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병역거부운동 10년,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며

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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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났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문제가 이슈화되고 병역거부운동이 진행된 지 10여년이 흘렀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 기사가 신문 1면에 실리기도 했고,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그토록 염원했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 60년 동안 1만 7천여 명의 젊은이, 그들의 가족들이 겪은 감옥행의 고통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병역거부운동 10년 동안 분명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한계와 마주해야했다. 무죄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혔고,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대체복무제는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전면무효화 됐다. 정도가 약해졌을 뿐이지 병역거부라는 말을 꺼내는 건 여전히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현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매년 7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매일 2~3명의 청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들어간다.

분명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이 정체됐다는 사실이다.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게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을 마지막으로 병역거부운동은 ‘대체복무제 입법운동’보다는 다양한 ‘평화운동’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총선 이후 국회 구성원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명박 정부에서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10년간의 병역거부운동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까지의 병역거부 운동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떤 전망으로 병역거부운동을 해나갈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병역거부운동 10년을 정리하며

지난 10년간의 병역거부운동을 정리하기 위해서 먼저 병역거부운동 단체인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을 돌아보았다. '양심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비공개 모임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주고받았던 병역거부자들과 지지자들은 2003년 5월 15일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을 계기로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운동을 중심으로 점차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 왔다. 병역거부의 문제가 군대와 폭력, 인권, 평화, 양심에 기인한 직접행동이었기 때문에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이 확장되어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초기 병역거부운동은 평화주의의 의미를 운동 속에 모두 담지 못했다.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많았지만 보류해야만 했다.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을 멈추는 것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매일 2~3명, 매년 700~800명의 젊은이가 구속되는 상태에서 병역거부운동은 오랜 시간 가려져 온 인권침해 사실과 규모를 알리는 것에 집중했다. 어떻게든 감옥행을 막는 것이 시급했다. 그래서 초기 병역거부운동은 병역거부자들의 자유권 획득을 위한 인권운동의 성향을 띠었다. 그 결과 ‘전쟁없는세상’을 비롯한 병역거부운동은 지난 10년 동안 기자회견, 간담회, 공청회, 대체복무제 개정 법안 발의 등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는 걸 막기 위해 많은 활동을 벌여 왔다. 대중들을 상대로 다양한 캠페인을 벌여 왔고 병역거부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고자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에 대해 사법부에서 두 번의 무죄판결이 나오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대체복무 허용 권고 결정이 내려졌으며, 유엔에서는 한국 정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구제하라고 수차례 권고해 왔다. 그러다 결국 노무현 정부 말기 국방부에서 대체복무제가 추진되는 결실까지 맺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그러한 흐름들은 모두 무시됐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하는 소수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병역법 처벌 합헌 결정이 두 차례 나오면서 논의가 가라앉았다.

