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청소년=쯧쯧쯧?] 자존감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1)

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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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과 만나면서 시작된 자존감의 고민

지역아동센터와 인연을 맺고 청소년들을 만난 지 3년 정도가 된다. 그동안 이들과 함께 인권교육을 하기도 하고 놀러 다니기 바빴지만 주로 했던 일은 서른 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한 인터뷰이다. 처음에는 “별 거 없는데, 제 얘기가 무슨 글이 된다 그래요. 진짜 할 말 없는데”로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덧 이야기는 쾌활한 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이어지며 “이렇게 제 얘길 길게 한 건 처음인 거 같아요”라거나 “이렇게 누군가 오랫동안 제 얘기를 들어준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로 끝이 나곤 한다. 이렇게 들어버린 서른 명의 목소리는 나의 머릿속에서 단어로, 문장으로, 이미지로 떠다니면서 때로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따뜻한 기운으로, 그리고 안타까운 한숨과 씩씩거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고,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자아존중감(이하 자존감)’은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 사회심리학 수업에서 언뜻 들었던 것으로 기억나는 ‘자존감’이 지금 이 순간에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할 줄 몰랐다. 자존감에 관심도 없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 나름 높았던 자존감이 고민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자존감 관련 논의가 시작되었고 워크샵 준비를 하면서 글을 쓰기도 했고, 그 후에 한 번 더 자존감을 주제로 글을 썼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도대체 어렵기만 하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은근히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존감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주제를 고민하면서 그동안 나에게 별 관심거리가 아니었던 ‘자존감’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일상 언어임을 알게 되었다. 도서 검색을 해보면 자존감 관련 서적들이 이미 많이도 출간되어 있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고방식을 가르치다 ‘우리 아이 자존감의 비밀’」, 「성공의 7번째 센스 ‘자존감’」,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 「낮은 자존감이 행복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다 ‘행복을 부르는 자존감의 힘’」, 「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 「마음의 질병인 낮은 자존감 치유하기 ‘상처받은 자존감의 치유’」 등이다. 나는 그동안 자존감이 행복도 좌우하고 성공도 좌우하는 그토록 중요한 ‘센스’인줄 몰랐다. 만약 열심히 자존감을 체크하고 살았다면 행복과 성공의 삶이 내 눈 앞에 펼쳐졌을까? 아니 8살 이전에 자존감 상태가 양호했어야 하는데 이미 늦어버린 걸까?


자존감 개념과 기존 논의들

간단히 말해 자존감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와 관련된 것으로 자기 자신을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는가의 척도이다. 기존의 논의들을 보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이고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한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 가치에 대해 회의적이고 자기를 무가치한 인물로 보며 자주 불안하고 우울하며 불행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청소년의 자존감은 주로 가정, 또래집단, 학교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기존연구에서는 특히 부모-자녀 간의 애착관계와 부모의 양육태도를 강조한다. 즉 부모가 온정적, 수용적, 지지적 일 때 아동 및 청소년의 자존감은 높고 거부적, 방임적일 때 자존감이 낮다고 본다. 불안정한 빈곤가정의 경우 부모의 양육태도가 방임, 거부적인 경우가 많고 이것은 자녀의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부모가 낮은 자존감일 때 자녀 또한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높으며 마치 가난의 대물림처럼 자존감도 대물림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빈곤가정의 아동과 청소년은 높은 수준의 행동문제, 심리적 불안과 위축, 우울증, 낮은 자존감과 낮은 사회적응력을 보인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청소년들에 대해 말하면서 센터 실무자들은 자존감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뭘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해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 없는 거 같아요. 꿈이 없어요. 자신감이 없어요. 무기력해요. 아무 것에도 의욕이 없어요. 공격적이에요. 부모한테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 교사들이 많이 지지해주고 공감해주고 사랑해줘야죠” 등이 낮은 자존감을 말하는 내용이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인터뷰를 한 영철이는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거 같아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마다 낮은 자존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영철이가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고 평가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는 두 번 정도 자존감 검사를 했었는데 선생님이 영철이의 자존감이 낮다고 이야기했다는 것, 둘째는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튀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신의 성격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과연 이 두 가지 이유가 현재 영철이의 자존감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현재 영철이가 ‘낮은 자존감’이라는 언어에 갇혀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낮은 자존감’이라는 낙인이 “나는 그것밖에 안 돼요,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는 부정적인 자기 평가를 강화시킨다.

