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범한 가족이야기] 장애여성의 주체성과 가족의 경계

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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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정상 가족이 얼마나 될까’ 꽉 짜여진 가족 중심 사회의 틈새에서 ‘비정상 가족’들이 되돌려 묻는다. 가족, 바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변화를 발견해나가면서 가족의 경계와 의미를 다시 묻는 ‘비정상 가족’들은 그래서 더 ‘비범하다.’ 은 변화된 가족-공동체-관계를 모색하면서,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 혼인 여부, 국적, 장애, 나이, 빈곤을 가로지르며 가족과 공동체 사이 어디 즈음을 거닐고 있는 비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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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함께 살기’가 가능한가?

독립의 형태가 ‘혼자 사는 것’만은 아니다. 이를 바꿔서 이야기하면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도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면 이를 ‘독립’으로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에 장애여성 공동체에 대하여 낙관적이었다. 장애여성이 꼭 혈연가족과 살거나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장애여성과 함께 살거나 다양한 가족 혹은 공동체를 구성하며 사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에 독립한 장애여성들이 더 많아지고, 그 다양한 경험을 조금씩 마주할수록 중증장애여성이 ‘누군가와 함께 사는 독립’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자꾸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원 씨의 경험에서도 떠오른다. 30대 초반인 지원 씨는 가족과 함께 살다가 연애를 하게 되었고, 만나던 분과 결혼을 하여 현재는 3살의 예쁜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의지하며 사는 것과 보조를 받는 것 사이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기를 바란다면,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심정적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기대할 것이다. 중증장애여성인 지원 씨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활동보조 시간은 부족하고 가사, 양육에도 보조가 많이 필요해서 지원 씨의 일상생활 보조는 경증의 장애를 가진 남편이 많이 하고 있다. 잠을 자다 한밤중에 목이 마르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함께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지원 씨 입장에서 남편에게 그런 요청을 한다는 것이 때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 좋은 타이밍에 부탁하게 되어 위축될 수도 있다. 서로 의지하며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서로 보살피고 챙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여성의 경우, 지원 씨처럼 어느 순간에는 내가 너무 동거인에게 의존하며 사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친밀한 관계 안에서 누구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장애로 인하여 보조가 필요한 경우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위치가 된다는 것 때문에 같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다.

살림의 주도권, 가사노동과 육아의 분담

공동생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사노동의 분담이 무척 예민한 문제이며, ‘갈등의 씨앗’이 되곤 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기대받는 만큼 가사에 기여하지 못할 때는 그게 약점이 되어서 다른 문제로 싸울 때나 결정적인 순간에 동거인 앞에서 ‘죄인’이 되기도 한다. 지원 씨는 특히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가사노동과 육아의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원 가족과 살다 결혼해서 자신의 가정을 만들게 되면서 지원 씨는 한동안 살림을 꾸리는 부분에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점차 어머니가 간섭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남편과도 갈등이 생겼다. 그리고 살림과 아이 양육의 주도권이 어머니에게 있으면 ‘진짜 독립’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지원 씨는 점차 어머니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활동보조인과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있는 활동보조인에게 일상의 많은 부분이 노출될 수밖에 없고, 지원 씨도 예전 활동보조인이 양육 방식에 개입해서 문제가 되었던 경험이 있다. 지원 씨가 아이를 키울 때 활동보조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활동보조인이 본인의 방식을 고집할 경우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원 씨는 주도적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고 “아빠가 다 한다”고 말하거나 활동보조인이 ‘엄마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게 왜 어려운지를 이야기해보자

독립하며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는 장애여성들은 공동생활 자체에 질린 경우가 많다. 혈연가족들과 살거나 시설에서 살 때의 기억으로 인해 함께 사는 스트레스를 감당하느니 외로워도 자유롭고 마음 편하게 혼자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결혼이 아닌 다른 형태의 공동생활은 장애여성들에게 선택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의지와 보조 사이에서 마음 졸이는 줄타기를 해야 하고, 나의 결정권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은 공동생활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동안 장애여성의 가족 이야기를 할 때 혈연가족 안에서 경험하는 억압과 폭력을 많이 이야기해왔다. 그렇다면 이제는 장애여성들이 가족 구성에 대해 왜 많은 선택지를 갖지 못하는지, ‘누군가와 함께 사는 독립’이 왜 어려운 것인지를 더 열심히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독립의 형태가 혼자 사는 것만은 아니라면, ‘공동생활’도 꼭 한 집에서 같이 산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이웃, 네트워크, 지역, 커뮤니티의 문제와 더불어 고민하여 그동안 상상해온 좀 더 넓은 의미의 ‘장애여성 공동생활’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가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진경님은 장애여성공감, 가족구성권연구모임의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96 호 [기사입력] 2012년 05월 02일 15: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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