위 사진:[출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지난 10년간 병역거부운동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중요하게 제기되긴 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활동만으로 병역거부운동의 의미를 한정할 수는 없다. 대체복무제가 있는 징병제가 대체복무제가 없는 징병제보다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대체복무제가 있는 나라가 모두 평화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사회의 군사주의가 강화되면서도 대체복무를 허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체복무가 도입되고 안정화될수록 병역거부자가 주장하는 군대에 대한 문제제기와 전쟁 반대, 평화주의적 관점은 희미해질 수도 있다. 대체복무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양심의 자유를 넘어서서 국가가 강제하는 징집과 전쟁,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이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병역거부운동이 평화운동으로 수렴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초기의 병역거부운동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자유권 획득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후에는 자유권 획득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 운동과 함께 반군사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평화운동으로 바뀌어 갔다. 병역거부자 임재성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자들의 위치도 ‘구제의 대상’에서 ‘저항의 주체’로 바뀌어 갔다. 병역거부 선언이 이어질수록 병역거부자들은 대체복무제에 대한 설명이나 개선 촉구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했다. 2006년 이후 병역거부자들의 소견서에서는 초기 병역거부자들의 소견서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대체복무’라는 단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자신을 구제해 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왜 총을 들지 않는 삶을 택했는지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병역거부자와 활동가들은 대체복무제 입법 운동과 함께 다양한 평화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이를테면, 전쟁과 군대, 군수산업의 부당함을 알리고 저항하는 활동이 그것이다. 2003년에는 이라크 파병 반대 활동에 집중했다. 인권단체들과 함께 이라크 전쟁 범죄에 대해 ‘전범민중재판’을 진행했고, 정부의 이라크 파병 반대를 외치며 군대에서 병역거부한 강철민과 함께 이라크 파병 반대 농성을 하기도 했다. 방위산업 육성과 군비 증강을 촉진하기 위한 방위산업전시회에 맞서 무기산업이 초래하는 분쟁과 국비경쟁의 악순환에 주목하는 평화군축박람회에도 참여하고, 군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과 전․의경제 폐지 운동에도 함께 했다. 2005년에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운동을 했고, 현재는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군수산업의 부당함을 알리고 저항하는 전쟁수혜자 감시운동도 중요한 평화운동이었다. 전쟁수혜자 감시운동은 전쟁으로 이익을 얻은 자들, 전쟁 대치 국가에 무기를 팔아 막대한 이윤을 얻는 기업을 감시․견제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무기 산업을 감시하고 무기 산업이 얼마나 나쁜지 세상에 알리고 실제 무기 산업이 위축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병역거부운동은 다른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무기제로팀’이란 이름으로 활동해왔다. 또 병역거부운동은 군사주의를 비판하며 일상에서 군사주의를 알리고 저항하는 운동을 해왔다. 폭력을 가능케 하고 정당화하는 핵심 구조에는 군사주의와 국가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일상의 곳곳에서 우리는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를 마주친다. 사회 전반의 군사문화 재생산 구조와 일상 속의 군사주의/국가주의적 습성들을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군사주의와 국가주의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찾아내고, 성찰하고, 공부하고, 알려내는 활동을 통해 일상에서부터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운동을 해나가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국기에 대한 맹세 반대운동, 국군의 날 반대 캠페인, 밀리터리 패션쇼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국가주의를 내면화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거부하고 이에 저항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국가주의를 폭로하려 했다. 국군의 날에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탱크와 무기들이 자랑스레 활개 치는 것에 반대하며, 군사주의의 폭력성과 국가안보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드러내기 위해 국군의 날 군사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했다. 밀리터리룩과 같이 생활 속에 스며든 군사문화를 보여주려고 기획된 패션쇼인 ‘밀리터리 인 더 시티’를 통해서는 우리 일상에 군사주의가 얼마나 침투해 있는지 고발하고자 했다.

병역거부운동 10년을 준비하며

지난 10년 동안 병역거부운동은 병역거부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대체복무제를 입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와 함께 전쟁과 군대, 군수산업의 부당함을 알리고 저항하는 활동, 일상에서 군사주의에 저항하고 알리는 활동 등 다양한 평화운동을 진행해 왔다. 병역거부운동의 활동 영역이 확장돼 온 점은 분명 고무적이다. 하지만 활동 과정에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생긴 것도 분명하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기 위해 운동 역량을 다 동원했는데도 이명박 정부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더 나아가기 어려워졌다는 점, 병역거부가 많이 공론화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논의는 여전히 양심/비양심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점, 병역에 대한 시민사회의 고민은 확대되고 있지만 병역거부연대회의라는 거대한 조직체에서 실제 병역거부운동에 관심을 갖고 직접적인 활동을 하는 건 ‘전쟁없는세상’ 뿐이라는 점 등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병역거부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평화운동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는 것이 아직 미흡한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룬 병역거부운동의 성과를 인지하고, 그에 따른 한계와 고민지점을 명확히 해나갈 때 병역거부운동은 비로소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년을 정리하는 모든 과정이 앞으로의 병역거부운동, 나아가 평화운동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조은 님은 평화박물관과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93 호 [기사입력] 2012년 04월 10일 20:4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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