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권적 주민등록제도를 언제까지 놓아두어야 할까?

윤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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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소리쳐도 바뀌는 것이 없다!

술에 취해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사람만큼 귀찮고 짜증나는 경우도 드물다. 마찬가지로 매번 문제를 제기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처럼 화가 나는 경우도 없다. 주민등록제도 문제가 그렇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인권오름’에 그동안 올라온 관련기사들을 검색해보았는데, 오 놀라워라! 그토록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한 건 없으며,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주민등록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만 해도 무려 10여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하나도 개선된 것이 없다니! 반인권적인 전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 국민통제를 위해 강요된 주민등록번호제도, 강제적인 주민등록증 발급의무, 주소지 신고의무제, 한 사람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직권말소제도는 물론이고, 십 수 년 동안 집요하게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 전자주민등록증 사업까지 전혀 변한 것이 없다.

주민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강제적 지문날인제도가 여전히 시행되고, 주민등록번호가 대량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수시로 벌어지며, 직권말소로 인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일체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정부는 주민등록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의지가 전혀 없다. 오히려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더 위험한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 관료들이 아예 생각 없는 사람들도 아닐텐데 왜 계속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주민등록번호, 이 좋은 것을 왜 없애?

현행 주민등록제도는 관리와 통제에 매우 효율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민등록번호라는 것은 정부로서는 버리기에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효과적인 개인정보 연결장치이다. 주민등록번호와 실명만 알고 있으면 그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 다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효과적이고 훌륭한 주민관리체계를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어떤 대상을 이처럼 번호로 관리하려는 의도는 따로 있다.

번호가 사용됨으로써 효과적인 관리와 통제가 되는 다른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농장에서 관리되는 소를 생각해보자. 목가적 낭만이 흘러넘치는 전원의 한켠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들을 보면 귀에 표찰이 달려있다. 그 표찰에는 하나같이 일련번호들이 찍혀 있다. 바로 쇠고기 이력추적 시스템에 이용되는 소들의 개별 식별번호다. 이 번호는 소의 권리, 즉 우권(牛權)을 위해 달아놓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한 것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는 체제는 또 있다. 군대의 군번이 그렇고 감옥의 수인(囚人)번호가 그렇다. 군대와 감옥 모두 관리와 통제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번호를 부여한다. 주민등록번호 역시 똑같은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관리와 통제. 그런데 대체 왜 주민에게 번호를 붙이면서까지 관리와 통제를 하려 할까? 누가 이런 발상을 했을까?

위 사진:[출처: 참세상]

현재와 같은 주민등록제도가 구성되고 정착된 것은 박정희 정권시기였다. 반공방첩태세 강화라는 명분으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집중적으로 주민관리통제체제의 정비와 강화가 이루어졌다. 그 일환이 바로 주민등록번호제도, 전국민 지문날인제도, 주민등록증제도였다. 태어날 때부터 번호가 부여되었고, 17살이 되면 열손가락 지문을 찍어야 했고, 싫건 좋건 간에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을 언제나 지니고 다녀야만 했다. 언제 어디서 불순분자 혹은 거동수상자로 오인되지 않기 위해서 주민등록제도가 만들어놓은 관리와 통제체제에 철저하게 순응해야만 했다. 당연히 이처럼 강력한 통제체제의 목적은 군사독재정권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사람은 소가 아니다!

문제는 무려 한 세대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군사정권의 잔재가 여전히 살아서 펄펄 뛰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지기는커녕 주민들의 삶 자체를 지배하면서 말이다. 33년 전에 죽은 독재자의 망령은 여전히 살아서 21세기를 배회하고 있다. 1995년 이후 추진된 전자주민등록증 사업 추진과정만 보더라도 정부가 주민들의 관리 통제에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동안 정부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인권사회단체들과 시민들의 반발이 있었고, 그 덕분에 아직까지는 도입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는 끝내 이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더 심각한 상황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개인정보의 유출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는데, 그 문제의 중심에 주민등록제도가 있다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를 매개로 하는 개인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무한유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응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정보유출이 우려되는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주민등록번호를 폐지하고 온라인에서 개인정보의 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완고하게 주민등록번호를 없앨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행정편의를 제공하고 복지수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정부가 관리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목적범위를 넘어서 과도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렇게 수집한 정보가 무분별하게 남용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인권사회단체들이 주민등록제도의 근원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위한 운동을 펼치는 것은 단순히 개인정보를 보호하자는 취지에 그 의미가 머무는 것이 아니다. 주민등록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은 군사정권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동시에 정보화시대의 변화에 맞춰 보다 현실적인 인권보호의 틀을 마련한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주민등록제도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체계에 대한 논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했듯이 그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 철폐, 주민등록번호제도 철폐, 개인식별번호의 민간사용 금지, 주민등록증 자율발급, 직권말소 폐지 등은 하도 주장한 나머지 익숙하다 못해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지경이다.

죽은 자의 것은 죽은 자에게

적어도 민주화된 세상의 정부라면 주민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이를 위해 독재정권이 설계한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일어나서 바꾸어야 한다. 언제까지 축사에서 관리되는 소처럼 번호로 관리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범죄자처럼 열손가락 지문까지 찍으면서 말이다.

시행 50주년을 맞이하는 주민등록법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 완전히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변화된 환경을 감당하지 못한 채 주민들의 피해를 더욱 확산시킬 뿐이다. 따라서 주민등록법 완전개정을 위한 작업이 이제는 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낡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주장들, 즉 주민등록번호폐지, 지문날인제도 철폐, 직권말소 삭제, 주민등록사무의 지방정부로 이양 등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정부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전자주민등록증 도입사업 역시 완전히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주민등록법 전면 개폐를 목표로 인권사회운동이 다시금 움직이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쏟아왔던 노력의 결과를 이제는 만들어 낼 시기가 되었다. 때맞춰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주민등록법 개폐가 하나의 이슈로 제안되어야 하며, 새로운 국회에서 주민행정사무에 관한 새로운 법제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죽은 자의 것은 죽은 자에게 돌려주자. 그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윤현식 님은 진보신당 정책위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289 호 [기사입력] 2012년 03월 14일 11: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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