 게다가 이 동시들에는 시인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글자 사이사이에 베어 있다는 느낌도 들어.

하지만 여전히 이 동시들 속에서 어린이들의 삶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 이 시들이 동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라면 어린이들의 삶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을 노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야.

사실 어른이 자신의 생각을 어린이의 언어로 쉽게 표현하는 것이 동시인지, 아니면 어린이의 삶을 이해하고 어린이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노래하는 것이 동시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이 시집을 보며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야.

『동시 삼베치마』

세 번째 책은 『동시 삼베치마』(권정생/문학동네)라는 동시집이야. 이 시집은 시인이 동화『강아지 똥』을 내기 5년 전에 손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만든 동시집을 책으로 펴낸 거야. 90편이 넘는 동시들 중에는 지금 어린이들이 읽었을 때는 뜻을 모르는 말들도 있어. 또 벌써 50년이 넘은 시절의 이야기라 동시집을 읽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어.

그런데 가만가만히 읽어보면 이상하게 묘한 울림이 있어. 앞서 나온 책들과 달리 그 시대 아이들의 삶이 꿈틀거리고 있어. 동시 속에서 멀리 시집간 누나를 그리는 마음에 미움도 슬픔도 그리움도 묻어나와. 그렇다고 이 동시집이 앞의 두 책들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말로 만들어져 있거나 형식적으로 완벽해 보지지도 않아. 그런데 왜 다른 느낌일까?

그 궁금증의 해답은 이 동시집의 첫 장에 시인의 목소리를 보면 알 수 있어.


열다섯 전후의
어릴 적

그 때의 생각은
어땠을까?

슬픈 일 기쁜 일
많았습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이야기는 어렸을 적 나의 기억 속에서 시작해. 시인이 살아가던 마을 풍경과 가족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함께 담겨져 있어서 어렸을 적 시인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에 다른 동시들과 다른 울림이 느껴지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어린이의 삶과 가까운 시선으로 쓴 동시도 어린이 스스로가 쓴 시를 넘지 못해. 어른들이 판단하는 단편적 감정보다 더 많은 복잡한 감정과 삶의 경험이 뒤엉켜 숨 쉬는, 살아있는 어린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어린이 자신이기 때문이야.

사실 우리 어린이들의 삶은 정말 갑갑하기만 해. 수많은 경쟁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노래할 여유조차 없는 게 사실이야. 이런 시대일수록 어린이들이 시로 자신의 삶을 노래할 수 있는 기회들이 더 많아져야 해.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 아이들에게 시는 단지 백일장에 상 받기 위해 쓰는 일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아.

국어 교과서에도 어른들이 쓴 동시는 있지만 어린이 시는 거의 실리지 않지.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보다 잘 썼다고 여겨지는 동시들을 따라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그래서 시를 통해 나를 노래하는 경험을 갖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야. 어린이가 좋은 동시를 많이 읽는 것도 좋겠지만 시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조금 표현이 서툴면 어때? 그리고 조금 이상하면 어때? 자기 삶을 솔직히 노래하며 어린이가 쓴 시는 그 어떤 동시보다 큰 울림과 감동이 있어.

우리 친구들이 좋은 시가 아니라 내가 읽어서 행복할 시들을 마구 마구 쓰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덧붙이는 글
이기규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286 호 [기사입력] 2012년 02월 15일 14: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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