그렇다면 영철이의 고민일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한 낮은 자존감의 회복(향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전문가들에 의하면 낮은 자존감은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지지와 공감을 통해 상호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하면서, 또는 상담이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청소년들의 낮은 자존감을 여러 ‘문제’의 원인으로 취급하면서 심리적 ․ 정서적 지원과 관심,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 다양한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 자기 성장 프로그램,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 등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청소년들의 낮은 자존감이 부정적 자기 평가를 긍정적으로 전환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불안정한 자신의 삶의 조건은 통제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기감정만은 잘 통제할 수 있을까? 결국 개인의 노력과 의지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삶의 조건은 어쩔 수 없으니 개인의 생각, 마음, 감정 바꾸기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일까?

빈곤과 자존감, 그리고 그 사이

빈곤과 자존감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자존감 개념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 태도로서 전반적인 자기평가의 의미를 갖는다. 긍정은 좋은 것, 부정은 나쁜 것이라는 의미체계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라는 주문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의미체계는 규범적 성격을 가지면서 개인의 태도를 구성하고 삶을 해석하는 틀로 작동한다. 그런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엇을 긍정으로 볼 것인지 부정으로 볼 것인지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공유된 의미체계이다. 그래서 결국 개인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긍정과 부정의 가치체계에 근거해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 직장인이 연봉이 높은 기업에 다니는 것, 누구나 인정하는 외모를 가진 것 등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자신 스스로도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하다거나 성적이 나쁘다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대학에 다닌다거나, 직장명이 표기된 명함이 없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도 부정적 평가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긍정과 부정의 가치체계는 개인 간 관계에서 상호적인 피드백의 내용을 구성한다. 예를 들면 지역아동센터 교사가 청소년 사이의 연애를 꺼려하는 경우 “니들 둘이 똑같은데 왜 연애를 하냐. 자기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해야지.”, “지금이 공부할 때지 연애할 때야?”라고 말할 때 이미 가난과 가난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담겨져 있다. 긍정/부정의 사회적 의미체계 속에 살고 있는 개인들은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들은 어느새 누군가의 자존감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말들을 하며, 또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를 만들어 간다.

기존의 긍정/부정의 사회적 의미체계에 기반해서 빈곤가정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의미화 하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이들이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기반과 존재 조건을 부정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아’라는 주문을 외우며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긍정적인'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는 낮은 자존감이 회복될 때까지 이들에게 '너는 잘 할 수 있어',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지속적인 지지의 메시지와 에너지를 보내는 ‘착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과연 이들은 자신의 삶을 흔드는 가난과 차별의 산을 가뿐히 뛰어넘어 낮은 자존감의 터널을 지나 행복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리처드 윌킨스는 자존감을 측정할 때 널리 사용되는 로젠버그의 자아 존중감 척도를 비판한다. 이러한 척도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존감을 살펴보는데 유용할 수 있지만 이런 질문들로는 차별적인 사회구조가 자존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포착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도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이데올로기로서 ‘긍정적 사고’를 비판한다. ‘긍정적 사고’는 사회구조적 문제의 책임을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림으로써 개인에게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고 개인 내부의 상태, 태도, 기분을 우선시하면서 외부 요인(환경)을 부차적으로 보게 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이러한 비판은 자존감 논의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글에서는 빈곤과 청소년을 고민하면서 자존감을 다시 보려고 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자존감이 정치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으로만 취급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빈곤 = 낮은 자존감’이라는 빈약한 설명방식을 보충하기 위해, 그리고 자존감을 차별적인 사회구조로 접근하기 위한 시도로서 수치심에 주목해보려고 한다. 즉 빈곤, 수치심 그리고 자존감의 연관성을 통해 자존감 개념을 어떻게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려고 한다. 기대는 마시고 기다려는 주시라~
덧붙이는 글
호연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이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91 호 [기사입력] 2012년 03월 28일 1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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